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5일 국회 연설에서 식료품 소비세를 깎고 중저소득층에 지원금을 지급하면서도 재원은 적자국채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수는 줄이고 지출은 늘리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지키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시장을 뜻하는 '시장'을 다섯 차례 언급하며 시장 신뢰 확보를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재원과 신규 국채 발행 상한은 내놓지 않았다.
6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소신표명 연설에서 식료품 소비세 감세와 소득연동형 지원금으로 "가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4월부터 2년간 식료품 소비세율을 1%로 낮추고, 일하는 중저소득층에는 소득에 연동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관련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해 통과를 목표로 한다. 회기는 12월 12일까지다. 소신표명 연설은 임시국회 개회 때 총리가 국정 운영의 기본방침을 밝히는 연설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연설 분량의 약 60%를 경제·재정정책에 할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연설에서 금융시장을 의미하는 '시장' 또는 '마켓'이라는 표현이 다섯 차례 등장했다고 6일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소신표명 연설에서는 한 차례, 올해 2월 시정방침 연설에서는 두 차례에 그쳤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공법으로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당연한 전제"라고 강조하면서 경제와 물가, 세수, 금리, 이자비용,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연간 국채 발행액을 적절히 통제하겠다고 했다. 요미우리는 국채 발행액 통제가 2월 연설에는 없던 표현이라고 전했다. 경제나 시장이 예상과 다른 흐름을 보일 경우에는 "필요한 조치를 기민하게 취하겠다"고도 밝혔다.
닛케이는 다카이치 정권의 재정정책을 두고 금융시장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장기금리는 지난달 30년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요미우리는 다카이치 정권의 재정정책이 확장적이라는 우려가 금리 상승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고 짚었다. 최근에는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엔화 약세를 잇달아 문제 삼았다.
그러나 감세와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6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식료품 소비세 감세와 지원금을 시행하면 연간 세수가 약 5조 엔(약 42조5535억 원) 줄어든다. 다카이치 총리는 재원을 "적자국채에 의존하지 않고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감세와 지원에 필요한 재원이 불분명한 가운데 신규 국채를 얼마나 발행할지도 관심사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번 연설에서 구체적인 상한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8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2025회계연도 추경예산 편성 뒤 국채 발행액을 약 40조 엔 수준으로 관리한 점을 들며 앞으로도 같은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시장도 약 40조 엔을 하나의 기준선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닛케이는 신규 국채 발행 상한을 제시하지 않은 배경으로 소비세 감세와 성장투자에 더해 연말 방위비 증액 계획까지 남아 있어 예산 규모를 아직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세수 증가분과 세외수입 등 같은 재원을 감세·성장투자·방위비에 각각 활용하려는 상황이라며 "트리플 부킹과 같은 상태"라고 말했다.
닛케이는 이번 연설만으로 재정 악화를 걱정하는 채권 투자자들의 우려를 씻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날 일본 재무성은 이달 발행하는 10년물 국채의 표면 금리를 종전 연 2.7%에서 3.1%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채권 약세 흐름 속에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자 이에 따라 표면 금리도 인상한 모습이다. 도카이도쿄증권의 사노 가즈히코 수석 채권전략가는 "채권시장은 말이 아니라 숫자를 본다"며 예산안과 국채 발행계획에서 어떤 수치가 제시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외교 분야와 관련해 중국과의 대화도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을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규정하면서 "여러 과제가 있지만 오랜 기간 쌓아온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대만 유사시를 둘러싼 자신의 국회 발언 이후 악화된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해 대화를 중시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닛케이는 평가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주장할 것은 주장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도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다카이치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접촉 여부가 초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에 대해서는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평가하고, 셔틀외교를 통해 소통을 이어온 만큼 한미일 협력을 포함해 안보와 경제 등 폭넓은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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