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인경제인대회] 홍콩으로 도망치던 사람들이 살던 곳...글로벌 기업의 산실이 된 선전

  • 선전, 40여년 만에 작은 농어촌 마을서 中 혁신의 중심으로 도약

  • 화웨이, BYD, 텐센트 등 中 주요 기술 기업 탄생 요람

광둥성 선전의 야경[사진=게티이미지]
광둥성 선전의 야경[사진=게티이미지]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은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중국의 변방 시골마을이었다. 100층 안팎의 초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서고,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과 전기차·배터리·드론 기업이 몰려 있는 지금의 선전은 중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1978년 중국 개혁·개방 이전 선전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당시 선전은 홍콩과 맞닿아 있는 작은 농어촌 지역이었다. 지금의 선전이라는 거대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이곳은 바오안(寶安)현의 일부였고, 농경지와 작은 마을, 어촌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선전은 홍콩 바로 북쪽에 맞닿아 있다. 개혁·개방 이전 홍콩은 중국 본토 사람들에게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이었다.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했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창구였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홍콩으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선전 일대는 본토에서 홍콩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었다.

국경을 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밤을 틈타 철조망을 피해 달아나거나 바다를 건너 홍콩으로 향했다. 상당수는 붙잡혔고,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혁신도시로 불리는 선전의 과거에는 '홍콩으로 탈출하는 길목'이라는 어두운 역사가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홍콩과 맞닿은 선전의 위치는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홍콩이 마주한 경계선이었다.

선전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은 1980년이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이 낙후된 변방지역을 중국의 실험장으로 선택했다. 1980년 8월 26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선전은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다. 선전은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의 시장경제와 기술·자본을 받아들이는 '창구'가 됐다.

홍콩에서 자본이 들어왔고, 기업과 기술이 들어왔다. 값싼 노동력과 넓은 토지를 활용해 선전에는 장난감·섬유·전자제품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 속속 들어섰다. 홍콩 기업들이 선전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국경은 더 이상 '넘어가야 할 선'이 아니라 '사업을 하기 위해 오가는 길'로 바뀌기 시작했다.

돈이 몰려들었고 사람도 몰려들었다. 1980년 선전의 국내총생산(GDP)은 2억7000만 위안(약 549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에는 171억6700만 위안으로 늘었다. 10년 만에 경제 규모가 약 60배 커졌다. 인구 역시 1980년 약 33만 명에서 1990년 약 168만 명으로 급증했다. 말 그대로 도시 하나가 통째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이 하나둘 탄생했다. 1987년에는 훗날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될 화웨이(華為)가 선전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는 홍콩 기업의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작은 대리점에 가까웠다. 하지만 연구개발에 투자하면서 통신장비 기업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중국의 통신, 반도체, AI, 전기차, 스마트폰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1995년에는 왕촨푸(王傳福)가 선전에서 배터리 회사 비야디(BYD)를 창업했다. 출발점은 자동차가 아니라 충전용 배터리였다. 이후 휴대전화 배터리 등을 만들며 성장한 비야디는 2003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전기차와 배터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1998년에는 마화텅(馬化騰) 등이 선전에서 텐센트(騰訊)를 창업했다. 이듬해 출시한 QQ 메신저는 중국 인터넷 시대의 상징이 됐다. 농어촌이었던 선전에서 중국인의 온라인 생활을 바꾼 인터넷 기업이 등장한 것이다.

2006년에는 홍콩과 선전을 오가던 한 젊은 대학생인 프랭크 왕이 DJI를 설립했다. 대학 기숙사에서 시작한 DJI는 드론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회사 스스로도 선전을 공급망과 원자재, 젊은 기술인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기반으로 설명한다. 현재 DJI는 글로벌 드론 1위 업체다.

이 밖에 핑안(平安)보험, 자오상(招商)은행, 순펑(順豊), 리쉰징미(立訊精密), 중싱(中興)통신, 촨인(傳音, 트랜션) 등도 대표적인 선전의 기업들이다.

2025년 선전의 GDP는 3조8731억 위안으로 1980년의 약 1만4345배에 달한다. 선전의 GDP는 오스트리아, 태국, 베트남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선전의 상주인구는 약 1824만 명에 이르고, 외국과의 무역 규모는 4조5000억 위안에 달한다. 중국 본토 도시 가운데 수출 규모가 33년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선전의 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장으로 시작한 선전은 전자제품 제조기지가 됐고, 전자산업은 인터넷과 통신산업으로, 다시 인공지능·신에너지·드론·로봇 등 첨단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선전의 혁신은 세계 곳곳의 기업과 투자자, 기술자와 창업가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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