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기름 냄새 가득한 숲길서 만난 도깨비 같은 색채"오스카 무리조 개인전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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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12-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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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29일~2019년 1월 6일까지 국제갤러리

  • ​-오스카 무리조 개인전 '카탈리스트'(Catalyst·촉매)

밤에 숲길을 거닐 듯 전시장을 거닌다. 어두운 숲속에는 여기저기 무덤도 보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깃발이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냄새는 또 얼마나 독한지 메케한 기름 냄새가 정신을 쏙 빼놓는다. 하지만 강렬한 색채와 어지러이 그어진 선들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이 황홀한 산책으로 변한다.

[오스카 무리조 작가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카탈리스트' 전시의 'catalyst'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제갤러리는 내년 1월 6일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오스카 무리조(32)의 개인전 '카탈리스트'(Catalyst·촉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카탈리스트'(catalyst) 연작, '플라이트'(flight) 드로잉 연작, 검은 천 설치, 곡물과 점토가 뒤엉킨 덩어리, 비디오 등 최근작 2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2016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참가를 위해 2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오스카 무리조는 이후로 여러 번 재방문했고 이번 전시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오스카 무리조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는 지금 전시의 시각을 형성한 전시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화해'(reconciliation)에 대한 시각을 확립한 계기가 되었다" 며 "이번 전시에서는 유동성을 많이 표현했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깊은 관심을 지닌 개념이 타자성(他者性)인데, 이는 저조차도 서방세계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고 제3 세계에서 태어나서 서방세계로 이동해서 살았기 때문이다"고 고백했다.
 
타자성과 함께 수평성(水平性)은 작가가 요즘 가장 많이 탐구하는 작품의 내용이다.
 
무리조에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각 국가·지역·문화 등 특정적인 물리에 국한된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지역을 초월해서 어떻게 세계에 포진된 다양성을 지역과 거리에 상관없이 연결할 수 있을까 탐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성은 물리적으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고 더 자세히 얘기하면 정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아이덴터티에 귀결되거나 귀속이 되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수단이다."

[오스카 무리조 작가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카탈리스트' 전시의 'The Institute of Reconciliation'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카탈리스트'와 함께 작가가 지난 5년 동안 작업해 온 '화해'이다.
 
그는 "'카탈리스트'는 한국이라는 국가를 생각하고 이 갤러리 공간의 형태성과 특정성을 생각하면서 준비한 주제이고 화해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의 수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화해'는 작가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주제였고, 그 이후로 세계 다양한 곳에서 지속해서 시도한 주제이다.
 
"'화해'라는 주제는 '카탈리스트'와 어떻게 보면 반대급부의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카탈리스트는 제가 에너지를 포착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과학적인 뉘앙스를 띠지만 화해는 좀 더 추상적인 얘기가 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pulsating frequencies']

▶검은 장막 속 강렬한 색채가 빛나는 'K2 전시장 1층'
 
K2 전시장 1층은 강렬한 원색을 쓴 평면 작품과 검은 천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걸려 있다. 강렬한 색에 대비되는 검은 천 설치 작품은 때로는 돌돌 말려서 천장에 걸려 있는가 하면 때로는 커튼처럼 빛을 차단한 채 널려 있다.
 
무리조는 "전시장에 관람객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실종의 느낌을 포착하면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며 "그 이후에 서로의 다양한 화해 방식을 이해하면서 제 전시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적십자사 아이콘과 한글이 포함된 'pulsating frequencies'(진동하는 주파수) 작품은 그의 한국 사랑과 회화 세계를 잘 보여준다.
 
"적십자는 혼란의 시기가 있을 때마다 구호 활동을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적십자에 대한 호감이 있었고, 적십자라는 아이콘 자체가 인류가 지니는 도덕성이라는 상징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콜롬비아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를 경험하면서 분열과 단절을 느꼈고, 치유의 과정에서 적십자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있는 듯하다.

[오스카 무리조의 작품 특징 중에 하나인 천으로 이어붙인 캔버스]

캔버스 또한 자세히 보면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붙여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것을 협업의 결과라고 말한다.
 
"캔버스 천은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재봉사인 부모님과 친구들이 같이 작업을 했지만, 디자인적으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다. 캔버스 천은 좀 더 넓게 보면 통일, 통합 또는 시너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AAAAI']

최근 작가는 인공지능(AI)에도 관심이 많다. 이러한 호기심은 'AAAAI'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중국 지도 위에 초록색 글씨로 쓴 'A,A,A,AI'는 이 분야에서 중국의 저력을 반영한 듯하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The Institute of Reconciliation']

검은색 천으로 된 'The Institute of Reconciliation'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설치 작품이다. K2 전시장은 물론 K3 전시장 곳곳에 다양한 형상으로 전시됐다.
 
깃발처럼 보이기도 한 이 작품은 K2 전시장 1층에서 샌드백처럼 천장에 매달 있거나, 커튼처럼 공간을 가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K2 전시장 2층에서는 바닥에 여기저기 널려있고, 때로는 곡물과 점토가 뒤엉킨 유기적인 형태의 덩어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K3 전시장에서는 마치 이불 빨래처럼 기다란 줄에 널려있다.
 
