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제성경 목사와 이민영 기자 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정의는 시대의 양심이고, 기록은 역사의 기억이다

  • 성경의 공의, 불경의 자비, 도덕경의 상선약수에서 만나는 두 지식인의 시대정신

  • 목사의 양심과 기자의 펜이 함께 묻는다. 대한민국은 과연 정의로운 나라인가

 
1
[「정의와 기록의 외침」 (퍼플) 출판, 책자 표지 사진]

 

2026년 10월, 한 목사와 한 기자가 함께 쓴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정의와 기록의 외침』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의빛 은광교회의 제성경 목사와 전북도민일보 이민영 기자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 사람은 성경을 들고 인간의 영혼을 살피는 목회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펜을 들고 사회의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고, 억울한 사람이 보호받으며, 권력이 진실 앞에서 겸손해지는 사회다.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양심을 묻고, 기자는 역사 앞에서 인간의 책임을 묻는다. 목사의 설교가 사람의 마음을 일깨우는 일이라면 기자의 기록은 세상의 기억을 일깨우는 일이다. 설교가 진실을 외면하면 공허한 말이 되고, 기사가 정의를 외면하면 차가운 정보에 그치고 만다. 신앙에는 사랑이 필요하고 언론에는 양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 없는 정의가 폭력이 될 수 있듯이, 진실 없는 사랑 또한 위선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언론이라는 직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질문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사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국가는 누구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가. 인간과 문화와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수사가 아니다. 억울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지키며, 인간의 존엄을 모든 제도와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리와 정의와 자유의 기본이며,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제성경 목사와 이민영 기자의 만남을 단순한 공동 저술 이상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두 사람은 종교와 언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통해 오늘의 양심을 묻는 자리에서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우리에게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던진다. 과연 우리는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그 배움을 오늘의 정의로 실천하고 있는가.

정의가 사라진 자리에 인간의 존엄도 사라진다

『정의와 기록의 외침』은 2026년 10월 1일 출간된 293쪽의 책이다. 제1부 ‘진실은 누구의 편인가’, 제2부 ‘대한민국은 왜 약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제3부 ‘정의는 살아있는가’, 제4부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을 말하다’로 구성됐다. 특히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삼청교육대, 익산 약촌 오거리 사건, 신안 염전 노예 사건, 수원 노숙 소녀 사건, 낙동강변 살인 사건, 삼성 반도체 백혈병, 김용균 사건, 용산참사 등 열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되묻는다.

이 사건들은 발생 시기와 배경, 법적 책임과 피해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하나의 잣대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사된 권력은 언제 정당성을 잃는가. 산업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생명은 어디까지 희생될 수 있는가. 사법제도가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피해자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을 싸워야 한다면 그 사회를 과연 정의로운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가.

성경은 이러한 질문 앞에서 분명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다. 구약성경 아모스 5장 24절은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기를 촉구한다. 이는 종교적 의례만으로 신앙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다.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아름다운 찬송을 부르더라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신앙의 본질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 미가 역시 6장 8절에서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정의와 사랑과 겸손은 따로 떨어진 덕목이 아니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인간을 상처 입힐 수 있으며, 겸손이 없는 정의는 또 다른 독선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제성경 목사가 현대사의 상처를 목회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의미도 이러한 성경적 전통에서 읽을 수 있다.

예수는 마태복음 25장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를 영접하고, 병든 사람과 갇힌 사람을 돌보는 행위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그 가르침을 오늘의 대한민국에 비추어 보면 종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교회의 성장만이 아니라 노동 현장의 안전, 사회적 약자의 생존, 억울한 피해자의 회복까지 확장된다. 신앙의 크기는 건물의 높이나 신자의 숫자로만 측정할 수 없다. 고통받는 인간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불교의 자비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실천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불교의 가르침을 함께 떠올린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강조한다면 불교는 고통의 실상을 직시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탐구한다. 두 종교는 신과 인간, 구원과 해탈에 관한 교리에서 차이가 크지만, 고통받는 존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요청에서는 만날 수 있다.

