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 호원병원의 박향진 이사장은 그 질문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최근 신축 공사를 마친 호원병원에 갤러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것도 병원 한쪽 복도나 자투리 공간이 아니라 진료실과 입원실로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을 문화시설로 바꿨다.
지난 10월 14일 TV조선 구자형 기자가 보도한 이 이야기는 병원 경영의 상식과 인간적인 배려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고 병원 경영자는 의료의 질과 수익성, 지속 가능한 운영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료공간을 줄여 갤러리를 조성한다는 것은 가볍게 내릴 결정이 아니다. 박향진은 그 공간을 시민들에게 내놓았다.
그는 TV조선 인터뷰에서 병원이 사람들에게 두렵고 딱딱하며 빨리 떠나고 싶은 장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갤러리를 보고 위안과 마음의 치유를 얻어간다면 그것으로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향진은 전남 진도 출신이다. 젊은 시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고 뜨거운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그는 당시 시원한 나무 그늘을 발견하고도 잠시 쉬어가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그 말에는 한 시대의 한국인이 살아온 모습이 담겨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낯선 땅에서 땀을 흘렸다. 독일의 광산과 병원, 중동의 건설현장, 국내의 공장과 시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다. 박향진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젊음을 보냈고 이후 사업을 일구어 의정부에 의료기관을 경영하는 위치에 이르렀다. 그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을 리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경제적 성취를 이룬 뒤 어떤 선택을 했느냐는 점이다.
2026년 9월 21일 신축 공사를 마친 호원병원에는 '갤러리 윤영'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이곳에는 박향진이 소장해온 작품과 60년 친구였던 고 김민배 전 TV조선 대표의 기증 작품 등 2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백범 김구 선생이 1948년 삼일절을 기념해 쓴 것으로 소개된 '혜사(蕙史)' 묵서다. TV조선은 이를 '민초가 만드는 아름다운 역사'라는 뜻으로 설명했다. 겸재 정선의 명작 '인왕제색도'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도 전시돼 있다.
백범의 글씨가 병원 안에 있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백범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남긴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는 문화의 힘에 대한 깊은 신념이 담겨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은 부강한 나라를 넘어 문화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다른 나라에도 기여하는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그가 말한 문화는 단순한 예술품의 소유나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 점에서 백범의 묵서가 병원 갤러리에 전시된 것은 의미 있는 장면이다. 역사적 인물의 글씨가 의료공간에 놓이고, 환자와 보호자, 시민들이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문화가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것이 되는 셈이다.
갤러리 윤영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박향진의 오랜 친구였던 김민배 전 TV조선 대표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진도에서 성장한 60년지기 친구였다. 김민배는 언론인의 길을 걸어 조선일보 기자와 간부를 거쳐 TV조선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가 경영을 맡았던 시절 TV조선은 '미스트롯'을 통해 트로트 열풍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초대 우승자인 송가인 역시 진도 출신이라는 점에서 세 사람의 고향 인연도 흥미롭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굳이 화려한 경력이나 성공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나이가 들면 함께 전국의 올레길을 걷고 김치찌개가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바쁜 인생을 마무리한 뒤 친구와 천천히 걷고 밥 한 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약속은 김민배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박향진은 친구가 남긴 그림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어 했고, 호원병원 신관 건립을 계기로 갤러리를 조성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우정의 세월보다 그것을 실천한 방식이다. 친구를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진을 간직하거나 추모의 글을 남길 수도 있다. 박향진은 친구가 사랑했던 그림을 시민들과 나누는 공간으로 옮겨놓았다. 개인적인 추억을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으로 바꾼 것이다.
