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을 숫자로만 보지 않는다. GDP, 엔화, ‘잃어버린 30년’ 같은 지표로 일본을 설명하는 데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본질은 오히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곳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교토(京都)에서 한 대학생이 110년 된 대중목욕탕을 인수했다. 수익성은 불투명하고, 대학생 신분으로 감당하기 벅찬 빚까지 떠안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이 목욕탕에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버텼다고 말했다.
이 사례를 보며 ‘일본의 낭만’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일본에서 낭만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을, 굳이 남기려는 선택에 가깝다.
교토 히가시야마구(東山區)의 이 대중목욕탕은 단순한 상업시설이 아니다. 일본에서 목욕탕을 뜻하는 센토(銭湯)는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겹치는 공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얼굴을 확인하는 장소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굳이 위로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관계가 유지된다.
이 대학생의 말이 유독 인상 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가면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 사회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대신 반복되는 일상과 익숙한 얼굴이 개인을 지탱한다. 나는 이것이 일본식 사회 안전망이라고 본다.
경제 논리로 보면 그의 선택은 비합리적이다. 노후한 목욕탕을 인수해 직접 청소하고 카운터를 지키는 일은 투자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이런 비효율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에서 공동체가 숨을 쉰다.
이 지점에서 나는 늘 한국을 떠올린다. 한국 사회였다면 그 목욕탕은 이미 문을 닫았을 가능성이 크다. 빠른 전환과 효율은 한국의 강점이지만, 기억을 보존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는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일본은 느리고, 답답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선택들이 일본 사회의 균열을 조금씩 늦춰온 것도 사실이다. 일본이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이런 ‘작은 고집’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학생이 지킨 것은 목욕탕 하나가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는 장소다. 일본의 낭만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일본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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