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혼수상태 딛고 운명 탐구…음악평론가 강헌 별세

  • 음악으로 시대 읽고 운명으로 인간 탐구…향년 64세

음악평론가 강헌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연합뉴스
음악평론가 강헌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연합뉴스]

음악평론가인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64세.

21일 문화계에 따르면 강헌은 전날(20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평을 이끌었다. 음악을 사회와 역사의 맥락에서 해석하는 평론으로 주목받았으며 영화 제작과 공연 기획, 문화행정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40대 초반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증 질환으로 쓰러져 2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는 이후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갖고 명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 소설가 꿈꾸던 청년, 한국 대중음악 비평의 중심에 서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강헌은 소설가를 꿈꾸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같은 대학 음악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공부했지만 처음 선택한 직업은 음악평론가가 아닌 영화인이었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상업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 '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와 TV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도 집필했다.

음악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후배의 부탁으로 가수 김현식에 관한 평론을 쓴 일이 본격적인 비평 활동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1990년대 대중음악 비평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서태지와 신해철, 강산에, 안치환 등 당대 음악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노래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짚었다.

특히 음악을 단순한 오락이나 유행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변화와 대중의 정서를 읽어내는 문화적 대상으로 다뤘다.

당시 함께 활동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두 사람이 여러 매체에서 활발하게 평론을 발표했고 '가요는 강헌, 팝은 임진모'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강헌은 동료들과 문화계간지 '예감', '상상', '리뷰' 등을 만들었으며 홍익대와 성공회대, 단국대, 성균관대 등에서 약 20년간 대중음악사를 가르쳤다.
 
▲ 23일간의 혼수상태…음악평론가가 명리학에 빠진 이유

고인의 인생은 40대 초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증 질환으로 쓰러진 그는 23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의식을 회복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경험은 삶과 운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후 명리학을 독학하며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탐구했다.

이러한 관심은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확장됐다. '강헌의 좌파명리학' 강좌를 진행했고, 명리학 연구소 '哲공소'를 열었다. 2015년에는 저서 '명리: 운명을 읽다'를 출간했다.

그는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자신의 운명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명리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신해철 삶 기록한 평론가…음악 밖에서도 이어진 행보

고인은 故 신해철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94년 인터뷰를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은 오랫동안 교류했다. 강헌은 2018년 '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를 펴내며 먼저 세상을 떠난 음악가의 삶과 작품을 조명했다.

이 책은 신해철의 음악적 성취뿐 아니라 그의 성격과 고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다뤘다. 강헌은 생전 인터뷰에서 신해철을 친동생보다 가까운 동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은 평론과 저술에 머물지 않았다.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등의 콘서트를 기획했고,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등 음악극 제작에도 참여했다.

음식과 와인에도 관심이 깊었다. 음식 관련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를 만들었고, SBS 라디오 '황교익·강헌의 맛있는 라디오'를 진행했다.

이후 문화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와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제5대 회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됐다.

저서로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명리: 운명을 읽다',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 등이 있다.

고인은 음악에서 출발해 영화와 공연, 음식, 명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었다. 활동 분야는 달랐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는 관심이 있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이며 장지는 용인 평온의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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