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문제가 단순히 숫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경험으로 확인됐다. 지난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의 강한 반발과 집단행동으로 이어졌고, 진료 차질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민 불안이 커졌고, 정책의 정당성마저 흔들렸다.
인구 고령화와 필수 의료 수요 증가는 분명 의사 인력 확충이라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사회적 필요는 크지만 수익성이 낮은 분야의 인력 부족은 지역 격차를 넘어 국민 건강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법을 다시 ‘의대 정원 숫자’ 논쟁으로만 몰아갈 수는 없다. 의료 인력 확충에는 의사 수의 물리적 증가가 필요하지만, 그 방식과 속도, 설계는 의료 체계와 의료 복지의 관점에서 정교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원 400명인가 800명인가’라는 식의 논쟁은 문제의 본질을 가린다.
의료계와의 충분한 대화와 합의 과정도 필수다. 과거 정원 확대 논란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책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의료계 참여 부족이었다. 의사 수급 문제는 의료계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분과별 수요, 국민 의료 이용 행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소모적 대립으로 치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의 효과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의 질 관리, 임상 실습 여건 개선, 지역 의료기관과의 연계 강화 없이는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의가 현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국가의 기본 책무는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다. 의료 인력 확보는 의료 복지의 핵심이며, 단순한 교육 정책이나 노동시장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병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필요할 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접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기본과 상식은 분명하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 앞에서 정치적 계산이나 직능 간 갈등이 해법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법은 충돌이 아니라 설득과 합의의 과정에서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는 다시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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