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반쪽짜리 물납제와 미술품 수출제도의 맹점

  • 물납제의 구멍 

  • 문화국가의 촘촘한 물납제 그물

  • 해외수출, 속수무책

이중섭 소와 아이 1954 하드보드지에 유화 298×645cm 사진K옥션 누리집
이중섭 소와 아이 1954 하드보드지에 유화 29.8×64.5cm [사진=K옥션 누리집]
 
물납제의 구멍 
요즘 도하 일간지와 인터넷에는 이중섭의 <소와 아동>(1954년 작, 유화, 29.8×64.5cm)이 경매에 나왔다고 떠들썩하다. 이 작품은 미술계에서는 눈이 높기로 유명했던 화상이자 감식안을 가졌던 고 정기용(1932~2025)이 1955년 당시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서 구입한 것으로, 이후 70여 년을 소장해 온 작품이다. 이중섭의 대표적인 주제인 소와 어린이가 함께 있는 아주 귀한 작품으로, 역동적이며 기운생동하는 이중섭 회화의 필치가 탁월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1972년 인사동 시절 현대화랑이 개최한 <이중섭 작품전>과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한 <이중섭: 30주기 특별기획전>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이 현재 덕수궁관을 다시 인수해 처음 개최한 <다시 찾은 근대 미술전>(1998)에도 출품되어 필자와도 인연을 가졌던 뜻깊은 작품이다. 

이렇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이중섭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왜 시중에 경매로 나왔을까? 현재 미술시장에서는 경매시작가를 25억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섭의 최고 경매가가 47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작품의 예술성은 물론 크기와 상태 등을 감안하면 아무리 미술시장이 불경기라 하더라도 이런 마스터 피스(Master Piece)를 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최소 45억에서 경합 할 경우 70억을 쉽게 넘어설 수도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미술계 중론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작품이 왜 저잣거리에 나왔을까? 이는 우리나라가 202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반쪽짜리, 무늬만 물납제 때문이다. 미술품 물납제는 쉽게 말해 상속세를 현금 대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21년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되어, 2023년 1월 1일 이후 상속 개시분부터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물납제는 상속받은 문화재와 미술품 등에 한해서 상속세 납부액이 2000만 원이 넘는 경우에 한해 물납이 가능하다. 따라서 물납제가 시행된 지 1년 10개월이 지난 2024년 10월 처음 미술품 물납 사례가 나왔지만, 이후 물납을 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미술품 물납제를 ‘반쪽짜리’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렇게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상속받은 문화재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금만 물납이 가능해 문화재 미술품 외에 부동산이나 기타 동산 등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는 현금으로 6개월이내에 납부를 해야 한다. 따라서 부동산에 비해 비교적 판매가 쉬운 문화재 미술품을 팔아 상속세를 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물납할 경우 평가금액 전체를 세금납부액으로 인정받지만, 이를 판매해서 현금을 마련해 세금으로 낼 경우 판매수수료와 미술품 판매에 따른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등 최소한 20~35%를 수수료와 세금으로 제하기 때문에, 직접 손에 쥐는 현금이 줄어들 것을 안다. 하지만 미술품외의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세 때문에 물납 대신 판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바늘구멍같이 좁은 물납 조건 때문에 제도의 본래 취지인 문화유산 보호와 상속세 부담 완화 그리고 귀중한 문화재 미술품을 공공재로 환원하는 효과는 매우 한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중섭 소와 아이 작품 뒷면 사진K옥션 누리집
이중섭 소와 아이 작품 뒷면 [사진=K옥션 누리집]

