[서민교의 페널티] ‘내기 골프’하는 당신은 상습 도박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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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 기자
입력 2019-03-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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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골프.

필드에서 라운드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골퍼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골프에서 ‘내기’는 빠지면 섭섭한 공공연한 재미요소다. 게임의 승부 근성을 북돋으면서도 적절한 긴장감을 유발해 밋밋한 라운드의 흥미를 끌어올린다. 투어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 주말 골퍼들도 내기 골프를 즐긴다.

당일 18홀 라운드 스코어로 밥값이나 캐디피 내기를 하거나 홀 별로 타당 내기를 하기도 한다. 내기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고, 내기 규모도 개인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골프 모임의 성격이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기 이후 일정 금액 이상 돈을 딴 사람이 많이 잃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 돌려주고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취한 사람이 밥이나 술을 사는 게 일반적인 관례다. 우스갯소리로 ‘내기 골프에선 1등이 손해’라는 말도 있다.
 

[지난해 '쩐의 전쟁'을 벌인 필 미켈슨(왼쪽)과 타이거 우즈.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11월, 세계 골프 팬들을 사로잡은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과거 앙숙으로 유명했던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이상 미국)의 일대일 매치플레이 ‘캐피털 원스 더 매치 : 타이거 vs 필’이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우즈와 미켈슨의 보기 드문 빅매치에 걸린 상금만 900만 달러(약 101억원)다. 승자 독식 방식으로 치러진 이 경기에서 우즈를 연장 승부 끝에 꺾고 승리를 거둔 미켈슨이 거액의 돈뭉치를 챙겼다. 보기 좋게 포장했지만, 이 대회 자체가 단판 승부 내기였다. 물론 우승 상금은 주최 측이 준비했다.

우즈와 미켈슨의 맞대결을 더 살펴보자. 이날 경기 도중 거의 대부분 홀마다 내기가 걸렸다. 소문난 두 승부사의 ‘내기 골프’는 상상을 초월했다. 샷 한 번에 ‘억’ 단위의 어마어마한 거액이 오갔다. 우즈와 미켈슨은 즉흥적으로 서로에게 내기를 걸었다. 별도의 이 내기는 주최 측이 아닌 우즈와 미켈슨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1번 홀(파4)에서는 미켈슨의 버디 여부에 20만 달러(약 2억2600만원)가 걸렸고, 5번 홀(파3)에서는 티샷을 홀에 더 가까이 붙이는 선수가 이기는 니어핀 내기로 10만 달러(약 1억1300만원)를 걸었다. 8번 홀(파3)에서도 20만 달러의 니어핀 대결을 펼쳤고, 13번 홀(파3)에서는 금액을 30만 달러(약 3억3900만원)로 올렸다. 심지어 9번 홀(파4)에서는 두 번째 샷을 앞두고는 이글을 기록하면 100만 달러(약 11억3000만원)의 내기가 성사됐다. 이후에도 롱 드라이버에 10만 달러를 거는 등 다양한 내기로 두 승부사의 맞대결에 긴장감을 더했다.

우즈와 미켈슨의 이 모든 내기는 생중계로 전 세계 골프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방송사에서는 친절한 자막도 보탰고, 해설자들의 설명도 곁들였다. 현장을 찾은 갤러리는 물론 시청자들도 흥미진진하게 응원하며 즐겼다. 세계 최정상의 유명 골프 스타들이 수십억 원대의 판돈을 걸고 공식적으로 내기 골프를 즐긴 셈이다.
 

['내기 골프'로 논란이 된 차태현(왼쪽)과 김준호. 사진=아주경제 DB]


차태현과 김준호의 ‘내기 골프’가 논란이다.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정준영의 카카오톡 ‘1박 2일팀’ 단톡방에서 또 가지가 뻗었다. 둘이서 내기 골프를 친 정황이 대화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알려져 불똥이 튀었다. 차태현과 김준호는 판돈 200만원대 내기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둘은 “저희끼리 재미로 한 게임이었고 돈은 그 당시 바로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차태현과 김준호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으로 모든 방송에서 자진 하차했다.

두 가지 사례만 놓고 봐도 논란이 있을 법하다. 차태현과 김준호의 내기 골프는 과연 도박일까, 아니면 일시 오락일까.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골프라는 종목 특성상 ‘우연성에 의존하지 않고 예상되는 실력을 바탕으로 승패를 가리기 때문에 도박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골프의 우연성과는 별개로 사회통념상 판돈이 커지면 도박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판돈의 기준도 애매하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판돈의 기준도 바뀔 수 있다.

우즈와 미켈슨이 오간 금액만 따져도 차태현과 김준호가 내건 판돈의 300배가 훌쩍 넘는다. 번외 내기 골프를 친 미켈슨은 60만 달러(약 6억8000만원)를 땄고, 우즈는 20만 달러를 챙겼다.

과연 우즈와 미켈슨의 내기 골프는 도박죄가 성립될까. 당연히 아니다. 그들이 도박을 목적으로 했다면 올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당당히 활동할 수 없다. 이 이벤트 대회에서 이들이 내기 골프로 쌓은 상금은 전액 기부하는 조건이었다. 우즈의 주머니에서 나온 60만 달러는 미켈슨 부부 재단에 기부됐다.

차태현과 김준호는 어떨까. 우즈와 미켈슨처럼, 200만원은 그들에게 큰 금액이 아닐 수 있다. 또 판돈이 크더라도 차태현과 김준호가 내기 골프를 치기 전 딴 금액을 돌려주는 것을 전제로 했거나 사회 기부하기로 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둘은 “재미삼아 친 뒤 돌려줬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애석하게도 정준영의 ‘황금폰’에 저장돼 있지 않았다.

내기 골프는 누군가의 잣대에는 도박이고, 또 누군가의 기준에선 오락이다.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시선이 엇갈린다. 본지 기자도 가족, 지인들과 내기 골프를 즐긴다. 다만 판돈이 5만원을 넘지 않는 수준일 뿐이다.

‘나는 상습 도박을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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