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는 북한이 2023년 말 남북 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에서 '적대적 두 국가'로 정하고 기존의 대남 및 통일 관련 정책을 폐기한 것에 주목한다. 북한은 왜 정책과 태도를 바꾸었는가? 북한의 선언은 소위 ‘우리 민족끼리’를 주장하며 ‘민족’을 강조해 온 대남 정책이 별 효험이 없고 그 과정에서 남한의 대중문화가 북한으로 유입되어 오히려 북한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김정은이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한 것은 그러한 내부적 판단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은 현재로서는 남한의 침투 공작을 차단하여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통일부 명칭 변경론의 여파를 살펴보면 첫째, 새 정부는 북한이 이제 통일에서 멀어지는 ‘두 국가’론을 채택하였으니 우리도 ‘통일’을 당분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인 것 같은데 실제로 정부조직법 개정 법률안이 상정되면 야당과 보수 진영은 과거 문재인 정부 때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김여정 하명법’ 또는 ‘김(정은) 남매 패키지법’이라며 비난하였던 것보다 더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우리 민족에 있어 현실이 어떠하든지 ‘통일’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통일’은 역사적 당위성을 넘어 현행 헌법상 가치인 면도 있다. 헌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 통일 정책을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적 가치 수호를 명분으로 통일부 명칭 변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 통일부 명칭 변경을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조직법만이 아니라 헌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다. 정부의 어떤 정책도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성공할 수 없다.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빼는 것에 대해 반발이 상당하다. 여러 이유가 제시되고 있는데 ‘통일’을 유보 또는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1991년 남북한이 분단 46년 만에 각기 유엔 회원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는 남북한이 2개의 주권 국가인 만큼 통일이 지상과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법적 논리이고 통일의 당위성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고 본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분단국가에서 통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부처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평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평화를 ‘구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서 평화를 구걸하는 국가는 대부분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였다. 평화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북한에 대해 경제력은 물론 핵무기를 제외하면 군사력에서도 압도적인 우위에 있고 같은 민족인데 강한 쪽이 아량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역시 위험한 생각이다. 남한이 먼저 공격하지는 않겠다는 정도로 충분하며 그 이상은 위험하다. 권력의 본성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
넷째,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면서 대남 정책 및 선전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의 명칭을 '당 10국'으로 변경하고 민족화해협의회, 6·15 공동선언 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 협력국 등 민간단체도 폐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적화’ 통일을 포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며, 우리가 통일부 명칭에서 ‘통일’을 뺐다고 해서 북한이 우리의 생각을 선의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김정은의 발언은 들여다보면 북한은 남한의 소위 ‘진보’ 정부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현재로서는 ‘적화’ 통일을 추진하기에는 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남북 관계를 담당하는 부처의 ‘명칭’이 뭐라고 그것 때문에 공연히 분란을 자초하는가? 집을 지을 때 대문은 맨 나중에 세우는 법인데 건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공사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일단 대문부터 세우겠다는 생각 같다. 우리 민족 특유의 ‘실질보다 명분’을 따지는 성향의 발로가 아닌지 우려된다. 이 대통령은 7·3 기자회견에서 통일부 명칭 변경 제안이 북한의 오해(?)가 우려되어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 북한이 우리가 부처 이름 바꾼다고 우리를 달리 생각할 체제인가? 새 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달리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우리 사회 다수가 이미 전망하고 있는데 그러한 정책을 펴기도 전에 부처 명칭을 갖고 논란을 자초하여 얻는 것은 무엇인가?
끝으로 새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와 관련하여 대북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살펴보면 첫째, 이제는 순수한 동기에서든, 집권 세력의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한 것이든 거창한 쇼는 지양해야 한다. 둘째, 지난 정부처럼 ‘자유의 북진’을 외치며 불필요하게 그리고 실익도 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것을 지양하면서 북한과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대북 방송을 중단시키고 대북 풍선 날리기를 단속한 것은 적절한 조치이다. 셋째, 앞으로 교류와 협력은 철저하게 주고받는 ‘거래적’ 성격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에 문제를 제기하며 남한 측이 전면 폐쇄 결정을 내렸던 개성공단의 재가동 가능성을 검토할 만하다. 또한 많은 민간단체가 북한에 대해 일방적 지원 성격의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텐데 될 수 있으면 그런 사업들은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시행하도록 유도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대북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북한의 핵 개발 관련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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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국민의 시민의 시대이다. 시민이 원하는걸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