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에 대해서도 재정지출 증가율과 초과세수 활용 방식 등을 고려해 중립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지영 IMF 상임이사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진국 중에서 재정 여력이 늘어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투자는 해야 한다는 게 IMF 실무진들의 공통된 인식이고 공감하는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최근 IMF 이사회에서 세계경제전망(WEO)과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전망(REO)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고 전했다. 중동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가 간 무역 긴장 등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한국은 AI 관련 수요의 수혜를 받으며 성장 전망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앞서 IMF는 지난 13일 발표한 WEO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제시했다. 지난 4월 전망보다 0.7%포인트 상향한 수치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8%로 0.3%포인트 높였다.
세계경제 성장률은 올해 3.1%, 내년 3.4%로 전망했다. 한국이 세계 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IMF는 AI 관련 투자가 세계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그 혜택이 일부 국가와 산업에 집중되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최 이사의 전언이다.
재정 여력 개선도 한국을 바라보는 IMF의 시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IMF가 지난 14일 발표한 10월 재정모니터(Fiscal Monitor)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부채 비율을 올해 47.3%로 전망했다. 지난 4월 전망치인 54.4%보다 7.1%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2031년 전망치도 기존 63.1%에서 49.7%로 하향 조정됐다. 성장률 전망 개선과 세입 여건 변화 등이 부채 비율 전망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이사는 IMF의 일반적인 정책 권고와 한국의 상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MF는 관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 향후 충격에 대비해 각국이 통화·재정 정책을 신중하게 운용하고 재정 완충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정 여력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한국은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투자를 이어갈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부분 나라는 재정 여력이 없거나 줄어들고 있지만 한국은 재정 여력이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IMF 실무진도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예산안의 전체적인 재정 기조는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세입 증가에도 지출 증가율을 12.8%로 관리하고, 일부 재원을 부채 상환에 활용하는 한편 미래대응기금을 통해 상당 부분을 미래 투자에 대비해 남겨두는 구조라는 점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최 이사는 "미래대응기금도 내년 지출하는 부분이 있고 약 60%는 이후로 저축해 나가는 구조인데, 그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세수를 모두 당장 지출하거나 부채 상환에만 쓰기보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투자에 활용하는 방향에 공감대가 있다는 취지다.
다만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대한 IMF의 공식적인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AI와 반도체 호황에 대해서는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살펴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IMF는 AI가 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릴지 불확실하고 노동시장과 금융 안정성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관련 투자 확대가 금융시장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경계하는 분위기다. IMF가 최근 WEO에서 AI 투자 기대의 재평가를 세계경제의 하방 위험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AI 투자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당장 꺾일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게 최 이사가 전한 내부 분위기다. 데이터센터 건설 등 AI 인프라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만큼 단기간에 투자 흐름이 급격히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최 이사는 "AI 관련 투자는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는 게 내부 시각인 것 같다"며 단기적인 변동성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보다 긴 흐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 호황이 꺾일 경우 한국도 주식 등 자산 가격 조정과 기업 수익성 악화, 경상수지 및 성장세 둔화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위험을 지적하는 것과 투자 사이클이 곧바로 끝날 것으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취지다. IMF가 한국의 성장세를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위험 요인을 함께 살펴보는 배경이다.
재정경제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을 지낸 최 이사는 지난 4월 IMF 상임이사로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서 상임이사와 대리이사직을 번갈아 맡는다. 최 이사는 외환제도과장,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친 정통 국제경제 관료 출신으로, 부임 직전까지 국제금융·대외경제 업무 전반을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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