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에서 주일미군 해병대원이 현지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체포되면서 미군 범죄를 둘러싼 현지 반발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현은 잇따라 미국 측에 강하게 항의하며 철저한 수사 협조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5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오키나와현 경찰은 4일 새벽 미군 후텐마 기지 소속 해병대 데빈 제이콥 발라드(20) 일병을 강도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발라드는 지난 3일 오전 2시 10분부터 4시 17분 사이 나하시 와카사의 한 호텔에서 39세 일본 여성을 살해한 뒤 지갑과 배낭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목이 졸려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호텔 주변 폐쇄회로TV(CCTV)에는 피해 여성과 함께 호텔에 들어간 남성이 혼자 빠져나가는 모습이 찍혔다. 경찰은 영상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하던 중 3일 밤 사건 현장에서 약 20㎞ 떨어진 오키나와시 유흥가에서 외모가 비슷한 남성을 발견했다. 당시와 옷차림은 달랐지만 양팔의 특징적인 문신 등이 CCTV 속 인물과 일치하면서 경찰은 임의동행을 요구했고 이후 긴급체포했다. 발라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4일 엑스(X·옛 트위터)에 "극히 잔인하고 흉악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미국 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이날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수사에 대한 전면적인 협조와 미군 관계자의 기강 확립,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글래스 대사는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미국 정부는 일본 당국의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도 스티븐 조스트 주일미군사령관을 불러 미군의 기강 확립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취임한 고자 겐타 오키나와현 지사도 취임 나흘 만에 미군 범죄 사건에 맞닥뜨리며 시험대에 올랐다. 고자 지사는 4일 "미군 기지와 인접해 생활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에게 큰 충격과 불안을 안겼다"며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글래스 대사와의 통화에서도 사건에 항의하고 수사 협조와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오키나와현은 5일 미군과 미국 총영사관, 일본 외무성·방위성 관계자들을 현청으로 불러 항의할 예정이며, 고자 지사는 이후 상경해 일본 정부에도 직접 항의할 방침이다.
주민들의 반미 시위도 이어졌다. 4일 나하시 현청 앞에서는 약 160명이 참가한 항의 집회가 열렸다.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도 100명이 넘는 시민이 침묵 시위를 벌였다. 특히 올해는 2016년 우루마시에서 미 군무원이 성폭행을 목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당시 사건을 떠올린 집회 참가자들은 "또 오키나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며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키나와에서 미군 관계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반복돼 온 것도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이유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강도·성폭력 등 미군 관계자의 강력범죄 검거 건수는 2024년 8건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았고, 2025년에도 6건을 기록했다.
미군은 2024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오전 1~5시 주류를 제공하는 업소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고, 2025년 4월부터는 오키나와시와 나하시 등에서 미군 헌병대가 일본 경찰 등과 합동 순찰을 벌였다. 이 같은 조치 이후 올해 8월까지 강력범죄 검거 건수는 1건에 그쳤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사건으로 기존의 재발 방지책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군 관계자의 범죄 발생 때마다 논란이 되었던 미일지위협정 문제도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오키나와현은 주일미군의 법적 지위와 형사사건 처리 절차 등을 규정한 미일지위협정의 개정을 오랫동안 요구해 왔지만, 협정 자체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미일지위협정은 미군 관계자가 공무와 무관하게 범죄를 저지른 경우 일본에 1차 재판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용의자의 신병을 미국 측이 확보하고 있을 경우 원칙적으로 일본이 기소할 때까지 미국 측이 구금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일본 경찰이 기지 밖에서 용의자를 먼저 체포해 신병도 일본 측이 확보하고 있다.
1995년 미군 3명의 소녀 성폭행 사건 발생 당시에는 미국 측이 기소 전 신병 인도를 거부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국은 살인·강간 등 중대 범죄에 대해 일본 측이 신병 인도를 요청하면 미국 측이 '호의적으로 고려'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실제 신병을 넘길지는 여전히 미국 측 판단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에서는 미일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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