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만의 프리즘] 중국의 달라진 소비온도... 한국 경제도 대비해야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중국의 국경절에 중국 내 이동 인파는 여전했지만, 소비의 온도는 예전 같지 않다. 관광지는 붐볐고 기차역에는 여행객이 몰렸으나, 인구의 이동이 지출의 확대로 이어지는 힘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황금연휴가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중국인은 왜 움직이면서도 지갑은 열지 않는가. 중국 시장에 수출하고 중국 관광객을 맞는 한국 경제에도 이 질문은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올해 국경절 첫 닷새의 지역 간 이동량은 전년 동기보다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초 원단과 춘절에 나타났던 높은 증가세와 비교하면 이동의 탄력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이 수치만으로 소비 침체를 단정할 수는 없다. 지난해에는 중추절과 국경절이 겹쳤고, 올해는 두 연휴가 떨어져 수요가 분산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의 조짐도 수치로 나타났다. 주요 관광지에서는 매출 증가율이 방문객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했고, 면세 소비에서는 구매자의 지출을 아끼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소비가 일제히 감소했다는 뜻과는 다르다. 사람은 늘고 매출도 증가하지만 고객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매출은 줄어든 셈이다. 기업에는 총매출 증가보다 더 불편한 변화일 수 있다. 더 많은 고객을 상대하고도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이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 마이처커지脈策科技 창창증권연구소
자료: 마이처커지(脈策科技), 창창증권연구소

휴일이 늘면 여행할 시간은 생긴다. 그러나 여행에 쓸 돈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계는 정해진 예산을 더 많은 날과 목적지에 나눠 쓴다. 숙소 등급을 낮추고, 이동 비용을 비교하며, 쇼핑을 줄이는 방식으로 긴 휴가를 즐긴다. 중국인들의 소비 의욕이 사라졌다기보다 소비 여력에 맞춰 욕구를 조정하는 것이다. 휴가 확대만으로 내수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가 부딪히는 한계도 여기에 있다.

이런 행동의 배경에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이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 가치가 흔들리면 가계는 자산이 줄었다고 느끼고, 일자리와 임금에 확신이 없으면 당장의 지출을 미룬다. 의료와 노후, 자녀 교육에 대비해야 할 부담이 클수록 저축의 필요성도 커진다. 정부가 소비를 독려해도 가계가 먼저 묻는 것은 내일의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소비 회복의 관건은 할인 폭보다 고용의 안정성과 소득의 지속성이다. 지갑을 여는 힘은 미래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낡은 가전과 자동차를 새 제품으로 바꾸도록 지원하는 중국의 '이구환신'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보조금은 구매 비용을 낮춰 단기 수요를 끌어올린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얼마가 새로운 소비이고, 얼마가 내년 구매를 올해로 옮긴 것이냐는 점이다. 이미 내구재를 충분히 보유한 가계에는 교체 시점을 앞당기는 효과가 클 수 있다. 보조금 집행기의 판매 증가만 보고 정책의 성공을 선언하면 지원이 끝난 뒤 찾아오는 수요 공백을 놓친다. 정책은 지출 시점을 바꿀 수 있지만 지속적인 구매력까지 자동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중국 소비 전체를 절벽으로 묘사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비스 소매 증가율은 상품 소매보다 높았다. 편의점과 슈퍼가 상대적으로 선전하는 동안 백화점과 브랜드 전문매장은 부진했다. 중국 가계는 모든 소비를 똑같이 줄이는 대신 무엇에 돈을 쓸지 다시 정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의 상품보다 만족도가 높은 경험을, 비싼 판매 채널보다 가격을 비교하기 쉬운 채널을 선택한다. 

여행에서도 이런 선택이 드러난다. 대도시의 고급 숙소 대신 소도시의 민박을 찾고, 항공권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철도를 택한다. 다만 철도 이용 증가를 모두 절약의 결과로, 영화 흥행 부진을 모두 소득 감소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교통망의 편리함과 유가, 작품의 경쟁력도 소비를 좌우한다. 중요한 것은 개별 지표를 넘어 반복되는 방향이다. 중국 소비자는 더 멀리 이동하고 오래 머물면서도 지출의 효율을 높이려 한다. 거리와 체류 기간이 늘었다고 소비의 고급화가 진행된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의 달라진 소비온도... 한국 경제도 경계해야

한국 경제가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성장률과 한국 기업의 매출이 예전처럼 함께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다. 중국이 성장하면 한국의 중간재 수출이 늘고, 중국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한국 화장품과 면세점이 수혜를 보는 익숙한 경로가 약해질 수 있다. 중국 내수가 회복되더라도 그 수요를 중국 기업이 더 많이 차지하거나 소비가 한국 기업의 주력 상품 밖에서 증가한다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중국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더해 누구의 소득과 어느 부문의 수요가 늘어나느냐는 것이다.

대중 수출도 구분해 봐야 한다. 중국 전체의 회복을 기다리기보다 제품별 최종 수요와 고객의 투자 계획을 살펴야 한다. 수출액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품목에 따라 판매량과 가격, 수익성이 크게 갈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석유화학과 철강 등에는 수요 둔화와 경쟁 심화가 겹칠 위험이 있다. 중국 안에서 충분히 팔리지 않는 제품이 해외로 향하면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주문 감소를 겪는 동시에 제3국에서 가격 경쟁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중국 내수 부진이 한국으로 전달되는 또 하나의 경로다.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유지하는 방식은 당장의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수익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생산 규모와 제품 구성을 조정하고, 범용 제품 의존도를 줄이는 판단을 미뤄서는 안 된다.

