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검찰의 고위직인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주광일(朱光逸·1943년생)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는 검사로서 법과 정의를 추구했고, 공직을 떠난 뒤에는 시와 문학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 왔다. 한때 날카로운 수사와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면도날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이 이제는 봄날의 꽃과 겨울의 고독, 떠나간 벗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그의 문학적 인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이어령 선생이다. 주광일은 경기고등학교 시절 이어령에게 문학을 배운 제자였다. 시와 소설을 가르쳐 주었던 스승은 제자의 문학적 재능을 아껴 국문학의 길로 나아가기를 권했다. 그러나 제자는 법학을 선택했다. 세월이 흘러 그 제자는 검찰의 고위직에 올랐고, 다시 시인이 되어 스승이 처음 발견했던 문학의 세계로 돌아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순환인가.
이어령과 경기고 문학소년, 그리고 신신아케이드의 양식 한 끼
주광일의 문학적 출발점은 경기고 시절의 문예반이었다. 당시 국어교사였던 이어령은 젊은 학생들에게 시와 소설을 가르치며 문학적 상상력과 언어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주광일이었다.이어령은 일찍부터 한국 문단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했던 문학평론가였다. 문학을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는 지적 모험으로 여겼다. 그러한 스승에게 문학을 배웠다는 것은 한 청년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이어령은 주광일에게 국문학을 공부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광일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으로 진학했다. 스승의 권유와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 인연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이어령선생 부부가 결혼한 지 1년쯤 되던 1959년 어느 가을날, 선생 부부는 주광일 소년을 서울의 신신아케이드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서양식 식사를 대접한 것이다. 주광일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스승에게는 사랑하는 제자를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식사가 있다. 음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사람의 마음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신신아케이드의 양식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문학을 가르쳤던 스승이 제자의 삶을 여전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나는 이 일화에서 교육의 본질을 생각한다. 진정한 스승은 학생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제자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지켜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자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때 다시 따뜻한 눈으로 맞이한다.
이어령과 주광일의 관계가 그러했다.
병상의 이어령이 네 차례 전화를 걸었던 이유
두 사람의 인연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건너 더욱 깊어졌다. 2021년 2월, 병상에 있던 이어령은 제자 주광일에게 네 차례나 전화를 걸어 《유형지로부터의 엽서》를 반드시 출간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제자의 시집 출간을 독려했던 것이다.그 시집의 서문에서 이어령은 주광일의 문학적 귀환을 모천으로 돌아온 연어에 비유했다. 긴 여정을 마치고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 연어의 은빛 비늘처럼, 법률가로 살아온 제자가 다시 시의 세계로 돌아온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그는 제자가 오랫동안 손에 쥐었던 칼과 법전을 시집과 붓의 세계로 녹여냈다는 뜻의 평가도 남겼다.
이 비유에는 이어령 특유의 문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연어는 넓은 바다를 헤엄치다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귀환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생명의 순환이며 새로운 생명을 위한 완성이다.
주광일에게 문학은 바로 그런 모천이었을 것이다.
경기고 시절 문학을 배우던 소년이 법률가가 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랑을 건넜다. 검찰 조직의 고위직에 오르고 국가의 공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 다시 시의 강으로 돌아왔다.
이어령은 그 귀환을 알아보았다. 스승이 젊은 날 발견했던 제자의 문학적 재능이 긴 세월을 거쳐 다시 빛나는 순간이었다.
신신아케이드에서 제자 주광일에게 양식을 대접했던 젊은 스승이 수십 년 뒤 병상에서 제자의 시집 출간을 독려했다는 사실은 한 편의 문학처럼 느껴진다.
교육은 교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참된 교육은 한 인간의 평생에 걸쳐 완성된다.
'면도날 검사'가 걸어온 법과 정의의 길
주광일은 194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그는 대검찰청 감찰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인천지검장, 대전고검장 등을 거쳐 1997년 서울고검장에 올랐다. 엄격하고 세밀한 업무 처리로 '면도날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에는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돼 김재규 수사에 관여했다. 인천지검장 재임 시절에는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과 법원 집달관 비리 사건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처리했다.
그가 걸어온 검사의 길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동기와 겹쳐 있다.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권력, 민주화의 진전, 법치주의의 정착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검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권력과 정의의 긴장 관계를 안고 있었다.
검사는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검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단순한 수사 능력이 아니다. 권력 앞에서도 법을 지키는 용기,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신중함, 그리고 법률의 조문 뒤에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동양의 법치 사상에서도 법의 엄격함과 인간에 대한 배려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다. 한비자가 법과 제도의 객관성을 강조했다면 공자는 정치의 근본에 덕과 예를 놓았다. 두 사상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권력의 자의성을 어떻게 제어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한다.
주광일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제4대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 위촉됐다. 범죄를 수사하는 검사에서 국민의 억울함과 고충을 살피는 공직자로 옮겨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력만으로 그의 모든 공직 활동을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법의 권위가 국민의 삶과 만나는 지점을 생각하게 하는 전환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법이 국민 위에 군림하면 권력이 되지만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면 정의에 가까워진다.