사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작품 수집 예산은 늘 한계가 있어 기증이 소장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기증할 때 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현행제도나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작품으로 대신 납부하는 물납제는 좋은 작품을 수집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작품구입 예산이 47억원(2024년), 국립중앙박물관은 39억원(2022년)으로 이번 경매시장에 나온 <소와 아동>을 소장하려면, 일년 예산을 모두 쏟아부어도 소장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따라서 사후 약방문 격이지만 문화재 미술품 물납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189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문화재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한 영국은 1910년 법 제도를 정비한 후 물납제도를 통해 많은 불후의 명작을 납부받아 국공립 박물관에 소장, 전시해 왔다. 컬렉터의 후손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작품을 급매하지 않아도 되고, 박물관, 미술관은 예산으로 감당 못 할 희귀한 미술작품, 유물을 소장 할 수 있으며, 국민 대중은 개인 컬렉터의 수장고에 있어 보지 못했던 작품을 보게 되니 모두에게 좋은 합리적인 제도다. 그럼에도 박물관 미술관의 작품수집예산은 작품 한 점 가격 정도로 동결시켜 놓고, 문화예술계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미술품에 관한 상속분만 물납이 가능하도록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미술품 물납이 어려운 것은 상속인이 받은 상속재산 전체에 대한 상속세가 아니라, 해당 문화재, 미술품의 가치에 한하는 상속세만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총 100억 원의 상속재산 중 10억 원이 미술품이라고 가정하면 이때 총 50억 원의 상속세가 발생한다. 하지만 10억원 짜리 미술품에 해당하는 상속세 5억 원만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고, 나머지 세금은 현금이나 다른 재산으로 납부해야 한다. 이는 상속재산 전체에 대한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증여 및 상속세 그리고 재산세까지 물납을 허용하는 것과 비교할 때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 물납이 허용되기 때문에 때문에 제도가 유명무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물납을 신청하더라도 모든 미술품이 허가되는 것은 아니다. 매우 까다로운 미술사적, 예술적 가치를 평가받아야 가능하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또 미술품 가치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범위를 확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국내 미술품 가격평가 시스템이 국내외에서 두루 인정받고 있어 이 또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물납의 경우 해당 작품의 작가에게 저작권 사용 허락을 받아오라는 등의 요구를 하는 등이 물납제를 역행하는 상식밖의 행정편의주의적 태도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문화국가의 촘촘한 물납제 그물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의 국가가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개인이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소장하던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시장에 매각할 경우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화적 손실을 막기 위해 정부가 상속세 대신 작품을 인수함으로써 국가의 문화적 자산을 지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1968년 이미 피카소 사후에 대비해 문화재 및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했고 이후 피카소 유족이 막대한 상속세를 피카소의 작품으로 물납해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이 1986년 개관할 수 있었던 것은 물납제의 성과이다. 사실 개인이 소장했던 명작이 국가의 소유가 되면, 이를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해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소수의 부유층이 독점하던 문화유산을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화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문화재 미술품 물납제는 단순히 세금 납부의 편의를 넘어,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 복지정책의 일환이란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좌측 조슈아 레이놀즈 비극과 희극 사이의 데이비드 개릭17161779 1760-61 유화 236x146cm 와데스던 매너Waddesdon Manor 소장

우측 조슈아 레이놀즈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조애나 리 리처드 베넷 로이드 부인 177576 유화 1475x1815cm

두 작품은 제이콥 로스차일드 남작19362024 사후 상속인들이 영국 정부에 세금 대신 2025년 9월 물납AiL을 통해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배정 와데스던 매너Waddesdon Manor에 귀속
좌측: 조슈아 레이놀즈, 비극과 희극 사이의 데이비드 개릭(1716~1779), 1760-61. 유화 236x146cm 와데스던 매너(Waddesdon Manor) 소장 우측: 조슈아 레이놀즈,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조애나 리, 리처드 베넷 로이드 부인, 1775~76, 유화, 147.5x181.5cm 두 작품은 제이콥 로스차일드 남작(1936~2024) 사후 상속인들이 영국 정부에 세금 대신 2025년 9월 물납(AiL)을 통해 문화유산국민신탁에 배정, 와데스던 매너(Waddesdon Manor)에 귀속

