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통의 미국 오토바이 메이커 '할리데이비슨'은 1983년 존폐 위기에 몰렸다. 불경기였던 데다 실용적인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일본 업체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4반세기가 지난 지금 할리 데이비슨은 브랜드 가치만 78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할리데이비슨이 이처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의 모임인 '호그(HOG·Harley Owners Group)족'이다. 할리데이비슨은 1983년 호그를 조직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며 고객들의 결속을 강화해 나갔다. 그 결과 수요가 다시 크게 늘기 시작했고 할리데이비슨은 이제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른바 '브랜드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인터넷 확산과 함께 브랜드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브랜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은 해당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일반 소비자에 비해 구매력이 크다. 때문에 기업들은 마케팅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도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브랜드 커뮤니티를 잘못 이해하거나 관리가 서툴어 내재된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세계적인 경영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최신호(4월호)에서 브랜드 커뮤니티 활용 기법 몇가지를 소개했다.
상당수 기업들은 브랜드 커뮤니티하면 마케팅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브랜드 커뮤니티를 통한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기업 경영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브랜드 커뮤니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일례로 할리데이비슨은 1980년대 위기 극복 과정에서 브랜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경영전략과 사업모델 전반을 재처방했다. '할리데이비슨'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기업 역량을 커뮤니티 활성화에 집중한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커뮤니티와 회사간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커뮤니티 행사에 직원들을 스태프로 참여시키며 유대감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스태프로 참여했던 많은 직원들이 '호그'로 변모해 행사의 주인공이 됐고 반대로 오토바이 전문가인 호그들 가운데는 할리데이비슨의 직원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브랜드 커뮤니티가 커뮤니티 회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떤 커뮤니티든 그곳에 참여하는 이들은 나름대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한 취미 활동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이들이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목적을 따져 이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세계적인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자사 커피숍을 '제3의 공간'이라는 의미의 '서드 플레이스(Third Place)'로 차별화한게 좋은 예다. 스타벅스는 가정을 '퍼스트 플레이스'로, 직장을 '세컨드 플레이스'로 구분해 집과 일터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서드 플레이스'로 불러 모으고 있다.
'커뮤니티'에 내재된 정치성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커뮤니티는 외부 세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체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경계를 분명히 해주는 게 중요하다.
세계적인 미용용품 브랜드인 도브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겠다며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 캠페인은 기업이 줄곧 만들어 온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반발로 이어져 '리얼 위민(Real Women)'이라는 캠페인으로 조직화됐다. 이 캠페인은 현실 속의 여성들은 TV 광고에 나오는 이들처럼 예쁘지도 않고 더 늙었거나 더 뚱뚱하고 더 깡망말랐다며 기업이 만들어낸 미적 기준을 비꼬고 있다.
커뮤니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일부 회원이 커뮤니티를 주도하게 하는 것보다 회원 모두가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 들어오는 회원들의 관심사를 찾아내 이와 관련한 하위 커뮤니티를 만들면 쉽게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데는 인터넷이 무척 유용하지만 너무 인터넷에만 의지하는 것도 금물이다. 온라인상의 관계는 깊이가 얕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 오히려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인터넷은 커뮤니티의 특성에 맞게 선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세계 최대 화장품기업 로레알은 가니어(Garnier)와 같은 일부 고급 브랜드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소비하는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중시한다는 판단에서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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