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박근혜 대통령 그린 초상화가 이원희 "왜 청와대에 역사 기록화가 없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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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4-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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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부터 가나아트센터서 김영삼 박근혜 박원순 하정우 등 초상화 50점 전시

서직수 초상. 당대 최고 궁중화원들인 이명기와 김홍도의 합작이다. 1796년(정조 20), 비단에 채색, 148.8×72.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공손한 자세의 조선의 선비, '서직수 초상'(1796년)이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꿨다.

 이 그림이 그려진지 200년이나 훌쩍 지난 198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며 '초상화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주한 '서직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뛰어난 사실적이면서 정신성까지 표현한 초상이 있었는데, 현재에는 왜 없을까?"

 결정적인 순간이왔다. 90년대 중반 러시아 레핀스쿨로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비로소 현재 초상화의 문제가 '재료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러시아를 넘어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등 유럽의 서양회화, 특히 초상화에 대한 그들의 집단적인 내공의 진화를 살필수 있었다. 

 "이당 김은호 선생이 고종의 어진을 수묵으로 그렸고, 그 이후 유화로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 유화작품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정도로 형편없었어요. 그 간극이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생각하다가, 결국 재료에서 온 게 아닐까하는 판단이 들었죠."

 
 

김용건 하정우 부자를 그린 이원희 계명대 교수는 두 사람 시간 맞추기가 힘들었지만 다양한 포즈를 척척 취해주는 덕에 작업이 재미있게 진행됐다고 했다. 사진=박현주기자

 

​​이후 25년째 유화로 초상화를 그려오고 있는 이원희(58ㆍ계명대 미대)교수다. 

1989년부터 초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 90년대에 초상화로 개인전도 열었다. 당시 '초상화 장르'는 블루오션이었다.

'초상화=영정사진' 이라는 인식이 강해 어느 누구도 초상화 작업을 시도하지 않았다. 당시는 풍경화가 인기있던 시절이었다.

작가로서 풍경을 하면서 초상화 작업은 드러내고 못했다. 풍경에 익숙해진 손은 터럭하나, 마마자국까지 생생하게 표현하는 극사실화를 어색해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교수로 임용되기전이어서 "고정적 수입원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생계형 초상화가'로 시작했지만 대박을 터트렸다. 다단계 피라디드 판매법처럼 한명을 그리면 그 한명이 또 한명을 소개하고 또 소개해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는 계명대 교수가 됐고, 한동안 화단을 잊었다.
 
 하지만  진주는 숨어있어도 언제간 드러난다. 

 1997년, 가나아트 화랑에 전화가 왔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전화를 받은 이옥경대표는 순식간에 이원희 교수를 떠올렸다.  

 "90년대 시골풍경으로 인기작가였어요. 강남서 좋아하는 작가였는데, 딱 전성기시절에 사라진거죠."
 

이원희, 김영삼 대통령, 1997, Oil on canvas, 65.1x53cm.J


 그렇게 김영삼 대통령 초상화를 그린후 날개를 달았다. '대통령 초상화 작가'힘은 셌다. 윤관 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재순ㆍ이만섭·김수한·박관용·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이 자신들의 초상을 맡겼고 이후 재계까지 초상화주문이 이어져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초상화는 사실성이 일단 최고다. 닮았냐, 안닮았냐가 가장 큰 관건이다. 

 이 교수도 그 사실을 직시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 반드시 직접 대면을 한 뒤 작업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내면과 성격까지 담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 교수가 초상화 시장의 문을 연후 2000년 이후부터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들이 많아졌다. 그 많은 작가들중에 유독 이 교수의 초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그와 초상화작업을 해온 이옥경대표는 "의뢰자들 대부분 이원희의 초상화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묘사력이 탁월한 작가들이 많지만 그 대상자의 특징적이고 내면적인 것을 끌어내는 점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강점"이라는 것.

