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 무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물가 장기화로 소비자들이 가격에 민감해지자 유통업계가 '가격 역설계'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통상 상품 가격은 원가와 이윤을 따져 결정한다. 반면 가격 역설계는 판매가를 먼저 정한 뒤 원가와 마진을 맞추는 식이다. 일부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초저가 전략으로 판매량을 늘리고,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불황형 대응책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노브랜드에 이어 10년 만에 새로운 자체브랜드(PB) '오케이 프라이스(5K PRICE)'를 론칭했다. 지난 14일 첫선을 보인 오케이 프라이스는 1차 상품 162종을 선보였고, 연말까지 260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오케이 프라이스는 모든 상품을 5000원 이하로 구성한 점이 핵심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소비 여력이 줄면서 일정 가격 이상이면 소비자는 결정을 미루거나 구매를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이마트는 가공식품과 일상용품 중심으로 5000원 이하 초저가 제품군을 기획했다. 다시 말해 이마트가 소비자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을 5000원으로 설정한 셈이다.
주요 상품으로는 980원 팝콘, 880원 칫솔, 4480원 3겹 화장지 등이 있다. 카놀라유·해바라기유·포도씨유·올리브유는 유럽에서 직수입해 가격을 낮췄고, 대형마트 평균 용량의 절반 수준으로 구성해 부담을 덜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통합 매입과 글로벌 소싱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일반 브랜드 상품 대비 최대 70%까지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가격 역설계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랜드그룹 유통 사업부문을 담당하는 이랜드리테일은 '델리 바이 애슐리'를 앞세워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델리 바이 애슐리는 이랜드이츠 뷔페 브랜드 애슐리퀸즈의 대표 메뉴를 즉석섭취식품 형태로 3990원에 판매하는 브랜드다.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은 700만개에 달한다.
이 덕분에 킴스클럽·팜앤푸드 등으로 구성된 이랜드리테일 하이퍼 부문 매출은 올해 상반기 460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706억원)보다 24%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은 71% 증가했다. 특히 킴스클럽 채널 매출은 224% 뛰었다.
이랜드리테일은 현재 13개 유통점에 델리 바이 애슐리를 입점시켰고, 하반기에도 추가 출점해 판매망 확대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간편식 수요와 가격 전략이 맞물리며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와 고용 불안으로 소비자들이 초저가 상품이나 1+1 기획 상품에만 관심을 두는 분위기"라며 "고객의 소득 확대가 어려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만큼 유통가의 5000원 이하 상품군 강화는 일시적인 대응이 아닌 중장기적 전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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