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정의·자유: 진정자의 이해찬 이별곡]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사회장 영결식이 엄수된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사회장 영결식이 엄수된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람을 떠나보내는 길에는 언제나 소리가 따른다. 통곡이기도 하고, 기도이기도 하며, 남은 자의 마음을 대신 울어 주는 오래된 운율이다. 이해찬 전 총리를 떠올리면, 서울의 겨울 공기보다 먼저 겹쳐 오는 기억이 있다. 오래전 경기도 김포 들녘에서 들었던 상두꾼의 상여 소리다. 논바람을 타고 길게 흘러오던 그 가락은 한 인간의 생이 흙으로 돌아가는 길을, 그리고 남은 이들의 가슴에 맺힌 사연을 함께 실어 나르곤 했다. 그의 이별 앞에서 그 상여 소리는 단지 장례의 음악이 아니라, 한 시대를 건너온 삶을 정리하는 서사처럼 들려온다.

“가신다지 안 오신다지 내친걸음에 가신다지
가시었나 안 가시었나 문밖을 내다보니
눈물이 소낙비 되어 풍지가 젖어 못 보겠네
이제 가시면 언제나 오시나 오실 날짜 일러 주소
병풍에 그린 닭이 꼬끼오 울 적에 오시려나
솥 안에 삶은 개가 꺼거껑 짖으면 오시려나
한강 수 깊은 물이 백사장 되면 오시려나
백두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면 오시려나
막연도 허구나 막연하다 돌아올 길이 바위 없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서러워 마라
명년 삼월 돌아나 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만
한 번 가는 우리네 인생 꽃이 피나 잎이 피나
원통하고 절통하구나 가는 인생이 서러운지고
이왕지사 가시는 길이면 극락세계로 가옵소서
여보시오 여러분들 이내 한 말씀 들어보소
하관 시각 늦었으니 빠른 걸음으로 모셔 보세”

이 노랫말은 생의 허망함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삶의 진실을 꿰뚫는다. 꽃은 지고 다시 피지만, 사람의 생은 한 번뿐이다. 권력도, 명예도, 이름도 마지막에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한 번뿐인 생을 어떻게 살았는가는 남는다.

이해찬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그 ‘남는 것’을 압축하면 ‘진리·정의·자유’라는 세 단어다.

1952년, 전쟁의 그늘 아래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파란만장의 파노라마였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낸 극복의 기록이었고, 시대의 격랑을 정면으로 건너온 증언이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에 충실했다. 체념의 논리를 거부하고, 공포의 질서를 뚫어내는 데 이보다 더 강한 문장이 있었을까.

독재 권력의 ‘개’였던 사정 당국이 법과 정의를 가장해 포효하던 시절, 그는 그 개소리를 견뎌 냈고 끝내 넘어섰다.

통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취급되던 시절에도 그는 한강과 백두산, 그리고 원산의 명사십리가 하나로 이어지는 민족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청년 시절은 대학의 교훈인 ‘진리·정의·자유’가 결코 추상적 표어가 아니던 시대였다. 진리를 말하면 불온하다는 낙인이 찍혔고, 정의를 외치면 질서 문란으로 몰렸으며, 자유를 요구하면 체제의 적이 되던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침묵하거나 생존을 택했지만, 일부는 양심을 택했다.

그는 그 양심의 편에 섰다. 학생운동으로 구속되고, 고문을 당하고,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이력은 그의 정치가 경력 관리가 아니라 생존을 건 선택이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정의에 대한 감각 또한 그의 삶을 규정했다. 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불의를 행사하던 시대, 정의는 제도 밖에서 먼저 살아 움직였다. 김근태, 장준하, 문익환, 김대중, 김영삼 등 민주주의의 길목을 지킨 인물들처럼,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남긴 것은 정권이 아니라 제도였고, 권력이 아니라 규범이었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선거와 표현의 자유는 그들의 고통을 딛고 세워진 토대다.

자유 역시 그에게는 방종이 아니었다. 자유는 공동체 속에서 책임과 함께 가야 할 가치였다. 그래서 그는 때로 직설적이었고, 때로는 타협에 서툴렀다. 정치인은 사람을 모아야 한다는 통념에 비추면 손해 보는 성격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기준을 낮추지 않았다.

신이 아닌 한 인간은 누구나 공과 과를 함께 지니지만, 이해찬 전 총리는 흠결이 적은 정치인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돈 문제에 엄격했고, 사적 이익과 공적 권한의 경계를 철저히 지키려 했다. 그로 인해 오해와 원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스스로 선택한 원칙의 대가였다.

상여 소리의 노랫말처럼 “한 번 가는 우리네 인생”이다. 꽃이 피든, 잎이 무성하든, 길은 한 번뿐이다. 그는 그 길을 돌아서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편에 서겠다는 선택, 통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제도의 정상화를 향한 고집은 그 길의 방향이었다. 그것이 그의 삶을 ‘진정자의 길’로 남게 한 이유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숙제를 남긴다. 진리·정의·자유는 과거의 구호가 아니라 오늘의 과제다.

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정당화하려 하고, 진실은 늘 소음 속에서 왜곡되기 쉽다. 그럴수록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진리와 정의, 자유에 얼마나 가까운가.

이해찬의 삶은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들라는 조용한 종소리다.

“하관 시각 늦었으니 빠른 걸음으로 모셔 보세.”

상여 소리의 마지막 구절처럼, 떠난 이를 보내고 남은 자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애도는 멈춤이 아니라 이어짐이다. 그의 생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가 붙들었던 가치는 아직 문장 속에 살아 있다. 그것을 이어 쓰는 일, 그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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