미국과 영국에게 문화국가, 미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내준 프랑스는 1968년 '대물변제(Dation en Paiement)'라는 명칭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늦게 물납제를 도입했지만, 상속세는 물론 증여세와 재산세까지 포함하는 넓은 범위 내에서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산상속 과정뿐 아니라 생존 작가 작품도 물납 대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예외적으로 허용되지만, 제도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물납제의 종주국인 영국은 주로 상속세(Inheritance Tax)에 집중해서 '물납제도(AiL, Acceptance in Lieu)'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상속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영국도 생존작가의 작품으로까지 확대운용되고 있다. 이는 시장의 투기적 성격을 배제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확립된 작품 위주로 국립 컬렉션을 채워나가겠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물납제는 별도의 법률로 규정을 두어 상속세, 증여세, 재산세와 물납을 연결하고 있다. 물납 절차와 심사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되어있고, 국립박물관 등 문화기관이 전문적인 가격평가기관의 평가를 바탕으로, 직접 평가에 참여해 작품의 가치를 심사한다.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작품의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해당 작품이 국가 컬렉션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국민에게 얼마나 널리 공개될 수 있는지 등 공공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고려한다. 스페인 같은 경우도 프랑나 영국의 물납제와는 좀 다르지만 '세금대납(Dación en pago de impuestos)'  또는 '세금채무의 현물납부(Pago en especie de deudas tributarias)'를 통해 상속세 같은 세금을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해서 국립 미술관인 프라도 미술관이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등이 이 제도를 통해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비교해 보면 한국의 문화재 미술품 물납제는 가장 보수적인 영국보다도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해외수출, 속수무책
걱정은 또 있다. 만약에 이번 경매에 나온 이중섭의 <소와 아동>이나 박수근의 <산>(1959년작)을 외국인 컬렉터나 해외 교포가 낙찰받아 한국 밖으로 반출할 경우 속수무책이란 점이다. 우리는 문화재 국외수출을 ‘반출’이란 단어를 사용할 만큼 보수적이다. 따라서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라 제작된 지 50년이 지난 문화재 미술품은 해외 반출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하지만 미술품은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을 막는 ‘족쇄’라는 미술시장 업자들의 비판과 K-미술의 세계화와 현대 미술 시장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024년 7월 국가유산청은 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1946년 이후 제작된 작품'은 일반동산문화유산에서 제외해 자유롭게 해외 반출 및 수출을 허용했다. 따라서 만약에 한국근대미술, 한국의 20C에 관심 있는 외국 컬렉터나 미술관에서 낙찰받는다면 해외 반출을 막을 방법이 없다. 
바바라 헤프워스 색채를 담은 조각 타원형 연한 파란색과 빨간색 1943 사진 베티 손더스 2025 제공 헵워스 웨이크필드

2024년 크리스티에서 익명의 해외 입찰자에게 낙찰되었으나 영국정부의 수출정지명령에 따라 반출이 제한된 후 헤프워스 웨이크필드The Hepworth Wakefield가 영국의 자선단체인 아트 펀드와 협력해 380만 파운드약 54억 원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시작 목표는 2025년 8월 27일 마감일 전 달성 아트 펀드는 75만 파운드약 8억 원 국립 복권 유산 기금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이 189만 파운드약 20억 원을 그리고 2800명 이상의 시민 기부금이 더해져 영국 국립 컬렉션에 소장되어 영구적으로 대중에게 전시될 예정
바바라 헤프워스, 색채를 담은 조각 (타원형) 연한 파란색과 빨간색, 1943. 사진 베티 손더스, 2025. 제공 헵워스 웨이크필드. 2024년 크리스티에서 익명의 해외 입찰자에게 낙찰되었으나 영국정부의 수출정지명령에 따라 반출이 제한된 후, 헤프워스 웨이크필드(The Hepworth Wakefield)가 영국의 자선단체인 아트 펀드와 협력해 380만 파운드(약 54억 원)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시작. 목표는 2025년 8월 27일 마감일 전 달성. 아트 펀드는 75만 파운드(약 8억 원), 국립 복권 유산 기금(National Lottery Heritage Fund)이 189만 파운드(약 20억 원)을 그리고 2800명 이상의 시민 기부금이 더해져 영국 국립 컬렉션에 소장되어, 영구적으로 대중에게 전시될 예정
따라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소위 문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은 이런 일에 대비해 영국은 '예술 작품 및 문화적 관심 대상 수출 검토 위원회(Reviewing Committee on the Export of Works of Art and Objects of Cultural Interest)'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해외로 판매될 위기에 놓일 경우 영국 외 지역에서 제작된 작품을 포함해 중요한 미술품에 대해 '긴급수출정지명령'을 내리고, 영국 내 공공 기관에 '우선 구매권'을 부여해 해당 작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만약 기간 내에 구매자가 없으면 사유재산 보호를 위해 수출을 허용한다. 하지만 공공에서 예산이 부족할 때는 국민이 나서 모금운동을 펼쳐 공공기관과 함께 구입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이 제도는 중요한 작품의 해외 유출을 막고, 국가 컬렉션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개인 소장자는 소장 중요 미술품을 해외에 판매, 또는 판매될 여지가 있는 경우 영국 정부에 수출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문화부는 신청이 접수되면, 미술사학자, 큐레이터, 화상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자문 위원회인 미술품 수출 검토 위원회를 열어 대상작품을 1952년 제정된 '웨이벌리 기준(Waverley Criteria)' 즉 대상 작품의 역사성, 미적가치, 학문적 가치를 따지는 기준에 따라 심사를 해 해당 작품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가치(National Importance)'를 지니는지 판단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하면 위원회는 문화부 장관에게 '수출 정지(Export Deferral)'를 권고하고 문화부 장관은 이를 받아들여, 수출의 일시 중지를 명령한다. 그리고 해당 작품을 소장하려는 영국 내 공공 박물관, 미술관에 보통 2~9개월간 우선 구매권이 부여한다. 이 기간 안에 기관들은 정부 보조금, 민간 모금 등 필요한 작품의 '공정시장 가격(Fair market price)'을 모아 작품을 매입한다. 공공이 해외 구매자가 제시한 가격과 동등한 금액을 마련해 작품을 매입하면, 해당작품은 국가 컬렉션으로 편입되어 영구적으로 보존되며, 기간 내에 구매 제안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출은 허용된다. 그러나 소장자가 제안을 거절할 경우, 일정 기간, 대략 10년 정도 해당 작품의 재수출 신청이 제한될 수도 있다. 이 제도는 단순히 수출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시장 원리를 존중하면서도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공공의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영국의 실용주의적 접근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문화재 보호법(Code du patrimoine)'을 통해 중요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엄격히 규제한다. 프랑스는 물론 타국의 작품이라도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은 ‘국보(Trésor national)’로 지정해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국보가 아닌 작품이라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며, 정부가 해당 작품을 국내에 보관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일정기간 수출을 유보하고 '우선 구매권(Droit de préemption)'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영국식 긴급수출정지명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재 수출 정지 기간은 작품의 가치와 성격에 따라 달라 사안별로 유연하게 적용된다. 
 
