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미, 한국 환율관찰국 대상 유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경고

2025년 하반기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설명하기 어려운 흐름이었다. 성장률 둔화와 대외 불확실성이 존재했지만, 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재정 여력,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까지 고려하면 원화 가치가 이 정도로 약세를 보일 합리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가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정책 요인이 아닌 구조적 요인을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 재무부는 29일(현지시간) 연방 의회에 제출한 ‘주요 교역 상대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통화 관행과 거시정책 전반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 등 10개국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분류했다.

이는 한국이 환율 조작이나 경쟁적 절하를 시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고서는 조사 대상 기간 동안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 가운데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불공정한 무역 이익을 추구한 국가는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이 관찰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가 동시에 확대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외부 흑자 구조 속에서도 원화가 2025년 내내 펀더멘털 대비 과도한 약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흑자국의 통화가 구조적으로 약세를 지속하는 조합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 재무부는 2025년 들어 주요 흑자국 통화의 실질실효환율(REER)이 전반적으로 절상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대만은 3% 이상 실질 절상을 기록했다. 반면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국은 예외였다. 특히 한국의 실질환율은 오히려 하락해 흑자국 가운데서도 원화 약세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이는 단순한 글로벌 달러 강세나 통화정책 차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 재무부가 지적했듯 2025년 하반기 원화의 추가 절하는 한국의 성장률, 재정 여력, 대외 흑자 규모와 부합하지 않는 흐름이었다. 환율이 경제의 기초 체력보다 더 빠르게 흔들렸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번 환율 움직임의 성격이 과거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2009~2016년 원화 절상을 억제하기 위해 일방적 외환시장 개입을 반복하던 시기를 이미 지나왔다. 최근 수년간의 개입은 급격한 변동성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특정 방향성을 띠지 않는다. 미 재무부 역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대칭적(symmetrical)’이라고 평가하며 과거의 패턴과 명확히 구분했다.

그럼에도 원화가 약세 흐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급속한 고령화는 중장기 노후 지출에 대비한 예방적 저축 수요를 키웠고, 이는 GDP 대비 약 35%에 이르는 높은 저축률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저축은 국내 투자로 흡수되기보다 해외 자산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국내 자본시장은 여전히 자금이 장기적으로 머물 유인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지배구조, 제한적인 배당 정책, 만성적으로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가계와 기관투자가로 하여금 국내보다 해외에서 수익 기회를 찾게 만든다. 이러한 구조적 자본 유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인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직 2025년 원화 가치에 대한 공식 평가를 내놓지 않았지만, 가장 최근인 2024년 평가에서는 한국의 대외 포지션이 중기적 펀더멘털과 대체로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평가에서 IMF는 원화를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약 2.4% 저평가된 상태로 봤다. 이는 최근 원화 약세가 경쟁적 절하나 정책 왜곡의 결과라기보다 구조적 요인이 환율에 반영된 결과임을 뒷받침한다.

이제 환율 문제를 외환시장 대응이나 단기 정책 조정의 영역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원화의 신뢰는 개입의 강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자본이 국내에 머물 이유를 만드는 구조 개혁,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성장 전략,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 한 원화 약세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환율은 결국 경제 구조의 거울이다.
재무부 환율정책반기 보고서 사진 캠션
재무부 환율정책반기 보고서 사진 캠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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