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 몽타주] 제주4·3사건과 영화 '지슬', 그리고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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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기자
입력 2018-04-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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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직전 유가족들이 행방불명자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아야아~ 아푸다! 아푸다! 빨갱이가 뭐산디사…" 지난 2013년 개봉,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 속 무동의 어머니가 정부 측 토벌대 상사에게 난자당해 죽어가며 남긴 독백이다. 감자라는 뜻의 제주 방언을 제목으로 한 이 영화는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제주4·3사건의 참상을 재조명하는데 기여했다.

양민을 학살하는 토벌대, 마약에 취한 채 "계집애 하나 잡아오라"는 김 상사, 토벌대를 피해 동굴로 숨어들어 간 양민들, 살해된 어머니를 보고 오열하던 무동, 어머니 시체 주변으로 흩어진 지슬(감자)을 싸 들고 동굴로 돌아간 무동과 그 지슬을 나눠 먹던 양민들. 영화 지슬이 재현한 제주4·3사건의 참상은 당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제주4·3사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한다.

1947년 3월1일이 시작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47년 제28주년 3·1절 기념식을 맞아 제주 내 좌파 세력이 시위를 주도했다. 해방 직후 정부 수립을 둘러싼 이견 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문제가 표출됐다. 군정경찰이 이들에게 총을 쐈다.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른바 3·1사건이다. 이 발포사건에 항의, 조선에서 처음으로 관공서와 민간기업의 총파업이 시작됐다.

군정당국은 이에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파 청년단체원들을 제주에 대거 내려보냈다. 우파 청년단체원은 물리력으로 검거 공세를 전개했다. 제주 좌파 세력과 전면 대립국면으로 돌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난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3·1사건을 '4·3으로 가는 도화선'으로 평가한다.

당시 미군정은 제주도의 총파업을 경찰의 발포가 아니라 남로당의 선동 때문으로 평가하고 이들에 대한 검거작전을 전개했다. 한 달 만에 500여명이 체포되고 4·3사건 발발 직전까지 2500명이 구금됐다. 테러와 고문이 잇따랐다. 1948년 3월엔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다. 남로당은 조직노출로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1948년 4월3일 새벽 2시 350명의 무장대로 제주도내 12개 경찰지서와 우익단체들을 공격한다. 무장봉기가 시작됐다. 수차례 평화협정을 시도했지만 결렬됐다. 그 해 11월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당시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토벌대)는 중간산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고 적고 있다. 양민학살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참혹했던 '북촌 사건'의 경우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마을 주민 400명 가량을 2연대 군인들이 총살한 사건이다. 100명 이상 희생된 마을은 45개소에 이른다. 공식적인 재판 절차는 물론 없었다.

1949년 6월 남로당 무장대는 총책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사실상 궤멸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이 이어진다. 제주4·3사건은 19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이어졌다. 진상조사위원회 추산 2만5000명에서 3만명의 주민이 학살당했다. 소극적으로 추산해도 당시 제주도민 열 명 중 한 명이 학살당한 것이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의 가해자별 통계에 따르면 정부 측 토벌대가 78.1%의 주민을 희생시켰다. 남로당 무장대에 살해된 희생자는 12.6%다. 당시 미군 보고서 또한 토벌대에 의해 80% 이상이 사망했다고 적고 있다. 희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와 61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11.9%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의 희생 역시 21.3%에 이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과도한 진압작전이었던 셈이다. 관련 자료 중엔 7만명이 살해당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물론 이들 모두가 양민인 것은 아니다. 제주도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은 180명 내외, 경찰 전사자는 14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 추모 영산재'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제주4·3사건 70주년인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오늘 제주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한다.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 좌익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자유한국당 또한 논평을 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제주4·3사건은 건국 과정에서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기 위한 무장폭동으로 시작됐다. 남로당 무장대가 산간지역 주민을 방패 삼아 유격전을 펼치고 토벌대가 강경 진압작전을 해 우리 제주 양민들의 피해가 매우 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얘기했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 함께 위장평화쇼로 한반도에 마치 평화가 온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려는 사회주의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제주4·3사건 추념식에 참석, 추념사를 통해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며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자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또 글을 올린다.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인 김달삼이 350명 무장 폭도를 이끌고 새벽 2시에 제주 경찰서 12곳을 습격했던 날이다.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 4월 3일이다. 이 날을 제주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날로 잡아 추념한다는 것은 오히려 좌익폭동과 상관 없는 제주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장 수석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두고 "인사, 개헌, 경제, 안보 등 국정 전체를 좌편향으로 몰고 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정권이 제주4·3사건을 두고는 탈이념을 역설하니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지 의아할 뿐"이라고 했다. "역사는 결코 정권이 규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빨갱이가 뭐산디사…"

홍 대표와 한국당은 국가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제주4·3사건의 본질을 흔들려고 하고 있다. 처음엔 "남로당 좌익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더니, 이후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이라는 본질은 도외시한 채 남로당 폭도의 준동으로 몰아가고 있다. 홍 대표와 장 수석대변인의 글 어디에도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정부측 토벌대에 의해 양민의 80%가 학살됐다는 내용 또한 보이지 않는다.

"제주4·3사건을 두고 또 다시 낡은 이념과 편가르기의 틀로 가두려는"(장 수석대변인 구두논평) 의도로 읽힌다. 제주4·3사건을 남로당에 의한 무장 폭동으로만 규정한 뒤, 사회주의 개헌을 언급하는 속내는 뻔하다. 해묵은 색깔론 공세를 이어가려는 것이다. 이쯤에서 홍 대표에게 전하고 싶은 말. "빨갱이가 뭐산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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