보티첼리 왕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c1470 패널에 금박과 혼합매체 833x449cm

2024년 12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1020만 파운드약 192억원에 낙찰된 보티첼리의 작품이 영국 정부에 의해 수출정지 조치 후 현재 작품 구입을 위한 모금을 진행 중
보티첼리 왕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c.1470 패널에 금박과 혼합매체 83.3x44.9cm 2024년 12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1020만 파운드(약 192억원)에 낙찰된 보티첼리의 작품이 영국 정부에 의해 수출정지 조치 후 현재 작품 구입을 위한 모금을 진행 중

영국의 경우 1차 유예 기간 중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2차 유예 기간을 주어 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한다. 프랑스는 해당 작품이 해외로 수출되기 전 정부가 해당 작품의 가치를 심사하고, 2개월 이내에 구매 의사를 밝히거나 우선 구매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정부가 구매할 경우, 6개월 이내에 작품 대금을 완불해야 한다. 2개월 이내에 정부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거나, 구매 의사를 철회하면 작품의 해외 수출은 가능해진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문화재, 미술품의 개인 소유권과 자유로운 거래를 존중한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수출을 막는 제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약하다. 대신, 미술품 기부에 대한 강력한 세제 혜택을 통해 자국의 중요한 작품들이 공공으로 흡수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화재 수출 문제를 단순하게 법적 기준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시장 경제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 문화재 미술품의 수출 규제 문제는 이제 전향적으로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근대사의 아픈 기억 때문에 문화재 유출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강하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엄격하게 수출을 규제해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문화재나 미술품이 해외에 나가 문화예술 사절로서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의 'K-오락(K-Entertainment)'이 'K-문화(K-Culture)'로 즉 진정한 문화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규제일변도의 정책에서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일정한 제작 연도와 가격을 토대로 수출 여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문화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는 '수출정지'나 '국가 우선 매수권(National priority purchase rights)'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재 미술품은 국내에 남기고, 동시에 한국 미술이 세계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외국인이 구입해서 해외로 반출한다 해도 속수무책이다. 또 문화적 가치가 높은 중요한 이중섭 작품을 다시금 개인이 소장하도록 한다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물납의 범위를 확대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정부가 긴급 추가경정예산이라도 편성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 

마음 같아서는 광복 80년이 넘도록 '국립 20C(근대)미술관'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간 국립 20C(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해 작품기증운동과 세미나, 토론회를 펼쳐온 우리 '국립 20C(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앞장서서 국민모금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모금액이 10억 원을 초과할 경우,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등록하는 등의 절차가 선행되어야 해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뭄에 하늘만 쳐다보듯 착한 부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기대를 걸어 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다. 

아무튼 안목이 높았던 고 정기용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그간 미루어 두었던 쉬운 숙제를 빨리하라고 채근하고 있는 듯하다. 차제에 중요 문화재 미술품의 물납제 범위확대와 수출에 관한 제도개선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문화선진국이란 목표를 향해 다함께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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