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관료 엑소더스] "명예는 옛말, 당국은 금융사 사관학교로 전락"...정책·감독 품질 저하 '우려'

  • 올해 3개 기관 이직 사례 51건 전수조사…허리급 중간 간부 이직률 78%로 '압도'

  • 퇴직후 향한 곳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으로 금융사가 45%…대기업·법무법인도 多

금융공직자 취업심사 현황
금융공직자 취업심사 현황

주홍민 전 금융위원회 국장은 지난달 대체거래소인 넥스트트레이드(NTX) 전무로 이직했다. 행정고시 43회로 공직에 입문해 전자금융과장, 금융그룹감독혁신단 지배구조팀장, 민생침해금융범죄대응단 등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다. 같은 달 주가조작합동대응단에서 활약하던 마순 전 금융위원회 서기관도 법무법인 화우로 이동했다. 재정경제부 출신인 곽상현 전 국채과장도 메리츠금융지주 상무로 이직해 지난달부터 출근했다.

금융 정책을 총괄하고 금융사를 관리·감독할 정책기관의 핵심 인재들이 속속 '민간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관료 출신이 민간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이탈은 양적·질적으로 전례가 없을 정도다. 이들이 민간 금융사로 이탈하는 배경에는 고된 업무강도, 낮은 보수, 지방 이전 이슈에 따른 주거 불안 등이 꼽힌다. 후과(後果) 우려도 크다.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며 정책을 만들고, 자본시장을 감독할 인력들의 이탈이 심화되면 금융사의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국민의 소중한 금융 자산을 지킬 수 있는 관리·감독 품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위급·허리급 다 나간다
7일 인사혁신처에 등록된 지난 1~9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가운데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민간 이직 사례 51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허리급 인력의 이탈 경향 심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금감원 출신의 이직이 가장 많았지만 재경부와 금융위도 적지 않았다. 

퇴직 당시 직급은 금감원에서는 2급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3급 10명, 4급 4명, 1급 2명 순이었다. 재경부에서는 고위공무원 9명, 3·4급 인력 2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에서는 허리급 인력인 4급 공무원이 전체 중 75%(3명)를 차지했다.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경력이 쌓인 뒤 핵심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 된 2급과 3~4급의 이탈 비율이 전체 중 78.4%라는 점에서 금융사 관리·감독 악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들이 향한 곳은 금융사, 대기업, 대형로펌 등 소위 '대우'가 좋은 곳들이었다. 이직이 많은 곳은 삼성증권, KB자산운용, 토스증권, 카카오뱅크 등으로 감독 권한을 행사하던 민간 금융사들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민 세금으로 성장한 인력을 민간 금융사에 빼앗기면 장기적으로 정책의 품질이 나빠지고, 금융사 관리감독 기능이 허술해져 민원 증가 등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한창 일할 인력이 빠지면서 신규 채용과 재교육에도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투입된다"면서 "인력 공백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많고, 국가기관이 금융사 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조도 나온다"고 토로했다.
낮은 처우, 인사 적체가 원인
금융당국 인력이 이탈하는 이유로는 금융사 대비 낮은 연봉과 처우, 내부 인사 적체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정책 품질에 대한 과도한 직무 부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지방 이전 근무에 대한 압박도 현실적인 고민이다. 전체 인력 중 40% 이상이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금감원은 이직도 자유로운 편이다.

실제 금감원 임직원 1인당 연봉은 1억1160만원으로 2021년(1억670만원) 대비 9.5%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증권사(삼성증권) 1인당 임직원 연봉은 1억3200만원에서 1억7000만원으로 28.8% 상승했다. 최고 직급인 금감원장 연봉도 2억5000만원 수준으로 5대 증권사 사장(18억~30억원)은 물론 상무급 평균 연봉(5억원)에도 못 미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사 연봉이 수직 상승하고, 세종 등 지방 근무에 대한 주거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각종 기회비용이 커져 명예와 애국심만으로 젊은 사무관들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공직자 취업 심사도 점점 까다로워지는 추세라 더 늦기 전에 이직해 막차를 타야 한다는 심리도 일부 작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금융 감시기관에서 인재 이탈이 심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 각종 금융사고, 세계 경제 연관성 등으로 정책 난도가 점점 상향돼 현장감각을 갖춘 인력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며 "구조적으로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보상체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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