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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㉑] 19차 당대회 후 ‘시진핑 열풍’…1980~1990년대 ‘마오쩌둥 열풍’ 떠올리다

안영은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선임연구원(베이징대학 문학박사) 입력 : 2017-11-09 13:04수정 : 2017-11-09 15:38
마오쩌둥, 문혁 시기 '신격화' 열풍 사후엔 '인간적' 측면 부각한 열풍 최근 위챗 통해 시진핑 흉상 판매 인민복 차림의 '마오 흉상'과 닮아

마오쩌둥 얼굴이 들어간 걸이용 장식품.[사진 출처=바이두]

 

시진핑 흉상(왼쪽)과 마오쩌둥 흉상. [사진 출처=홍콩 명보 캡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중국 사회에 불어 닥친 ‘마오쩌둥 열풍(毛澤東熱)’, ‘붉은태양 열풍(紅太陽熱)’, ‘홍색경전 열풍(紅色經典熱)’, ‘문화대혁명 열풍(文化大革命熱)’ 등 혁명문화 열풍은 포괄적으론 중국 혁명의 역사와 관계된다.

특히 마오쩌둥 탄생 100주년(1993년)에 즈음해 고조된 ‘마오쩌둥 열풍’, ‘붉은태양 열풍’은 모두 마오쩌둥 개인과 직접 연관된 것이다.

이를 주도한 매체는 출판, 음반, 영상이었다. 출판물은 주로 ‘신단을 내려가는 마오쩌둥(走下神壇)’계열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주인공으로 그간 신격화 돼 온 마오쩌둥을 벗어나 인간 마오를 조명한다는 의미다.

음반을 통해 재현된 마오쩌둥의 이미지는 ‘대중스타’로 변신돼 있다. 혁명시대 회자되던 마오쩌둥 찬양가가 전혀 다른 연주법으로 리메이크돼 대중가수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사람들은 혁명가요가 아닌 대중음악으로써 이를 소비했다.

영상으로 재탄생한 경전작품에서는 마오쩌둥의 인간적 모습이 부각됐다. 또한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주인공들은 사랑을 갈구하는 청춘남녀들로 변신을 꾀해 당국으로부터 홍색경전(紅色經典)이 아닌 황색경전(黃色經典)을 만들어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혁명성과 계급성이 희석되고 낭만적 정서와 개별적 인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미술을 세계미술의 위치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팝아트에서도 마오쩌둥은 과거 엄숙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난다. 중국 팝아트의 대부격인 왕광이(王廣義)는 ‘마오쩌둥 홍격(紅格) no.1’를 통해 마오쩌둥을 붉은 실선 속에 가뒀다.

리산(李山)의 ‘연지(臙脂) no.21’에서 검은 눈두덩이, 붉은 볼, 꽃을 물고 있는 빨간 입술의 마오는 변태적이기까지 하다. 앤디워홀의 마오쩌둥 그림이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점이 문제가 돼 중국 당국으로부터 전시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이들 화가의 붓끝에서 그려진 마오의 이미지는 세속화된 마오쩌둥 형상의 절정을 이룬다.

중국의 문화연구가 다이진화(戴錦華)의 글에 ‘문화 마오쩌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문화로서의 마오쩌둥을 소비한다는 의미다.

마오쩌둥은 대중매체를 통한 문화적 소비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시대풍조와 유행을 대변하는 액세서리 및 일상용품으로도 소비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자동차 앞 유리에 붙여 나쁜 운을 내쫒는 용도의 걸이용 장식품이나 호출기의 커버, 손목시계, 방풍 라이터 속에 마오의 형상을 새겨 넣은 상품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과거 중국 혁명역사의 상징적 존재였던 마오가 개인의 신변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으로써 또는 일반인들의 일상 속 기호품으로써 자연스럽게 소비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오쩌둥 열풍’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개인 숭배적 경향 또는 소비 경향에 근접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개인 마오의 카리스마와 거대한 대륙의 건설자라는 권위에 대한 동경이 포함됐거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과거 시대에 대한 향수로 해석할 여지도 존재한다.

사실상 ‘마오쩌둥 열풍’은 1980·90년대 전환기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1950년대 대약진(大躍進)운동기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시기 ‘마오쩌둥 열풍’은 ‘마오쩌둥 신 만들기(造神)’ 운동의 시작이었다면,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 열풍’이야말로 ‘마오쩌둥 신 만들기’운동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사회주의 중국은 반(反)미신, 반종교적 정책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문화대혁명시기에 이러한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러 전통 명절, 각종 종교, 민간 신앙 등은 모두 미신으로 간주돼 타도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오쩌둥만이 유일무이한 우상으로서 그에 대한 숭배가 모든 종교 신앙을 대체하게 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후 10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마오쩌둥 열풍’은 오히려 신단에서 걸어 내려와(走下神壇),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성향을 띠게 된다.

마오쩌둥은 더 이상 모든 것을 주관하고 결정짓는 유일무이한 우상이 아니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개별적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 더 이상 어떠한 집체에는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2015년 봄, 마오쩌둥의 거대좌상이 모 지역에 세워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오쩌둥을 이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 개인숭배의 폐해를 절감하고, 공산당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를 철저히 금지한 후부터 이러한 활동은 제한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2016년 초엔 다시 완성을 앞둔 좌상이 철거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사태는 이전부터 얘기돼 오던 시진핑에 의한 ‘탈(脫)마오화’라는 해석을 낳았다.

지난달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폐막하고 시진핑 집권연장과 시진핑 사상 관련 뉴스들이 집중 보도된 후,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微信)을 통해 여러 업체가 시 주석의 흉상을 판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1인 지배체제를 확립한 시진핑에 대한 개인숭배 열풍이 불면서 이제 시 주석의 흉상까지 출시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흉상은 마오쩌둥의 ‘신 만들기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국에서 유행하던 인민복을 입은 마오쩌둥의 흉상과 꼭 닮아있다.

마오쩌둥이 내려온 신단, 그 비어있는 신단에 이제 시진핑이 올라갈 준비를 하는 것인가?

[안영은 ACC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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