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아사히·기린·삿포로·산토리 등 맥주 대형 제조업체 4사를 출하가격 담합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공정위가 식음료 분야에서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처음으로, 검찰 형사고발을 염두에 두고 실태를 규명하고 있다. 이달 주세 통합으로 맥주 세금이 줄면서 업체들이 출하가격을 내리고 새 판촉 경쟁에 들어간 직후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공정위는 전날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4사의 사업장 등을 압수수색했다. 일본 공정위는 2006년 시행된 개정 독점금지법에 따라 법원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할 수 있다. 이들 회사는 수년 전부터 도매업체에 공급하는 맥주와 발포주 등의 출하가격 인상 폭과 가격 변경 시점을 조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격은 1ℓ 단위의 수량 기준이나 캔·병 같은 용기별로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4사는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면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가격 조율은 업계 공식 모임과 별도로 열린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맥주주조조합'은 4사와 오리온맥주가 회원사로 있는 업계 단체로, 매달 정례 모임을 열어 주세 관련 대정부 건의 등을 논의한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 모임에 참석하던 4사의 영업부문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오리온맥주 담당자를 부르지 않고 따로 모였다. 정례 모임이 끝난 뒤나 다른 날짜에 만나 출하가격 인상 등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에서는 논의 내용이 윗선에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조합 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일본 맥주 시장은 4사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전국 소매점 판매자료를 집계한 닛케이 POS 정보에 따르면 맥주 시장점유율은 아사히 40.6%, 기린 27.0%, 삿포로 17.1%, 산토리 11.3%로, 4사를 합치면 96%에 달한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일본 내 맥주 매출액은 1조1530억엔, 발포주 매출액은 제3맥주를 포함해 4578억엔으로, 합치면 약 1조6000억엔 규모다.
그러나 시장 규모는 크지만 인구 감소와 술을 멀리하는 추세로 판매량은 줄고 있다. 발포주 등을 포함한 맥주류 추정 판매량은 1994년 5억6805만 상자(큰 병 환산)에서 지난해 3억1192만 상자로 약 45% 감소했다. 반면 맥아·홉 등 원재료 가격과 물류비는 올라 수익성 확보가 업계 공통 과제가 됐다. 닛케이는 이 같은 환경에서 업체들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경쟁을 제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맥주는 제조사에서 도매업체를 거쳐 슈퍼마켓·편의점과 음식점 등으로 유통된다. 닛케이는 4사의 출하가격 조정이 소매점의 판매가격이나 음식점의 매입가에 영향을 줬다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재료 가격 상승을 이유로 한 가격 인상을 감수해 온 음식점과 소비자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도쿄 미나토구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65세 남성은 닛케이에 "대기업이 가격을 올리겠다고 하면 가게는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번 압수수색을 계기로 적정한 가격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값이 오른 뒤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제품을 마셔왔다는 도쿄 도시마구의 28세 회사원은 "속은 기분"이라며 "각사가 정상적인 경쟁으로 돌아가 가격을 내려줬으면 한다"고 했다. 반면 미나토구의 이자카야 점장인 35세 남성은 "예전부터 가격은 어디나 비슷해 원래 그런 줄 알았다"며 "의혹이 있어도 취급 제품을 바꾸지는 않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조사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 및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공정위의 고발을 받은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해당 기업에는 5억엔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담합 과징금은 위반 기간 중 대상 상품 매출액의 10%가 기본이며, 조사 개시일로부터 최장 10년 전까지 소급해 산정한다. 위반 사실을 자진신고하면 과징금을 감면받을 수 있어 각사의 자진신고 여부도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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