한국 내수에도 영향은 들어올 수 있다. 중국 기업이 해외 판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저가 상품의 공급이 늘면 국내 소비자는 구매 비용을 낮추는 혜택을 얻는다. 동시에 비슷한 상품을 만드는 중소기업과 이를 판매하는 유통업체는 마진 압박을 받는다. 값싼 수입품의 유입을 소비자 편익만으로 보거나 국내 산업 피해만으로 보는 것은 모두 불완전하다. 안전과 품질, 세금과 거래 규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면서 국내 기업이 생산성과 차별화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보호와 방임 사이에서 기본 원칙을 잃지 않는 대응이 필요하다.

관광업은 기대와 현실의 차이를 가장 먼저 체감할 분야다. 중국인의 해외여행 목적지가 달라지면서 한국으로 수요가 옮겨올 가능성은 기회다. 그러나 노선 운항과 입국자 증가가 곧 면세점 매출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운항 편수는 공급 지표이고 관광객의 소비는 별도의 결과다. 과거 중국인 관광객이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돌아갔다는 기억에 기대 사업 계획을 짜서는 안 된다. 계산기를 든 소비자는 한국에 와서도 숙박비와 교통비, 상품 가격을 비교한다.

따라서 관광의 성과 지표부터 바뀌어야 한다. 입국자 수에 더해 체류 일수와 지역별 지출, 재방문율, 관광업체의 수익성을 살펴야 한다. 방문객이 늘어도 서울의 몇몇 상권에만 소비가 몰리거나 과도한 할인으로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 관광의 파급효과는 작아진다. 편리한 이동과 합리적인 숙박, 음식과 문화 체험을 연결해 한 사람이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손님을 더 데려오는 정책과 온 손님이 만족하며 돈을 쓰게 하는 정책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지역 음식과 시장, 공연과 전시, 일상적인 골목의 매력을 접근하기 쉬운 상품으로 묶을 필요가 있다. 중국어 안내와 결제 편의, 짐 보관과 대중교통 정보처럼 작은 불편을 줄이는 일도 소비를 돕는다. 바가지요금과 강매는 한 번의 매출을 만들지 몰라도 재방문과 신뢰를 훼손한다. 지정학적 갈등에서 생기는 반사이익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한국 자체의 매력을 찾는 고객을 늘려야 관광 수요가 지속된다.

화장품과 패션, 식품 기업도 한국산이라는 간판만으로 높은 가격을 받던 전략을 점검해야 한다. 소비자가 가격을 따질수록 품질과 효능, 편의성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용량과 체험 상품, 재구매하기 쉬운 가격대는 구매 부담을 낮추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저가 경쟁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왜 더 비싼지 설득할 근거가 있다면 수요는 남는다. 달라진 시장에서 약해지는 것은 고가 상품 전체가 아니라 가격의 이유가 불분명한 상품이다.

정부의 통상 지원도 수출 총액을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중국 소비가 어떤 지역과 채널, 가격대로 이동하는지 중소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진출 지원은 전시회 참가로 끝날 일이 아니다. 현지 유통망과 정산 조건, 재고와 반품 부담, 온라인 판매 비용까지 따져 실제 이익이 남는 구조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 다변화 역시 판로의 숫자를 늘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장의 수요와 규제에 맞는 제품을 갖춰야 중국 의존도를 실질적으로 낮출 수 있다.
 
중국의 닫힌 지갑이 한국 내수에 던지는 질문

중국의 닫힌 지갑은 한국의 내수 정책에도 질문을 던진다. 소비쿠폰과 할인 행사, 휴일 확대는 단기적인 활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가계의 실질소득이 개선되지 않고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 고용 불안이 계속되면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정부가 만든 소비의 기회를 가계가 활용하려면 생활의 예측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 역시 정책과 규칙이 안정돼야 투자하고 채용한다. 내수의 기반은 행사의 횟수가 아니라 소득을 벌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경제의 신뢰다.

향후 중국 소비를 판단할 때도 원칙이 필요하다. 국경절 최종 여행 지출을 확인하되 연휴 길이와 여행의 구성, 비교 기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전체 이동량은 관광객 수와 같지 않고, 여행 인차는 서로 다른 사람의 수와도 다르다. 주요 상권의 매출이 중국 전역의 체력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다. 특히 잠정 통계로 10월 전체 소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 연휴 뒤 소매판매와 고용, 가계소득의 흐름이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달력에 따른 반짝 효과와 지속적인 회복을 구별할 수 있다.

중국은 여전히 거대한 시장이다. 그러나 거대한 시장이라는 사실이 한국 기업의 성장과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소비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선택은 더 엄격해졌다. 한국에는 그 선택에 맞는 기술과 상품, 서비스를 갖추는 과제가 남는다. 중국의 회복을 막연히 기다리거나 반사이익에 기대기보다 팔리는 이유와 이익이 남는 구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기대가 아니라 중국 소비자가 인정하는 가치다. 이번 국경절이 한국 경제에 보낸 가장 현실적인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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