"안양전시를 준비했었을 때 무당, 즉 샤머니즘에 대해 참고를 했는데, 제가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관계를 시작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다. 장소 특정성을 살린 작품이며 관객이 작품을 볼 때 어두운 에너지를 느끼면서 어둠에 대한 지속성을 느꼈으면 좋겠다."
 
검은 천 설치 작품은 주변의 강렬한 색감의 회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하고, 이 전시 공간에 잘 맞게 형태를 변형시켜 유기적으로 표현이 돼 있다.
 
"강렬한 색깔을 지닌 회화 작품에 대비해서 동시에 세상은 어두고 우울한 에너지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했다. 또한 이 전시 공간에 걸어 들어오면 검은 천 설치 작품이 가장 눈에 띄게 공간특성을 살렸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플라이트#67(왼쪽), 플라이트#69]

▶밤에 숲길을 거닐며 부유감을 느끼는 'K2 전시장 2층'
 
2층에는 플라이트#67, 플라이트#69, 플라이트#58 작품처럼 비행기 안에서 드로잉 한 작품과 그것을 회화로 풀어낸 '카탈리스트' 작품, 그리고 최근에 만든 비디오 작품 'horizontal dialogue' 등이 있다.
 
"비행기를 타는 중에는 거의 강박적으로 계속 드로잉을 하는데, 거의 몰입 상태로 들어간다. 제가 가진 에너지를 드로잉에 집중하며 발산한다. 그래서 관람객들도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뭔가 부유하는,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 들길 원했다."

[오스카 무리조 작가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카탈리스트' 전시의 '플라이트#69' 작품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오스카 무리조 작가는 이날 전시 설명 중에 '플라이트' 드로잉 시리즈를 보면서 그림에 나온 문자나 숫자를 읽는 갑작스러운 퍼포먼스를 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진지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horizontal dialogue' 비디오 작품]

'horizontal dialogue' 비디오 작품은 낙서 같은 선으로 꽉 차 있는 영상이다. 자세히 보니 소형 드로잉 작품을 근접 촬영해서 찍은 것이다.
 
"이번 전시의 수평적인 장치이며 비정형화된 소형 드로잉을 표현했다. 뇌에서 시작해서 의식적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제가 흘려보낸 에너지를 응축한 결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형 드로잉이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The Institute of Reconciliation']

검은 천 설치 작품은 2층 전시실에서 극대화된다. 공중뿐만 아니라 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어, 마치 전시장이 아닌 밤에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 든다.
 
"형태성은 줄이면서 공간감을 좀 더 가중해서 만든 작품이고, 과도한 의미를 담지 않으면서도 공간, 물리, 몸 등의 관계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갤러리 공간에 들어서면 일종의 협업이 이뤄지는데 관람객이 공간을 산책하면서 작품을 보길 원했고, 그런 공간성을 기획하는 방식에서 이 검은 천 더미를 '물질의 숲'으로 표현했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오스카 무리조의 '카탈리스트' 전시에 나온 'catalyst']

▶창공에 나부끼는 검은 장막에 무한한 에너지가 담긴 'K3 전시장'
 
K3 전시장은 '카탈리스트' 연작과 검은 천 설치 작품으로 구성됐다. 특히 이 전시장에서의 검은 천 작품은 전시장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어, 압도적인 몰입과 크기를 자랑한다.
 
"우리를 속박하고 옭아매는 전형적인 갤러리 공간으로부터 또는 환경과 형태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검은 천의 전시가 중요했고, 관람객이 전시를 보면서 궁극적으로는 '카탈리스트'(촉매)라는 전시 주제 요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스카 무리조의 'The Institute of Reconciliation' 작품이 국제갤러리 K3 전시장에 걸려있는 모습.]

'카탈리스트'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몰입시켜서 환경에 개입하는 이번 작품의 주제이다.
 
오스카 무리조 작가는 끝으로 "드로잉은 제 에너지를 담는 무한한 존재이다" 며 "저와 회화의 관계는 단순히 작가와 작품의 관계가 아니라 제 물리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표출하는 결과물이고 앞으로도 드로잉을 통해 지속해서 예술가로서의 나를 그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오스카 무리조 누구?
 
1986년 콜롬비아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오스카 무리조는 1997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후 런던에서 생활했으며, 2012년 영국왕립예술학교 재학 중 본격적으로 작품 및 전시 활동을 시작했다.
 
무리조는 다양한 크기의 천 조각들을 조합해 캔버스를 만들고 유화 물감으로 맹렬히 휘갈긴 양상의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영국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3), 아제르바이잔 바쿠 야라트 현대미술관(2016), 프랑스 보르도 현대미술관(2017), 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뮌헨(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제13회 샤르자 비엔날레(2017), 제10회 베를린 비엔날레(2018) 등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튜린에 소재한 재단 폰다지오네 산드레토 리 리바우덴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미국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벨기에 헨트 스테델릭 현대미술관(S.M.A.K)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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