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円의 굴욕...무역전쟁 공포에도 약세, 이름값 못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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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8-07-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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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전쟁 우려에도 엔화 약세 행진…BOJ 통화완화정책, GPIF 해외주식 매입 등 영향

[사진=연합뉴스]


일본 엔화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첫손에 꼽는 안전자산이다. 엔화의 안전자산 매력은 지난해 여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한창일 때 특히 빛났다. 북한이 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관통하며 일본 열도가 공포에 휩싸였는데도 엔화에 돈이 몰렸을 정도다. 당시 달러 대비 엔화 값이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미국 국채, 금, 스위스프랑화 등 다른 안전자산보다 가격 상승세가 가팔랐다.

엔화는 1970년대부터 추세적으로 강세 기조를 유지하며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와 낮은 변동성, 1980년대 초부터 지속된 경상수지 흑자, 막대한 대외순자산·외환보유액 등이 엔화의 안전자산 매력을 뒷받침한다.

일본은 외부 충격에도 강한 면모를 자랑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2017년 253%)이 세계에서 가장 높지만, 일본 국채 대부분을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위기 때 엔화가 강세를 띠는 건 이른바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엔 캐리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로 돈을 빌려 해외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걸 말한다. 돌발 악재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위험성이 큰 엔 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기 쉽다. 엔화로 매입한 해외 자산을 처분해 일본으로 들여오면 달러 공급이 늘고 엔화 수요가 증가하면서 엔화가 강세 압력을 받게 된다.

문제는 최근 엔화의 안전자산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양강인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무역전쟁을 둘러싼 우려에도 엔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서다. 블룸버그가 최근 무역전쟁 속에 엔화가 안전자산 권좌에서 쫓겨났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블룸버그는 7월 들어 엔화가 주요 10개 통화 가운데 약세가 가장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엔/달러 환율은 올 들어 0.28%(18일 현재), 이달 들어서는 1.91% 올랐다. 달러 대비 엔화 값이 그만큼 하락했다는 의미다.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빗발치는데도 '안전자산' 엔화가 약세를 띠는 이유는 뭘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무역전쟁의 파장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무역전쟁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이 확전되면 일본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도이체방크는 최신 보고서에서 미국과 일본의 상반된 통화정책 기조가 엔화를 약세로 모는 데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때 느슨하게 풀었던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올 들어 이미 두 차례(3월, 6월), 2015년 12월 이후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아울러 연말까지 금리를 두 번 더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은행(BOJ)은 통화부양 기조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물가상승률 목표치(2%) 달성이 요원한 상태로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일본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목표치인 2%에서 다시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BOJ가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할 공산이 커진 셈이다. 통화완화는 엔화에 약세 요인이 된다.

도이체방크는 세계 최대 공적연금인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의 해외 주식 매입도 엔화 약세를 부추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직면한 구조적인 위험이 장기적으로 엔화의 안전자산 위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 비율과 고령화가 대표적인 악재로 꼽힌다. 저출산과 맞물린 고령화는 일본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미 한계 수준에 이른 부채를 더 늘리려면 해외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의 일본 국채 보유 비중이 높아지면 일본 경제는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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