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츠러든 청춘들 '명절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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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균 기자
입력 2019-02-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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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수생·취준생·싱글족, 친척 모인 자리 '가시방석'

  • 대학·직장·결혼 등 쏟아지는 질문에 "눈치보인다"

  • 전문가들 "관심 지나치면 간섭… 격려의 말 중요"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최근에는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의도적으로 명절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청춘들은 고하고 싶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 때만 우리를 인정하지 말고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해 달라'고 말이다. [아주경제DB]


모두에게 설 명절이 반가운 건 아니다. 청춘들에게는 명절이 괴롭기만 하다. 특히 재수생·취준생·싱글족들은 친척들이 모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지기 일쑤다.

대입에 실패했거나 취업 또는 결혼을 하지 못한 청춘들은 명절 때 듣는 부모와 친척의 덕담이 오히려 잔소리를 넘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학 낙방을 예감한 수험생들은 내년 수능시험 준비를 위해 일찌감치 재수학원을 알아보고, 취업에 실패한 취준생들은 각종 자격증반과 토익학원 문을 두드린다.

싱글족에게도 명절은 넘기 어려운 산이다. 친지들의 결혼 독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가거나 명절 특근을 자청하기도 한다.

J사가 최근 20세 이상 성인남녀 26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날 계획'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 연휴에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 1위로 "취업은 언제 할 거니?"가 꼽혔다. 

응답군별로 대학생들은 △취업은 언제 할 거니?(46.7%)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너네 학교는 전망이 어떠니?(41.7%)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따랐다. 이밖에도 △앞으로 계획이 뭐니?(38.8%) △살 좀 쪄(빼)야지(37.0%)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31.9%)가 차례로 순위를 이었다.

취준생들은 △취업은 언제 할 거니?가 64.9%의 압도적인 응답률로 1위에 올랐다. △2위는 앞으로 계획이 뭐니?(35.1%) △3위는 살 좀 쪄(빼)야지(28.2%)가 각각 차지했다. 이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26.9%) △결혼·출산은 언제 할 거니?(26.3%)도 취준생들이 설 연휴에 듣고 싶지 않은 말로 꼽혔다.

아울러 직장인들이 설에 듣기 싫은 말로는 △결혼·출산은 언제 할 거니?(47.5%) △돈은 얼마나 모았니?(44.5%)가 1, 2위를 다퉜다. 이밖에 △살 좀 쪄(빼)야지(28.1%) △(요즘)연봉은 얼마나 받니?(25.2%) △애인은 있니?(21.5%)도 설 연휴에 듣고 싶지 않은 말로 꼽혔다.

이처럼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최근에는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의도적으로 명절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청춘들은 고하고 싶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 때만 우리를 인정하지 말고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해 달라'고 말이다.

◆재수생의 설움··· "대학은 어디로 갈거니?"

재수를 준비 중인 김모씨(20)는 고향에 내려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올해는 꼭 합격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지만 친인척들의 잔소리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김씨는 "설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비교당하기가 싫습니다.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라눈 생각으로 열심히 할 생각"이라며 "지금 저의 입장에선 가족, 친척들과 설을 같이 보내는 건 마음이 불편해 안 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삼수생인 윤모씨(21)는 "고향이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만 이번 명절은 안 내려가고 공부하려고 한다"며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가봤자 잔소리나 들을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취준생의 아픔··· "누구는 대기업 다닌다더라"

취업준비생 3년차인 강모씨(29)는 명절이면 더욱 외롭다. 고향에 가려니 가족들의 잔소리가 두렵고 그렇다고 도시에 있자니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강씨는 "함께 취업을 준비하던 또래 친척이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눈치가 많이 보인다"며 "취업을 못한 나 때문에 부모님도 같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장모씨(28)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직장을 잡지 못해 떳떳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불편한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가느니 알바라도 하면서 학원비를 버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싱글족의 눈물··· "결혼은 대체 언제 할거야?"

혼기를 놓친 싱글족들도 이번 설 연휴를 피하고만 싶다. 친척들의 쏟아지는 결혼 질문에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은행원 김모씨(37)은 "왜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느냐는 말을 3년째 듣고 있다"며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안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모씨(33)는 "결혼을 독촉하는 친척들 때문에 설 연휴가 달갑지 않다"며 "나름대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만 가족과 친척 성화에 될 일도 잘 안 될 것 같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관심 지나치면 간섭··· 격려의 말 중요"

전문가들은 상처주는 말 대신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모나 어른 입장에서는 관심과 걱정의 표현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괴롭고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심이 지나치면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직설적인 방식이나 민감한 화제로 대화를 시작해 가족 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 자매 사이에서 서로를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 강요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러한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기분이 어떤지 고민을 한 후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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