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한중 정상회담,  양국 지도자의 '기업가정신'을 기대한다 

외교를 둘러싼 논쟁은 늘 격렬하다. 어느 쪽에 더 유리했는지가 먼저 도마에 오른다. 하지만 경제와 기업을 오래 취재해온 필자의 눈으로 보면, 외교도 결국 하나의 경영 행위다. 불확실성이 극단적으로 높은 환경에서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를 성과로 바꾸는 일. 이것이 기업가정신의 본질이라면, 외교 역시 그 기준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방중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는 그런 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하나의 중국’ 존중, 전략적 자율성, 매년 정상회담 제안. 단어 하나하나만 떼어내면 논쟁적이지만, 전체를 이어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충돌의 비용은 줄이고, 국익의 공간은 넓히겠다는 선택이다. 새로운 노선을 선언했다기보다, 이미 존재해온 외교의 기본선 위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기업가정신은 흔히 결단과 돌파로만 오해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기업가정신은 훨씬 절제된 언어로 작동한다. 그것은 모험이 아니라 계산이고, 용기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된 시대에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한 것은 모호함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현실적 판단으로 읽힌다.
한중 정상회담과 성공 과제
한중 정상회담과 성공 과제

이 지점에서 정상회담을 ‘이벤트’가 아니라 ‘프로세스’로 보려는 시선이 중요해진다. 이 대통령이 제안한 ‘매년 최소 1회 정상회담’은 만남의 빈도를 늘리자는 제안이 아니다. 기업으로 치면 정례 이사회다. 미해결 과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합의의 이행을 점검하며, 다음 단계의 과제를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외교를 일회성 장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사업으로 보겠다는 발상은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특히 AI와 재생에너지 협력을 강조한 대목은 외교 수사를 넘어선다. 이는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과 직결된 영역이다. AI는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표준과 생태계의 싸움이고, 재생에너지는 비용 구조와 공급망 안정의 문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공동 연구, 표준 협력, 인력 교류, 공급망 안정, 데이터·보안 원칙을 묶은 패키지형 합의다. 기업가정신의 언어로 말하면, 단발성 계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만의 시험대가 아니다. 시진핑주석에게도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 중국 역시 실용과 성과의 언어로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국이자 재생에너지와 일부 첨단 산업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성장 둔화, 기술 봉쇄, 글로벌 신뢰 저하라는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구조를 복원하는 일은 중국에게도 분명한 국익이다. 이는 양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실용주의를 상징하는 덩샤오핑의 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말의 핵심은 이념이 아니라 성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이 AI, 에너지, 공급망 협력에서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한국만의 성과가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기업가정신이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외교의 성과를 평가할 때 경영의 개념 하나를 가져와볼 필요가 있다.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즉 핵심 성과 지표다. 기업이 전략을 숫자로 점검하듯, 외교도 분위기나 인상 대신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국익 KPI는 어렵지 않다. 핵심 소재·부품과 에너지 분야에서 공급망 리스크가 실제로 완화됐는지, AI·재생에너지에서 공동 연구나 표준 협력 같은 가시적 합의가 있었는지, 관광·문화·인적 교류가 수치로 확인 가능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는지, 그리고 갈등과 오해를 관리할 상설 협의 채널이 제도화됐는지. 이 가운데 일부라도 성과로 남는다면, 이번 만남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정상 간 신뢰는 중요하다. 그러나 신뢰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신뢰는 거래 비용을 낮출 뿐, 성과를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뢰가 있을수록 계약과 이행 점검은 더 명확해진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기업가정신은 상대에게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덕목이다.
국제정세라는 바람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바람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배는 바람을 선택할 수 없지만, 돛은 조정할 수 있다”는 말처럼, 이번 한중정상회담도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성과로  이어진다면 논쟁은 자연히 잦아들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태도의 논쟁이 아니라 결과의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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