  획일적인 극사실 초상은 '이원희 스타일'이 아니다.  이 교수는 "서로 시간이 안맞는다고 사진만 갖고 그리면 죽은 그림이 되기 쉽다"며 "그림을 그리기전 의뢰자와 대면을 한다"고 했다.  한두번이라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고 그 사람만의 개성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람 손만이 담을 수 있는 온기는 사진이 못 따라온다"는게 그의 철칙이다.

 초상화를 실제인물처럼 잘 그렸어도 문제는 있다. 바로 그가 충격을 받은 '신직수 초상'도 신직수 본인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을 그렸다. 두 사람은 이름난 화가들이지만 한 조각 내 마음은 그려내지 못하였다. 안타깝도다. 내가 산 속에 묻혀 학문을 닦아야 했는데 명산을 돌아다니고 잡글을 짓느라 마음과 힘을 낭비했구나. 내 평생을 돌아보매 속되게 살지 않은 것만은 귀하다고 하겠다” -(신직수의 말)

 이 교수도 100% 롱런한 건 아니다.  “10번을 그렸는데 ‘우리 부모님이 너무 늙고 못 생기게 그려졌다’며 퇴짜를 맞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는 "주문자의 입맛에만 맞게 그리는 일은 안한다. 인물을 지나치게 이상화시키는 건 금물"이라며 "그 사람만의 개성, 상식적인 초상화의 범주를 넘어서는 초상화를 그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주름을 살짝 없애고 그린 박근혜 대통령 초상은 2009년 당선전 모습을 그렸다. 이원희교수는 이때 만난 박대통령의 느낌은 '누나 같았다'고 했다.


 '시간의 무늬'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유명 초상화가'로 등극한 그는 이제 역사적 사명감을 안고 있다.

  지인들과 유럽미술관을 투어하면서 왕 들의 초상을 관람하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그림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며 분기탱천했다. 실제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숱하게 그려온 '초상화'작업은 내공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교수입장에서 후학들, 제자들을 위해 자신이 징검다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초상화 작업이 너무 침체돼 있어요. 조선조 ‘전신초상'이라 해서 최고의 초상화 전통을 갖고 있는 국가인데 말입니다.  초상화는 인간 존재를 그리는 동시에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시대의 기록이라 중요합니다."

 그가 중국 공필화가인 하가영 텐진미술학원 교수를 소개하며 부러움반, 아쉬움반의 표정을 지었다. "공필화가로 중국에서 최고봉으로 치는 작가입니다. 2011년 중국 옥션에서 낙찰가만 800억을 기록할 정도로 비싼 작가죠. 2005년 그의 집에 갔을때 또 한번 충격을 받았어요. 하교수가 초기에 그리던 그림이 그대로 걸려있더라고요. 50호가 10억정도 하는 작가인데 왜 안파냐고 물었더니 "나중에 국보급 작가가 될지 모른다며 중국정부에서 관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말 듣고 참 부러웠습니다."

 '이원희 스타일 초상화'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전시가 오는 11일부터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더 클래식'(The Classic)전을 타이틀로 김영삼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정병국의원, 박원순 시장, 정한전자 남재현 회장,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과 연예계 대세인 하정우와 아버지인 김용건, 가수 이은미의 초상화 50여점과 크로키 등 8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근현대미술의 초상화 계보를 계승 확장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그는 이번 전시에 '인물이 중심이 된 기록화'에도 도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국빈방문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 부부와 포즈를 취한 사진을 가로 2.6m의 화폭에 옮겼다. 

“김영삼 대통령의 초상작업을 할 당시 청와대를 몇번 출입해봤는데 청와대가 너무 썰렁해서 무척 아쉬웠어요. 기껏해야 역대 대통령 초상화(15호 크기)만 같은 증명사진같은 얼굴그림이 전부였으니까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표현한 그림이 다채롭게 걸려 있다면, 외국 정상 등 귀빈들에게 이를 설명하며 우리 역사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 . 전시는 30일까지.(02)720-1020
 

박근혜 대통령 영국순방 순간을 그려내 역사 기록화에 도전장을 낸 이원희 계명대 교수. 사진=가나아트센터제공.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의 초상은 그의 호 인송을 배경삼아 그려 인물의 분위기를 더욱 중후하고 신뢰감까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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