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금년 초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인 관세 및 합병 압박에 대항해 중견국의 연대를 강조하고 규칙에 기반한 다자적 국제 질서를 주창했기 때문이다. 포럼에서 그의 연설에 대해 모든 참석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고 그 이후로 그는 국제 무대의 수퍼스타로 부상했다. 단지 수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보복 관세에 대해 똑 같은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용기를 보였고 유럽 연합을 포함하는 여러 국가와 한층 긴밀한 외교 관계를 이뤄냈다.
혹시라도 카니 총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경우를 상상해 본다. 일단 옆 나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치욕적인 수모를 안길 것이다. 자국 이익을 위해 작은 이웃 나라를 압박하면서도 노벨 평화상 받기를 희망해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국제축구연맹을 통해 급조된 FIFA 평화상이란 것을 받고 좋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카니 총리가 평화상을 수상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실망하겠지만 지구상 많은 국가 많은 사람들이 쾌재를 부를 것 같다. 특히 강대국의 횡포에 시달려온 작은 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더 할 듯 하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카니 수상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수상 조건으로 가시적이고 지속적인 결과(demonstrable and sustained results)를 중요시 한다. 이제 임기를 1년 반 넘긴 카니 수상이 보여준 실적은 아직 미비하다. 그렇다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얼마 안 되어서 이 상을 수여한 바 있다. 유럽 연합은 부채와 이민 문제로 위기를 겪는 와중에 이 상을 수여했다. 노벨 위원회는 단지 실적만 볼 뿐 아니라 장래의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국과 일본은 관세 인하 조건으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받고 있다. 지난 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합의도 없이 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알래스카 LNG 투자 사업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렸다. 최근에는 좀 잠잠해졌지만 호르무츠 해협 파병을 요구하며 한국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은 바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에 대항해 같이 싸운 전력을 들춰내며 일본 정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독일 등 유럽 국가 선거 시에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이며 내정 간섭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덴마크에게는 그린랜드를 양보하라는 터무니없는 압력을 가한 바도 있다.
어찌보면 이들 국가들은 비슷한 정치 경제 체제를 공유하는 것 말고도 미국의 일방주의적 압력을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카니 수상은 다보스 포럼에서 통렬한 일침을 내린 바 있다. 즉 이들 국가들이 (국제 문제를 논하는)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강대국의 먹이가 되는) 메뉴에 들어가게 된다는 경고이다.
문제는 이들 동병상린의 국가들이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항해 자신들끼리만의 동맹 및 연합체를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카니 수상은 이런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국가들이 미국의 안보에 깊이 의존하고 있고 중국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어 이들 영향권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미묘한 한일 관계처럼 이들 국가 간에도 상호간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유럽 연합처럼 경제, 통상, 외교, 사회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영속적인 조직은 불가능하고 사안별로 뭉친 소규모 다자적 그룹 혹은 네트워크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기술, 핵심 광물, 해양 안보, 경제 회복 탄력성, 국제 기구 지원 등 강대국 보다는 중견국 외교 영역에 속하는 틈새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 난민, 기후, 질병, 가난 등 전통 안보가 아닌 신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이나 여타 강대국은 이런 움직임 자체를 자신들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제동을 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자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고 공급선 다변화를 이루며 강대국 압력에서 벗어나 의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에는 커다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유럽 연합의 발전 과정에서 보듯이 좁고 엷게 시작해서 넓고 깊은 협력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노벨 평화상이 카니 수상에게 돌아 간다면 이는 더할 수 없는 원군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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