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중복상장 논란에도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내 낸드 생산기지 확보와 인공지능(AI) 저장장치 사업 확대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가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도 자회사의 별도 상장을 추진하는 데는 대규모 투자 부담을 분산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21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이르면 내년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예상 조달액은 최대 150억달러(약 20조원),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달러(약 200조원)로 거론된다. SK하이닉스는 상장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상장 추진 배경에는 미국 내 낸드 생산거점 확보 계획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SK하이닉스가 중국 다롄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추가 반입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하면서 솔리다임을 통한 미국 내 낸드 공장 건설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신규 공장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IPO를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텔의 미국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 일부를 임차하는 방안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솔리다임은 중국 다롄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생산을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로 신규 투자에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생산기지를 마련하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현지 고객사에 대한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솔리다임이 최근 퀄컴 출신 안드레스 카스트리욘을 대관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브라이언 발라드가 이끄는 로비업체와 계약한 것도 미국 사업 확대를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AI 데이터센터용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시장의 성장세도 상장을 서두르는 이유다. AI 산업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대되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낸드와 SSD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솔리다임은 고용량 쿼드러플레벨셀(QLC) 기반 SSD에 강점을 갖고 있다. 시장 성장기에 생산능력과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점은 SK하이닉스의 자금 사정이다. 올해 상반기 말 순현금이 69조원에 달하고 연말에는 141조원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최대 20조원 규모의 IPO를 검토하는 것은 자금 부족보다 투자 효율성과 사업 확장 속도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HBM과 차세대 D램, 첨단 패키징 등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솔리다임이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SK하이닉스는 핵심 메모리 사업에 자금을 집중하면서 낸드 사업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다.
다만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는 부담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이 중복상장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밝혔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주주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SK㈜와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지배구조에 솔리다임까지 별도 상장하면 모회사 기업가치가 할인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상장 자금으로 솔리다임의 생산능력과 수익성이 개선되면 지분율 하락에 따른 영향을 상쇄할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솔리다임 상장이 SK하이닉스 중장기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솔리다임이 IPO를 통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자체적으로 설비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에 투입할 자금을 HBM과 서버용 D램 등 다른 메모리 사업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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