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포토카드 삽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입니다.”
이 문장은 요즘 K컬처의 좌표를 가장 정확하게 찍는다. 공연장도, 전시장도 아니다. 이제 세계는 한국의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직접 들어온다. 번역 기능을 켜고, 개인 판매자의 글을 하나하나 훑는다. 문화가 국경을 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BTS가 ‘아리랑’을 불렀을 때, 세계는 한국의 전통을 새로 본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동시대의 언어로 경험했다. 그 경험은 소비로 끝나지 않았다. 기억이 되었고, 소유가 되었으며, 이제는 교환과 순환의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파라과이로 향한 포토카드, 방글라데시로 배송된 K패션, 남아공에 도착한 K뷰티 기기는 이 변화의 단면이다.
왜 새 상품이 아니라 중고인가. 이유는 분명하다. 중고는 싸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무대에서, 어떤 시기에, 누구와 연결돼 있었는지가 가치의 일부가 된다. 문화산업의 오래된 격언이 이를 정확히 짚는다. “문화는 설명될 때 약해지고, 체험될 때 강해진다.” 중고거래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의 흔적을 사고파는 시장이다.
해외 사례는 이 흐름이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무대 의상과 기타가 경매를 통해 수십 년간 가치를 키워 왔고, 영국에서는 비틀스(The Beatles)의 음반과 포스터가 ‘중고’가 아니라 문화유산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피규어와 한정판 굿즈의 2차 시장이 글로벌 팬덤을 끌어들이는 핵심 통로로 기능해 왔다. 이들 시장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닳지 않고, 오히려 축적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명품 리세일 플랫폼이 단순 유통을 넘어 취향의 아카이브로 작동한다. 누가 언제 입었는지, 어떤 컬렉션과 연결되는지가 가격을 만든다. 미국 스포츠 시장도 다르지 않다. 마이클 조던의 경기 유니폼이나 NBA 파이널 티켓은 기능적 물건이 아니라 역사의 조각으로 거래된다. 이 시장에서 중고는 열등재가 아니다. 오히려 진품을 증명하는 통로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남았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유산은 남는다.”
이제 중고시장은 지난 유행의 종착지가 아니다. 오히려 문화가 머무는 저장소에 가깝다. 공식몰이 현재를 판다면, 중고시장은 시간을 판다. 글로벌 팬들이 굳이 한국 플랫폼까지 들어와 탐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한국의 일상 속에 남아 있는 시간을 찾는 문화 탐색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처럼, “취향은 소비가 아니라 구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기업 전략 역시 이 변화를 따라 움직인다. 글로벌 리커머스에 대한 투자는 유통 확장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 자산이 순환하는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경쟁이다. 콘텐츠가 빠르게 소모될수록, 오래 남는 것은 새것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축적되는 공간이 중고시장이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 보자. 아리랑은 본래 길의 노래다. 떠남과 돌아옴, 반복과 변주의 정서를 품고 있다. BTS는 이 오래된 코드를 현대의 무대 위에서 다시 작동시켰고, 세계는 그 길 위로 들어왔다. 지금 그 길은 공연장과 박물관을 지나, 플랫폼의 타임라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길 위에서 문화는 소비되지 않고, 순환된다.
‘아리랑’ 이후 K컬처는 지금, 소비를 넘어 순환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순환이 작동하는 지점이 바로, K컬처의 다음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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