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전 대법관이 25일 췌장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9세.
광주 출신인 이 전 대법관은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0기를 마쳤다.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과정을 수료했으며 서울대에서 상법 박사 학위를 받아 학구파 법조인으로도 꼽혔다.
육군 법무관 복무를 마친 뒤 판사로 임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제주지법원장, 인천지법원장 등을 거치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사법연수원 교수·대법원 재판연구관·서울지법 부장판사 등 이른바 법원 내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은 대표적 법관이었다.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던 중 양승태 전 대법원장 후임으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당시 대법원은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물러난 뒤 보수 성향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 전 대법관은 진보 성향 소수 의견을 내며 균형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판결로 2012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의 시국선언 사건이 있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지만,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개선 요구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2015년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에서도 내란 선동 유죄 판단에 반대했다. 그는 “이 전 의원 발언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 소수 의견을 냈다.
같은 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서도 일부 금액에 대해서는 유죄 증거가 부족하다는 소수 의견을 내면서 “객관적 자료가 없다면 법정 진술보다 수사기관 조서를 우선시해선 안 된다”는 원칙주의 입장을 고수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시절에는 ‘법조 3륜’이라는 잘못된 동지의식을 깨야 한다며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했다. 검찰 특수부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해 검찰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증거 재판주의 원칙을 중시하는 원칙론자로 통했다. 당시 그는 “잘못된 동지의식을 깨고 공판 중심 재판을 강화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대법관 시절 동료 법관들은 그를 “자상하면서도 원칙에 충실한 법관”으로 평가했다. 후배 판사들에게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을 남기며 재판의 질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일정이 끝난 뒤에는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후에는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고, 개인 변호사 개업 후 2020년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췌장암 진단 뒤 일본에서 수술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 전 대법관을 원칙주의자이자 합리적 진보 성향 법관으로 평가한다. 그는 표현의 자유와 피고인 방어권 보장을 강조했고, 수사기관의 진술보다 법정 증언과 증거를 중시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견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덕미씨와 아들 이화송씨, 딸 이화은씨, 사위 김현승씨가 있으며, 동생 이광범 변호사(LKB앤파트너스 이사회 의장)도 대표적 엘리트 판사 출신으로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다. 아들 이화송씨와 며느리 역시 현직 부장판사로 법조 명문가를 이루고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과 용인공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