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중인 영화 《암살자들》을 봤다.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재미있다’는 건 역사적 사실을 잘 짜깁기(편집)함으로써 몰입하게 했다는 의미다. 또 많은 이들이 감독 의도대로 영화적 상상력을 사실로 믿으니 성공(?)했다는 뜻이다. 영화를 본 지인은 “묘하게 설득당한다”는 감상평을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로만 봐주기에는 한참 선을 벗어났다.
당시 정권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국면 전환이 필요했다면 얼마든 다른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온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 암살을 연출한다? 나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제물로 이용했다? 상식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공감하기 어렵다. 당시 재판부는 문세광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영화는 줄곧 공범의 존재를 강하게 암시한다. 공범을 움직인 배후는 중앙정보부와 대통령 경호실이다. 결국 두 기관을 움직일 수 있는 권력자는 누구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감독은 JTBC 인터뷰에서 “자기 검열은 창작자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창작의 자유가 곧 비판받지 않을 자유는 아니다’는 것도 인정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여러 정황도 있다. 허술한 경호, 실제 탄흔과 총성의 불일치, 육 여사가 피격한 탄환의 감정 생략, 감식반에 앞서 중앙정보부의 탄환 수거 등이다. 그날 문세광은 비표 없이 행사장에 들어갔다. 또 그는 불발탄을 포함해 5발을 쐈으나 제압당한 이후에도 한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그 한 발은 누가 쐈을까? 의문은 당연하다. 신속한 재판과 사형집행 또한 괜한 억측으로 이어졌다. 음모론에 불을 지피기 좋은 팩트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의혹에 상상력을 더했다. 제작진은 자신들 의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팩트와 픽션을 뒤섞었다. 보수 진영은 이런 허점에 올라타 진영논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지층 결집에 호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출연 배우 인신공격은 너무 나갔다. 외모로 낙인찍는 행태는 비판과 관계없는 저급한 행태다.
총성 한 발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이다.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다가서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러니 팩트 안에서 사실을 좇고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창작의 영역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물론 의혹 제기와 의혹이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암살자들》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따로 있다. 언론의 역할을 돌아보고 이제라도 팩트체크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기자들은 진실을 좇는 전사이다. 진상을 파헤치려는 집요한 취재와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환기한다. 어쩌면 《암살자들》은 역설적으로 당시 언론이 제 역할을 했느냐며 영화 속 기자들을 통해 묻는 듯하다.
영화를 통해 돌아봐야 할 것은 또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지난한 저항과 압제 속에서 피어났다는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피격 직전까지 한국 정치는 암울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선포함으로써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듬해 1973년 8월 중앙정보부는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일본 도쿄에서 납치했다. 이어 정권은 1974년 1월 긴급조치 1·2호를 발동해 국민의 입을 틀어막았다. 같은 해 4월에는 민청학련 사건을 빌미로 대학생과 재야 인사를 대거 구속했으며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조작했다. 정권은 이들을 민청학련 배후로 지목하고 관련자 8명을 사형시켰다. 국가권력이 정치적 반대자를 죽인 사법살인이었다. 민심은 유신체제에 폭발 직전이었다.
북한과 조총련 사주를 받았다는 문세광의 대통령 암살 시도는 이런 국면에서 터졌다. 사건 이후 정권은 유리한 국면을 맞았다. 반정부 시위는 줄어든 반면 반공 및 체제 수호 움직임은 힘을 얻었다. 거듭 말하지만 이득을 얻었다는 사실이 사건을 기획했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하원 암살사건 특별위원회는 1979년 케네디 암살을 재검토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 지난 때였다. 케네디 죽음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확대되면서 군산복합체가 이익을 얻었다는 음모론이 팽배했다. 특위 결과 모든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가 어떻게 의문을 다뤘는지와 팩트체크 노력이다.
케네디 암살을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제작되지만 미국 사회는 누구도 진영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설명만으로 해소되지 않기에 진실에 다가서려는 시도로 이해한다. 정도를 벗어나기는 했으나 《암살자들》 역시 그런 의문에 불을 지폈다. 이를 계기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나서는 건 어떨까 싶다. 이대로 덮는다면 음모론에 먹이를 던져줄 뿐이다.
나아가 유해진을 ‘북한상’이라고 비난한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발언은 위험하다. 북한 체제를 피해 남한으로 온 수많은 북한 이탈주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 학살을 비롯해 민족적 편견과 외모로 낙인찍기가 얼마나 많은 참극을 불러왔는지 알고 있다. 지난주 다녀온 관동대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도 재확인했다. 당시 일본인 자경단은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였다. ‘조선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희생된 일본인도 46명이다. 일본 내무성 경무국은 골상 및 외모로 조선인 식별 문건을 작성했는데 주진우 의원의 발언과 무엇이 다른가.
《암살자들》은 비판받을 여지가 많은 영화다. 그럼에도 진실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시도만큼은 인정하고 싶다. 영화를 진영의 무기로 삼을 게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의문을 제기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역사는 진실에 가까워진다.
김대중 대통령의 회고록으로 마무리한다. 김 대통령은 육 여사를 우호적으로 기억했다. 신년 하례식에서 온화한 미소로 자신을 맞이하고 아내의 안부까지 물었다며 ‘청와대 속 야당’으로 평가했다. 또 재임 중 자신이 겪은 납치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싶었으나 자제했다며 ‘진실은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밝혀질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다리겠다. 진실이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는 말을 남겼다.
필자 주요 이력
▷감사원 정책자문위원 ▷국가유산위원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 ▷순천향대 초빙교수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전 국회 부대변인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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