《유형지로부터의 엽서》,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향한 시인의 질문
주광일의 문학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작품이 2021년 출간한 《유형지로부터의 엽서》다. 이 시집은 개인의 사랑과 그리움만을 노래한 작품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사회적 모순을 시인의 언어로 성찰한 작품이기도 하다.
《유형지로부터의 엽서》
2021년 한강출판사에서 출간한 시집. 자유와 법치, 현실의 부조리를 성찰하며 이어령의 추천과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2023년에는 일본어 번역판도 출간됐다.유형지는 본래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 강제로 보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유형지는 단순한 유배지가 아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할 사회에서 인간이 정신적 억압과 소외를 경험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읽힌다.
시인 허형만은 이 시집에 대한 해설에서 주광일이 광장의 존재 가치를 자유에서 찾고, 불안한 시대 현실을 상징과 알레고리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시인이 자신의 조국을 유형지에 비유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희망을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검사 출신 시인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한다.
법률가였던 그는 자유와 정의를 법률의 조문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시인이 된 뒤에는 그 가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충실히 구현되고 있는지를 문학의 언어로 묻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권력의 주인이어야 한다.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때때로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법의 정신을 압도하며, 진영의 논리가 진실과 정의를 가리는 일이 발생한다.
주광일의 시집을 오늘의 정치 현실과 연결해 읽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시적 문제의식은 특정 정권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일회성 비판을 넘어 권력과 자유, 법치와 인간의 존엄이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정치적 풍자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진정한 풍자는 사회가 잊어버린 원칙을 다시 일깨우는 문학적 양심이다. 권력자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권력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의 작품에 담긴 시대적 풍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나는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떠올린다.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제기한 중요한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포기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법치주의 역시 법률의 형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독립적인 판단, 시민의 비판적 사고, 권력에 대한 감시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검사 주광일이 법의 질서를 지키는 데 자신의 직업적 삶을 바쳤다면, 시인 주광일은 법이 지켜야 할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문학의 언어로 다시 묻고 있는 셈이다.
젊은 날의 사랑에서 사계절의 문학으로
주광일의 문학 활동은 결코 노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92년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라는 시집을 펴냈다. 경기고와 서울대 재학 시절에 썼던 사랑의 시 60편을 묶은 작품이었다.이미 검찰의 중견 간부가 된 인물이 젊은 날의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검사라는 엄격한 직업 속에서도 문학소년의 감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4년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면서 《UR 협정의 법적 고찰》도 출간했다. 국제통상 질서의 변화를 분석한 법률 전문서였다. 법률의 세계와 문학의 세계를 동시에 탐구해 온 그의 지적 이력을 보여준다.
이후 《유형지로부터의 엽서》를 거쳐 최근에는 《겨울엽서》와 《봄엽서》를 출간했다. 《봄엽서》에는 2026년 봄에 쓴 70편의 시가 실렸다. 봄의 풍경과 일상의 소중함, 떠난 벗에 대한 그리움, 자유와 정의, 법치에 대한 걱정,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기도가 담겨 있다.
그는 앞으로 《여름엽서》와 《가을엽서》까지 펴내 사계절의 문학을 완성할 계획이다.
비발디가 음악으로 사계절을 그렸다면 주광일은 시로 사계절을 그리는 것이다.
봄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고 여름은 성장과 열정의 계절이다. 가을은 성숙과 결실을 상징하며 겨울은 고독과 성찰의 시간이다. 이 네 계절은 자연의 순환이면서 인간의 생애를 상징한다.
그러나 인생에는 자연의 사계절과 다른 특별한 계절이 있다. 육체는 늙어가지만 정신은 다시 젊어지는 계절이다. 경험은 깊어지고 욕망은 줄어들며, 세상을 이해하는 눈은 더욱 넓어지는 시기다.
주광일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계절이 바로 그러한 정신의 봄이 아닐까.
공자의 종심을 넘어, 팔십 귀진과 구십 무아의 길로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일흔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다.공자가 말한 일흔의 경지는 단순한 자유방임이 아니다. 평생의 수양을 통해 욕망과 도덕이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상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인간의 도리와 공동체의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성숙한 자유다.
나는 이 공자의 인생철학을 오늘날 백세 시대에 맞게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다.
칠십 종심(七十從心), 팔십 귀진(八十歸眞), 구십 무아(九十無我), 백세 합천(百歲合天)
여기서 칠십 종심은 공자의 가르침이지만, 팔십 귀진과 구십 무아, 백세 합천은 내가 백세 인생을 생각하며 덧붙인 현대적 인생철학이다. 고전의 원문에 나오는 연령별 구분은 아니다.일흔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도리를 넘어서지 않는 자유를 얻는다. 여든에는 인생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를 귀진, 곧 참됨으로 돌아가는 경지라고 부르고 싶다. 아흔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마저 내려놓는 무아의 경지로 나아간다. 그리고 백세에는 인간과 자연, 하늘과 우주가 하나의 생명 질서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합천의 경지를 꿈꾼다.