『법구경』 제129게송은 모든 존재가 폭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자신을 다른 존재에 비추어 살생하거나 남을 해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처럼 이해하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다. 다른 존재가 겪는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그 고통을 줄이려는 실천적 마음이다.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과 같은 사건을 바라볼 때 필요한 것도 이러한 마음이다. 피해자들을 단순한 과거사의 등장인물로 취급하지 않고, 저마다 가족과 꿈과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기록되지 않은 고통은 사회적 기억에서 사라지기 쉽고, 기억되지 않는 고통은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언론의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보존을 넘어 사회적 자비를 실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도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기업의 이익, 시민의 자유와 국가의 권력, 언론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건강성은 서로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다른 사람의 존엄도 안전할 수 없다.

노자의 상선약수, 정의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른다

『도덕경』 제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노자는 물의 이러한 성질을 통해 참된 덕의 모습을 설명했다.

나는 이 구절이 오늘날 권력자와 언론인, 종교인에게 모두 필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지만 정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 언론은 유명한 사람의 말보다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종교 역시 세속적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기보다 고통받는 사람의 곁에 머물러야 한다.

『도덕경』 제77장은 하늘의 도가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자연의 균형을 통해 인간 사회의 불균형을 성찰하게 하는 철학이다. 부와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고 위험과 고통이 다른 쪽으로 전가되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노자의 무위자연을 현대 민주주의의 법과 제도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친 욕망을 경계하고 강압적인 지배를 반성하며 낮은 곳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정의로운 사회는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강한 제도가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제성경, 성경에서 AI까지 새로운 목회의 길을 묻다

제성경 목사의 이력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전통적인 목회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신앙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석대학교 기독전문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AI의 DNA 목회자의 DNA 융합』, 『특이점을 뛰어넘는 영성 AI』, 『성경, 현장에서 다시 읽다』 등 여러 저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목회와 영성을 고민해 왔다. ‘설교클리닉 비서AI’ 개발도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성경 자료를 분석하고, 설교를 준비하고, 종교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일까지 기계에 맡길 수는 없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종교의 핵심은 인간의 영혼과 존엄에 관한 질문으로 남을 것이다.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목회자는 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 기술이 지식을 풍부하게 만들수록 인간은 지혜를 필요로 하고, 정보가 넘쳐날수록 양심의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설교문을 작성하는 시대에 목회자의 진정한 경쟁력은 설교문의 문장력이 아니라 그가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다.

제성경 목사가 이번 책을 통해 보여주는 방향도 그러한 관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신앙이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아픔을 마주하는 일, 기술의 발전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에 두는 일은 앞으로 종교계가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민영, 늦게 시작한 기자의 길에서 발견하는 기록의 사명

이민영 기자의 인생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문학박사이자 시인으로, 전주대학교 학보사와 홍보실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뒤 언론계에 들어왔다. 전북도민일보와 KNS뉴스통신, 전민일보 등을 거쳐 현재 전북도민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 대학인』, 『내 삶의 바람개비』 등의 저술을 남겼다. 제이디상생포럼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기자의 경력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언론에 들어온 시점보다 그가 살아온 경험의 폭이다. 기자는 젊어서 시작해야만 훌륭한 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오래 경험한 사람은 그만큼 많은 인간의 표정과 사회의 모순을 기억할 수 있다. 다만 경험이 깊다고 저절로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료를 확인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까지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의 생명은 사실이다. 정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을 왜곡해서도 안 되고, 선한 목적을 위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기사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것과 사실을 검증한다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검증이야말로 피해자의 억울함을 가장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방법이다.

이번 책에 추천사를 쓴 김용만 한국기자협회 사무총장은 이민영 기자에게 늦게 시작한 만큼 더욱 치열하게 질문하고 불편한 진실 앞에서도 물러서지 말라는 취지의 격려를 전했다. 

 나는 이 말이 젊은 기자와 중견 기자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기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르는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할 때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취재도 멈추고, 취재가 멈추면 언론은 권력의 발표를 전달하는 확성기로 전락하기 쉽다.

