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젤렌스키에 "바티칸서 평화회담 주최 의향" 첫 공식 제안

젤렌스키, 로마서 美특사 켈로그와 회동…"무기 공급·방공망 강화 문제 논의"

레오 14세 교황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외곽의 카스텔 간돌포에 있는 교황 별장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레오 14세 교황이 9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티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회담을 주최할 의향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교황청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 외곽 카스텔간돌포 교황 별장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 8일 제267대 교황으로 즉위한 레오 14세는 첫 정상 통화 상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택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을 통해 교황의 중재 의향이 간접적으로 알려졌지만, 교황이 중재 의사를 직접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바티칸이 평화회담 장소로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탈리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유럽연합(EU)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교황청은 이날 접견의 구체적인 시간이나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교황이 영어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상황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짧은 영상만 공개됐다. 교황청은 교황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적대행위 종식을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10~11일 로마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했다가 여름휴가 중인 교황을 예방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5월 18일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 즉위 미사 이후 두 번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로마에서 미국의 키스 켈로그 우크라이나 전쟁 특사와 만났다. 이번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 추가 지원을 승인한 직후에 이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무기 공급과 방공망 강화 문제를 논의했다. 러시아의 공격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는 여전히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며 “미국산 무기 구매, 공동 방산 생산, 우크라이나 현지화 노력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에서 열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찬에서 취재진에게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더 많은 무기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부정적이었지만,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휴전안을 거부한 것을 계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최근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해 “매우 불만족스러웠다”고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방공 전력만으로는 러시아의 전방위 공습을 막기 어렵다며 미국에 패트리엇 미사일 추가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아프리카 정상들과의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요청했고 우리는 (지원 여부를)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패트리엇 미사일 체계가 “매우 비싸다”면서도 “우크라이나는 공격을 매우 세게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회의에는 개최국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를 비롯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 직무대행,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