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공형진은 정말 무례하려고 했을까?

  • 행동 스크립트와 양성 위반 이론으로 본 농담의 실패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을 대하는 태도로 도마에 올랐다. 공식 행사에서 선배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차지연의 말을 끊거나 면박을 주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다.

지난 17일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극동방송 창사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공형진은 차지연과 함께 중간 진행자로 무대에 올랐다.

차지연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공형진은 "선배니까 다시 한 번 인사하라"고 요구했다. 차지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무대 뒤 화면에 차지연의 사진이 나오자 "왜 내 사진은 없어? 내가 얘보다 훨씬 선배인데"라며 "대세니까"라고 덧붙였다.

다음 무대를 소개하던 중에는 "너 왜 연기해? 평소처럼 해"라고 말하는가 하면, 자신의 대사를 차지연이 했다며 "오늘 차지연이 주인공이니까 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영상이 공개되자 비판이 쏟아졌다. 친분이 있더라도 공식석상에서 상대를 낮춰 부르거나 반복적으로 면박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공형진은 후배를 무시하려고 작정했던 걸까. 아니면 소위 '꼰대'라서 그런 걸까. 실제 의도는 공형진만이 알지만 그의 언행이 어떤 마음을 거쳐 나왔을지, 왜 예상과 다른 반응을 불렀는지는 살펴볼 만하다.
 
▲ 익숙한 농담이 낯선 무례함으로

사람은 새로운 상황에서도 익숙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경험을 통해 형성한 행동의 틀을 비슷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행동의 틀을 스크립트(scrip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식당에 들어가면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르듯, 사람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상황에 맞는 행동 순서를 학습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매번 처음부터 판단하지 않는다.

공형진은 1990년 데뷔한 배우다. 오랫동안 영화와 드라마, 예능과 라디오를 오가며 활동했다. 그가 방송계에서 경력을 쌓던 시절에는 선배가 후배를 놀리고, 후배가 이를 받아주는 장면이 예능의 한 방식으로 활용되곤 했다.

그런 방식에 익숙했다면 이번 무대에서도 비슷한 진행을 시도했을 수 있다. 선배라는 지위를 과장하고 후배에게 핀잔을 주는 행동을 권위 행사보다는 웃음을 만드는 장치로 여겼을 가능성이다.

다만 한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행동도 관계와 상황, 사회적 기준이 달라지면 불편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는 평범한 농담이 누군가에겐 낡은 권위의 표현으로 보일 수 있다.
 
▲ 농담은 왜 웃기지 않았을까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의 피터 맥그로와 케일럽 워런은 2010년 학술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유머가 성립하는 조건을 설명했다.

이들이 제시한 양성 위반 이론(Benign Violation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행동이 규범을 위반하면서도 동시에 무해하거나 용인할 만하다고 느낄 때 웃음을 경험할 수 있다.

연구진은 다섯 차례의 실험을 통해 도덕적 규범을 위반하는 행동도 무해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농담에는 적당한 선 넘기가 필요하지만, 그 선 넘기가 괜찮다고 느껴져야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실수를 놀리면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이 여러 사람 앞에서 같은 실수를 지적한다면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말은 같아도 관계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공형진의 발언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선배가 후배에게 "다시 인사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은 평등한 관계에서 기대되는 예절을 벗어난다. 

두 사람이 서로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이를 장난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있지만, 관객은 두 사람의 실제 친분이나 평소 대화 방식을 모른다. 이들에겐 선배가 후배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모습으로만 비칠 수 있다.
 
▲ 웃기려던 선배, 난처해진 후배

공형진의 언행을 다른 각도에서 볼 여지도 있다. 현재의 인기와 과거의 경력이 엇갈리는 상황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을 가능성이다.

차지연은 명실상부 톱 뮤지컬배우다. 반면 공형진은 오랜 활동 경력을 지녔지만 최근 활동은 뜸했다. 현재의 주목도에서는 차지연이 앞설 수 있어도 연예계 선후배 관계에서는 공형진이 선배인 모습이다.

공형진은 무대 뒤 화면에 자신의 사진이 없는 것을 지적하며 연기 경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지연을 두고 '대세'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대사를 차지연이 먼저 했을 때도 그가 주인공이니 봐주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발언들을 묶어 보면, 공형진은 '더 주목받는 후배에게 자존심을 내세우는 선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을 수 있다.

지위 불일치(status inconsistency)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여러 지위의 위계 서열이 서로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공형진은 이러한 위계의 엇갈림을 유머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농담을 완성하기 위해 차지연은 다시 인사하고, 말을 멈추고, 해명해야 했다. 공형진이 웃음거리로 삼으려던 대상은 자신이었을지 몰라도, 실제로 난처해진 사람은 차지연이었다.

상대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농담에 관객은 공감하기 어렵다.
 
▲ 공형진은 억울할지 모른다

공형진이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면 예상치 못한 비판이 당혹스러울 수 있다. 친근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말이다.

이때 구분해봐야 할 건 의도와 결과다. 누군가를 웃기려 한 것과 실제로 상대를 웃긴 것은 다르다. 친근하게 대하려 한 것과 상대가 친근함을 느낀 것도 마찬가지다.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배우 공형진이 뮤지컬배우 차지연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유튜브 채널 '극동방송' 영상 캡처]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주목하기 쉽다. 반면 타인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눈앞에 드러난 말과 행동, 그것이 미친 영향을 살핀다.

무대 위 모습이 불쾌했으니 공형진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차지연을 띄워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 시대가 바뀌었는데 농담은 그대로라면

공형진은 한동안 방송 활동이 뜸했다. 지난 8월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했을 때는 사업 실패와 개인적인 어려움 등을 털어놓기도 했다.

활동 공백을 이번 논란의 원인으로 꼽을 순 없다. 다만 오랫동안 익숙했던 방송 방식과 오늘날 관객이 기대하는 진행 방식 사이에 간극이 생겼을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사건을 세대 차이로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같은 세대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은 많고, 젊은 사람이라고 무례한 농담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능력이다.

우리는 저마다 익숙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 상대를 놀리면서 친근함을 표하기도 하고, 충고로 관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니 상대도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어떤 맥락으로 이해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공형진이 놓친 것도 이 부분일 수 있다. 자신에게 익숙한 농담이 다른 사람에겐 농담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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