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락의 경제맥락] 변화하는 한·중 소비 패턴…'왕딩부왕차이'의 시대

  • 상품보다 경험, 고가보다 가성비…'안 쓰는' 소비에서 '골라 쓰는' 소비로

  • 쿠폰·보조금보다 소득·고용 안정으로 지속 가능한 소비 기반 다져야

중국 국경절 등 동아시아 주요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 국경절 등 동아시아 주요 연휴를 맞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 최대 소비 대목인 국경절 연휴가 끝났다. 올해 중국에서는 중추절과 국경절 사이에 연차 사흘만 사용하면 최대 13일을 쉴 수 있었다. 긴 연휴만 놓고 보면 여행과 쇼핑이 폭발할 만한 조건이었다. 

국경절 전반 5일간 중국의 지역 간 이동량 증가율은 0.5%에 그쳤다. 올해 원단 19.6%에서 춘절 8.2%, 청명절 5.6%, 노동절 3.5%로 연휴 때마다 낮아지더니 국경절에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동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올해 국경절 연휴에도 하루 3억명 안팎이 길 위에 있었다. 다만 지난해처럼 이동 인구 자체가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중국의 철도 여객은 국경절 전반 5일 동안 11.9% 증가했지만 민항 이용객은 1.6% 감소했다. 항공권 가격이 오르자 소비자들이 비행기 대신 고속철을 택했다. 현(縣) 단위 소도시의 민박 예약이 크게 늘고 여러 도시를 길게 돌아보는 여행도 증가했다. 여행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닌 더 오래, 더 멀리 움직이면서도 이동과 숙박에 드는 단가는 낮춘 것이다.

쇼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하이난 면세점은 구매 인원이 늘었지만 1인당 구매액은 줄었다. 영화관도 부진했다. 지난해 국경절 극장가는 18억35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 전반부 일평균 박스오피스는 1억7700만 위안 수준에 그쳤다. 사람이 줄었다기보다 한 사람이 쓰는 돈이 줄어드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중국에서 이를 두고 '왕딩부왕차이(旺丁不旺财)'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은 붐비는데 돈은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중국 소비자가 단순히 지갑을 닫았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비싼 항공권 대신 기차표를 사고, 유명 관광지 대신 소도시를 찾고, 고급 호텔 대신 민박을 선택한다.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경험을 얻으려는 쪽으로 소비의 패턴이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소비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4조2118억원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7.3% 증가했다. 의복 거래액은 4.4% 줄었지만 여행·교통서비스는 8.7%, 음식서비스는 7.6% 증가했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는 데 쓰던 돈의 일부가 여행과 외식,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소비 지표를 보면 이 같은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8월 국내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8% 감소했다. 승용차와 음식료품 등의 판매가 줄어든 영향이다. 같은 달 서비스업 생산은 0.5% 증가했다. 물론 서비스업 생산 전체를 가계의 서비스 소비와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품 판매가 줄어드는 동안 서비스 부문은 상대적으로 버티고 있다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돈을 쓰는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가계 사정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29만5000원으로 전년보다 4.5% 증가했다. 하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1.5%에 불과했다. 명목 소비지출은 3.4% 늘었지만 실질 소비지출은 고작 0.4%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이 5.2% 증가했는데도 평균소비성향은 69.2%로 1.2%포인트 떨어졌다. 벌이가 늘어난 만큼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의미다.

고물가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3.1% 올랐고 생활물가는 3.2%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더라도 가계는 모든 소비를 똑같이 줄이지 않는다. 먼저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비싼 브랜드 대신 저렴한 제품을 찾고, 정가 대신 할인 행사를 기다린다. 같은 제품이면 온라인 최저가를 비교하고, 여행을 포기하는 대신 숙박과 교통비를 아끼는 식이다.

이 점에서 한국과 중국의 소비자는 유사하다. 양국 모두 '안 쓴다'보다 '골라 쓴다'에 가깝다. 물건을 더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여행이나 외식처럼 경험을 택하고, 꼭 필요한 상품은 가격을 꼼꼼히 따진다. 소비 총량이 크게 늘지 않아도 특정 플랫폼이나 저가 상품, 지역 관광 등에는 돈이 몰리는 이유다.

중국은 오랜 부동산 침체와 고용 불안, 디플레이션 압력이 소비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정부가 자동차와 가전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구환신'을 통해 소비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그 효과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1~8월 중국의 사회소비품소매총액 증가율은 1.1%에 머물렀고, 상품소매 증가율은 1.0%에 그쳤다. 반면 서비스 소매는 4.9% 증가했다. 중국에서도 상품에서 경험으로 소비축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디플레이션보다는 높은 생활물가가 소비 여력을 갉아먹고 있다. 소득은 늘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제 구매력 증가는 크지 않다. 여기에 주거비와 교육비, 이자 부담처럼 줄이기 어려운 고정비가 버티고 있다. 소비자는 남은 돈을 어디에 쓸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배경은 다르지만 결과는 비슷한 곳으로 향한다. '프리미엄이면 잘 팔린다'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소득이 늘면 더 큰 자동차를 사고 더 비싼 가전을 사고 유명 브랜드 제품을 찾는 소비 고급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소비의 분야가 과거와는 달리 세분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에는 큰돈을 쓰면서 옷은 저가 플랫폼에서 사고, 해외여행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일상 식사는 할인 쿠폰을 찾는다.

한 사람의 소비 안에서 '플렉스'와 '짠테크'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는 어려운 숙제다. 평균적인 소비자를 상정해 평균적인 상품을 팔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탓이다. 가격에 민감한 시장에서는 어정쩡한 중간 가격대가 가장 먼저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확실히 싸거나, 확실히 다른 경험을 제공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 같은 이유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는 과거의 고가 전략을 유지하는 것은 답이 아닐 수 있다. 중국 국경절 소비에서 드러난 행태는 소비자의 실종이 아닌 소비 방식의 변화다. 관광객이 한국을 찾더라도 과거처럼 면세점과 백화점에서 고가 제품을 대량 구매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가격 대비 만족도, 독특한 경험, 온라인 접근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마다 할인쿠폰과 보조금으로 소비를 당겨오는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자동차나 가전을 몇 달 앞당겨 사게 만드는 데 그친다면 효과가 끝난 뒤 다시 소비 공백이 생긴다. 중국의 이구환신 정책이 보여주는 고민도 마찬가지다. 보조금은 소비 시점을 움직일 수 있지만 가계가 지속적으로 돈을 쓸 능력과 자신감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한·중 소비 닮은꼴 재편이 반영하는 현실은 지금의 소비자가 가난해져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 소비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격과 효용을 훨씬 냉정하게 계산하는 소비가 부상하면서 물건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을 고르고,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필요한 곳에는 과감하게 돈을 쓰면서 가치가 낮다고 판단한 지출은 가차 없이 줄인다.

정책도 기업도 이 변화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소비자가 어떤 곳에서 돈을 쓰든 전체 지출을 지속할 수 있도록 소득과 고용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할인쿠폰이나 보조금으로 잠시 지갑을 열게 할 수는 있어도 내일의 소득과 일자리에 대한 불안까지 없애주지는 못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