공자의 정명과 다석의 얼나, 인간은 어떻게 바로 설 것인가

동양의 고전에서도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결된다. 이를 오늘의 사회에 적용한다면 판사는 판사답고, 검사는 검사답고, 기자는 기자답고, 목사는 목사다워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답다’는 것은 직함이 주는 권위를 누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 직업과 지위에 따르는 책임을 다한다는 뜻이다. 판사가 법률의 문구만 보고 인간을 보지 못한다면, 기자가 특종의 명예만 탐하고 사실을 외면한다면, 목사가 교회의 성장만 추구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잊는다면 그 이름은 이미 본래의 의미를 잃은 것이다.

나는 다석 유영모의 사상에서도 이와 통하는 정신을 발견한다. 다석이 강조한 ‘얼나’는 육체적 자아와 세속적 욕망을 넘어 참된 정신적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사유다. 이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이끈다. 종교가 다르고 철학적 전제가 달라도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서로 대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경과 불경과 도덕경을 모두 같은 가르침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각각의 경전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 성찰을 중심으로 서로 배우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영성은 차이를 지워버리는 데 있지 않고,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길을 발견하는 데 있다.

AI 시대, 정의와 기록은 인간의 마지막 책임이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기사와 논문을 작성하고, 영상과 음성을 생성하며,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AI는 국가 행정과 사법, 의료, 교육, 언론, 종교의 영역까지 더욱 깊숙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그 답을 진리와 정의와 자유에서 찾고 싶다. AI는 방대한 판례를 분석할 수 있지만 판결의 도덕적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AI는 과거의 사건을 정리할 수 있지만 그 사건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에는 인간의 양심이 필요하다. AI는 성경과 불경과 도덕경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AI가 기사 작성의 속도를 높여준다고 해서 기자의 사명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과 허위가 더욱 정교하게 뒤섞이는 시대에는 사실을 검증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정의와 기록의 외침』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과제와 연결된다. 두 저자가 다룬 사건들은 과거에 발생했지만 그 사건들이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사회가 발전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용기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용기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까지 인정할 수 있는 용기여야 한다. 정의는 어느 한 진영의 소유물이 아니며, 양심은 정치적 편의에 따라 작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문화·자연, 두 사람의 만남이 남기는 것

나는 제성경 목사와 이민영 기자의 공동 저술을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질문을 남기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책을 읽고 감동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 감동이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지고, 잊힌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며, 다음 세대가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기록은 살아 있는 역사가 된다.

제성경 목사는 책의 발간 취지를 설명하면서 과거를 비난하거나 특정 진영을 옹호하기보다 아픈 역사를 통해 오늘을 성찰하고 더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지향은 소중하다. 다만 그 뜻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록의 정확성과 판단의 공정성,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존중이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

성경의 공의는 인간의 양심을 깨우고, 불경의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돌아보게 하며, 도덕경의 상선약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공자의 정명은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책임을 요구하고, 다석의 얼나는 세속적 자아를 넘어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길을 묻는다. 이 모든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다면 결국 인간을 존중하고, 문화를 사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밥이 필요하다. 생존의 토대다. 인간에게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의 능력과 책임을 실현하는 길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꿈이 필요하다. 오늘의 현실을 넘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다. 밥과 일과 꿈이 함께할 때 인간의 삶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밥을 얻을 기회를 가지고, 존엄하게 일하며, 미래를 꿈꿀 자유를 누리는 사회가 아닐까.

목사는 성경을 읽고 기자는 세상을 읽는다. 그러나 두 사람이 끝내 읽어야 할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눈물과 희망, 절망과 용기, 그리고 역사의 상처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생명의 의지다.

제성경 목사의 성경과 이민영 기자의 펜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생각한다. 정의는 강자의 승리를 선언하는 말이 아니라 약자의 존엄을 지키는 실천이며, 기록은 지나간 사건을 보존하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의 잘못을 막기 위한 인간의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목사의 설교는 양심을 깨우고, 기자의 기록은 역사를 깨운다. 양심이 살아 있어야 정의가 살아 있고, 기록이 살아 있어야 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만남에서 내가 발견한 인간과 문화와 자연의 정신이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겨야 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1
[지난 8일 제성경 목사(왼쪽)와 이민영 기자(오른쪽)가 광화문 근처 모처에서 만나 공저 신간을 들어 보이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