물론 이 일을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는 없다. 병원에 갤러리를 조성하는 것은 하나의 경영적 선택이며, 그 가치는 앞으로 얼마나 충실하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평가받을 것이다. 다만 진료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문화시설로 내놓았다는 사실과 그 출발점에 오랜 친구를 기억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박향진의 구상은 작품 전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병원 측은 앞으로 갤러리를 신인 작가들에게 무료로 빌려주거나 작은 음악회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특히 모두의 관심을 끈다. 갤러리가 소장품을 전시하는 데 그친다면 개인의 취향을 보여주는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신진 작가들에게 발표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음악과 미술을 만나는 공간으로 운영된다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작품을 선보일 무대가 필요하다. 시민들에게는 일상 가까이에서 문화를 접할 기회가 필요하다.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잠시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갤러리 윤영이 이 세 가지 요구를 함께 충족한다면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의료기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의료의 본질은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데 있다. 정확한 진단과 안전한 치료, 의료진의 전문성과 환자에 대한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시설이 이러한 기본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좋은 의료기관은 질병만이 아니라 질병을 겪는 사람의 마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환자는 병원에서 검사와 치료를 받지만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 기다림을 경험한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공간에 예술을 감상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병원을 조금 더 인간적인 환경으로 만드는 일이다.
박향진이 젊은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바라보았다는 나무 그늘을 다시 생각한다. 당시에는 잠시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경영하는 병원에 다른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것이 의도된 인생의 설계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젊은 시절과 오늘의 선택을 연결해보면 흥미로운 대비가 나타난다. 한때는 쉬지 못하고 일했던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쉼의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자의 성취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매출과 이익, 자산과 성장률은 중요한 기준이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한 경영자의 삶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사업의 규모로 기억되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산업을 개척한 성과로 기억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것을 사회와 나눈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향진의 갤러리 조성은 거대한 사회공헌 사업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의 중요한 공간을 환자와 시민을 위한 문화시설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다.
동양의 고전 『도덕경』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이 말은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요란한 선언이나 거창한 사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박향진의 선택도 그 자체로 평가하면 된다. 친구의 그림을 보존하고, 시민들이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으며, 앞으로 젊은 작가들에게도 그 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그 이상의 찬사를 덧붙이기보다 이러한 약속이 실제로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엇보다 호원병원 신관의 새로운 출발은 박향진 개인의 인생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에는 생계를 위해 일했고 이후에는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사람들과 나누는 방향으로 삶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인생의 후반부가 갖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줄이고 현역에서 물러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과 자산, 사람과의 관계를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평소 생각해온 '밥과 일과 꿈'의 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밥은 삶의 기본이고 일은 인간이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이며 꿈은 그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젊은 날 밥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의 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면, 그 또한 한 인간의 삶이 성숙해가는 모습일 것이다.
의정부 호원병원 신관이 앞으로 환자에게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발전하고, 갤러리 윤영이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좋은 의료서비스와 성실한 문화공간 운영이 함께 이루어질 때 박향진의 선택은 더욱 큰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
백범 김구의 글씨가 있고, 먼저 떠난 친구 김민배의 그림이 있으며,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새롭게 걸릴 수 있는 공간. 그곳은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장소가 될 수 있다.
먼저 떠난 친구는 그림을 남겼고, 남은 친구는 그 그림을 지킬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 그 공간의 주인은 그림을 남긴 사람이나 갤러리를 만든 사람만이 아니다. 그곳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잠시 쉬어가는 환자와 보호자, 시민들 역시 그 공간의 주인이다.
박향진은 아직 자신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진도에서 출발해 중동의 건설현장을 거쳐 의정부에 병원을 일군 그의 삶은 이제 의료와 문화라는 새로운 장을 맞고 있다.
인간을 위한 의료,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연의 그늘. 그 세 가지가 만나는 곳에 좋은 병원이 있고, 좋은 경영의 철학이 있다.
호원병원 갤러리 윤영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단순히 두 친구의 우정만이 아니다. 한 인간이 평생 일군 성취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방식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박향진은 그 질문에 말보다 공간으로 답하고 있다.
병원 한 층을 미술관으로 바꾼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