주광일은 1943년생으로 이제 여든셋의 나이다. 공자가 말한 칠십 종심을 지나 팔십 귀진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귀진은 어떤 의미일까
젊은 날 이어령에게 문학을 배우던 경기고 문학소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법률가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부정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경험을 자신의 본래 꿈인 문학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검찰의 고위직에 올랐던 경험도, 국민의 고충을 살폈던 공직의 기억도,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온 체험도 모두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다.
팔십 귀진은 세상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경험을 자기 내면에서 다시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창조의 시간이다.
구십 무아에 이르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의 성취, 나의 명예, 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이 얻은 지혜를 사회와 후세에 돌려주는 경지다.
백세 합천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단계다. 인간과 문화와 자연이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우주적 생명 질서 안에서 공존한다는 인식이다.
나는 주광일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시를 쓰며 이러한 정신적 여정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아흔에는 더 깊은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백세에는 자연과 우주의 조화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가 평생 쌓아온 법률적 지식과 사회적 경험, 문학적 감수성이 새로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지혜로 결실을 맺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다.
인간·문화·자연... 한 법률가의 아름다운 귀향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한 인간의 가치를 직함과 지위로 평가하는 데 익숙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어떤 자리에 올랐는가, 얼마나 많은 권한을 행사했는가를 성공의 척도로 삼았다.그러나 인간의 삶은 직업적 성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무엇을 배우는가. 젊은 세대와 어떤 정신을 나누는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문화에 무엇을 남기는가. 이런 질문들이 오히려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때가 있다.
주광일의 삶에서 가장 아름답게 읽히는 부분은 검사라는 경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경력에 갇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사는 그의 직업이었지만 시는 그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되었다. 법률은 그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중요한 방식이었고 문학은 그 관계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드는 통로가 되었다.
그의 시집들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인생사가 보인다.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에는 젊은 날의 사랑이 있고, 《유형지로부터의 엽서》에는 자유와 법치를 향한 지식인의 고뇌가 있으며, 《겨울엽서》와 《봄엽서》에는 세월을 건너온 사람의 그리움과 희망이 담겨 있다.
이 모든 문학적 여정의 출발점에는 이어령이 있다.
경기고 교실에서 시와 소설을 가르치던 스승, 신신아케이드에서 소년 주광일에게 서양식 식사를 대접했던 스승, 그리고 생의 마지막 시기에 병상에서 제자의 시집 출간을 독려했던 스승이다.
이어령은 이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심은 문학의 씨앗은 주광일의 시 속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평생 사라지지 않는 정신의 불씨일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성숙을 세 가지 관계 속에서 생각한다.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 문화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가, 자연과 얼마나 조화롭게 살아가는가이다.
인간·문화·자연
주광일의 이야기는 이 세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문화는 그 존엄의 의미를 풍요롭게 한다. 자연은 인간이 모든 권력과 명예를 내려놓은 뒤에도 돌아갈 수 있는 근원적 세계다.
검사의 칼은 잘못을 가려내지만 시인의 붓은 상처를 어루만진다. 법은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 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가꾼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한 문명을 이루기 어렵다.
인생의 봄에는 꿈을 꾸고 여름에는 세상과 겨루며 가을에는 성취를 거둔다. 그리고 겨울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의미를 돌아본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에는 또 하나의 봄이 있다. 나이를 넘어 다시 배우고 사랑하고 창조하는 봄이다.
주광일은 지금 그 두 번째 봄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가 《여름엽서》와 《가을엽서》를 완성하고, 이어령에게 배웠던 문학의 정신을 더욱 깊은 작품 세계로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그리고 구십 무아를 넘어 백세 합천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사랑하고 문화를 창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인의 길을 오래도록 걸어가기를 기원한다.
인생의 마지막 성공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평생 쌓아온 경험을 문화로 바꾸고, 자신이 얻은 지혜를 다른 사람의 위로로 돌려주는 데 있을 것이다.
법의 칼을 들었던 손으로 이제 시의 엽서를 쓰는 사람. 이어령이 발견했던 경기고 문학소년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돌아 마침내 시인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천에 돌아왔다.
칠십 종심을 지나 팔십 귀진으로, 다시 구십 무아와 백세 합천으로
그의 앞날에 아직 쓰이지 않은 수많은 시가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그 시들이 인간의 아픔을 위로하고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를 바란다.그리고 먼 훗날 사람들이 주광일을 기억할 때, 대한민국의 서울고검장을 지낸 검사였다는 사실과 함께 인간을 사랑하고 자유를 노래하며 문학으로 자신의 인생을 완성해 간 시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어령 선생이 그토록 아꼈던 문학소년 주광일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인생의 결실일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