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 논설위원장]
요즘 세계를 보며 자주 떠올리는 역설이 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지식과 기술, 자본을 손에 쥐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미래를 더 불안해하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반도체 연산능력은 높아지고 데이터센터에는 천문학적 자본이 몰린다. 우주와 바이오, 로봇 분야에서도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혁신이 잇따르고 있다. 적어도 기술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미래는 어느 시대보다 밝아 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집값과 임대료,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한다. 지금의 좋은 직장이 앞으로도 좋은 직장일지 확신하지 못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이어지고, 무역과 공급망에는 정치와 안보가 깊숙이 개입한다. 스마트폰을 열면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지만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조작인지 가려내기는 오히려 어려워졌다.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가 10월호에서 '디지털 공간의 야만'과 '인플레·정치·전쟁'이라는 두 특집을 나란히 실은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하나는 디지털, 하나는 경제와 안보를 다룬 전혀 다른 주제 같지만 그 밑바닥에는 같은 시대감정이 흐른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2026년을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근원적인 불안인지 모른다.
결핍보다 무서운 것
20세기 인류의 가장 큰 적은 결핍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자본과 기술, 정보가 모두 부족했다. 그래서 경제발전의 목표도 비교적 분명했다. 더 많이 생산하고 공급하고, 더 많은 사람이 교육과 정보에 닿게 하면 됐다. 성장은 결핍을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고, 그 공식은 수십 년간 비교적 잘 작동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세계는 공급망으로 촘촘히 연결됐지만 전쟁이나 정치적 갈등 하나가 반도체와 에너지, 식량의 흐름을 흔든다. 금융시장에는 막대한 자금이 있지만 그 향방은 점점 예측하기 어렵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와 재정을 움직여도 물가와 자산가격이 의도대로 반응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AI라는 새로운 지능까지 만들어냈다. 기술은 풍부해졌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통제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시대를 읽는 핵심 키워드가 '결핍의 불안'에서 '통제 불가능성의 불안'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비상사태가 일상이 되다
과거의 위기는 대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오일 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위기가 터지면 정부와 중앙은행이 비상대책을 내놓고 경제를 정상궤도로 되돌리는 것이 정책의 기본 역할이었다. 위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팬데믹에 이어 전쟁이 터졌고, 전쟁은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흔들었으며, 공급망 불안과 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미중 전략경쟁은 반도체와 핵심광물, 배터리와 AI를 경제재가 아닌 전략 자산으로 바꿔놓았고, 한동안 잊혔던 관세와 보호무역도 되살아났다. IMF(국제통화기금)가 2026년 세계경제를 '전쟁과 기술의 교차로' 속에 있다고 진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 투자가 새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사이, 지정학과 무역갈등은 반대 방향에서 세계 경제를 끌어내리고 있다.
하나의 위기가 끝나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겹치며 다음 위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쩌면 '위기의 시대'가 아니라 '비상사태가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변화는 정치에도 무거운 부담을 지운다. 정부는 물가·주택·경기·산업 대책을 쉼 없이 내놓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그만큼 크지 않다. 정책은 늘어나는데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내 생활은 나아지고 있는가."
불안의 수익화
여기에 과거에 없던 거대한 공간이 더해졌다. 디지털 공간이다. 과거에는 언론이나 권력기관이 정보를 전달했다면, 이제 SNS는 개인 한 사람에게도 수백만 명에게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을 준다. 그 자체로는 분명 민주주의의 진전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가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났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간의 '관심'이 됐다. 사람을 오래 붙잡아둘수록 광고와 수익이 늘어나니, 차분한 설명보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합의보다 갈등이, 이성보다 분노가 유리해진다. 인간의 불안과 분노와 욕망 자체가 경제적 자원이 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불안의 수익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의 불안과 디지털의 불안이 맞물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생활비가 오르고 집을 구하기 어렵고 일자리가 불안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열고, 알고리즘은 그 불안을 다시 붙잡아 분노를 자극하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설명하는 콘텐츠를 내민다. 경제적 불안은 사회적 불만으로, 사회적 불만은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된 갈등으로, 그 갈등은 다시 정치적 불안정과 정책 마비로 이어진다. 불안이 불안을 낳는 피드백 루프다.
AI라는 결정적 변수
2026년의 시대상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변수가 AI다. AI는 이 모든 문제를 풀 가능성과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을 함께 지녔다. 이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신약개발을 앞당기며 제조업과 에너지 시스템, 행정을 혁신할 수 있다. 동시에 콘텐츠 생산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춰 개인 맞춤형 정보와 광고, 정치 메시지를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다. 만드는 비용은 떨어지는데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비용은 오히려 높아진다. 신뢰의 비용이 치솟는 셈이다.
경제에서도 AI는 양면적이다.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망과 반도체에 막대한 자본이 몰리며 새 성장축이 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성장의 과실을 같은 속도로 체감하는 것은 아니다. AI 기업의 가치가 치솟아도 평범한 사람의 질문은 단순하다. "그래서 내 삶은 좋아지는가."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체감 사이에 거대한 간극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다.
신뢰의 복합위기
이 모든 현상을 하나로 묶는 단어는 '신뢰'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시장은 안정될 것인가. AI는 인간을 도울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인가.
정보·정부·시장·기술·미래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위기도 정치위기도 아닌 '신뢰의 복합위기'다. OECD가 민주주의와 정부 신뢰의 문제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OECD의 2026년 신뢰조사에서 중앙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평균 40%에 그쳤고, 정치 시스템에서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신뢰도는 크게 갈렸다. 사람들이 정부의 모든 정책에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 내 목소리가 반영되며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감각이다. 신뢰는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 감각이 사라질 때 불안은 쉽게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다시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된다.
통제에서 회복력으로
그렇다면 통제 불가능성의 시대에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국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세계 경제와 기술은 한 나라가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국가의 역할은 통제(Control)에서 회복력(Resilience)으로 옮겨가야 한다. 모든 위기를 막겠다고 약속하는 국가는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를 잃는다. 그보다는 위기가 닥쳐도 사회가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일어설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에너지와 데이터 인프라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기술 변화로 밀려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플랫폼의 책임성을 높이는 새 규칙이 필요하다. AI 역시 규제냐 혁신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되 인간이 최종 판단권과 선택권을 쥐는 구조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도 달라져야 한다. GDP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가, AI 투자가 얼마나 증가했는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끼는지, 자신의 목소리가 사회에 반영된다고 믿는지, 미래를 설계할 만큼의 예측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도 국가 경쟁력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선진국은 가장 강력한 모델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빠른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술을 자신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나라일지 모른다.
풍요를 신뢰로
인류는 놀라운 시대에 들어섰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가장 강력한 컴퓨팅 능력을 갖고, 가장 빠른 기술혁신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인간은 미래를 더 불안하게 바라본다. 바로 이 모순이 2026년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20세기의 과제가 결핍을 풍요로 바꾸는 것이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과제는 풍요를 신뢰로 바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을 멈출 수는 없다. AI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도, 세계 경제를 과거로 돌려놓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변화를 이해하고 선택하고 대응할 능력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로. 필자는 이것이 국가와 기업,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21세기의 경쟁은 기술의 속도만을 겨루는 경쟁이 아니다. 풍요로운 기술과 불안한 인간 사이의 거리를 누가 더 잘 좁히는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서도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누가 돌려주는가의 경쟁이다. 그것이 '통제 불가능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문명의 과제다.
필자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광주과기원 AI정책전략대학원 특임 교수, 가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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