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칼럼] 순수 통상협상의 시대는 갔다

  • 대미 관세 협상, 경제 안보의 큰 틀에서 포괄적 합의가 필요

서진교 GSJ 인스티튜드 원장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상호관세 유예 만료를 앞두고 지난 주말 미-베트남 합의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12개국에 보낼 관세율 통보 서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미국과 협상 중인 주요국들이 마지막 줄다리기를 위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일본은 최대 3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에 공식 대응을 자제하며 미국의 진의 파악과 함께 막판 협상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EU도 유럽산 농식품에 17%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미국의 위협에 큰 틀에서의 조속한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주말부터 통상교섭본부장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협상하는 가운데 국가안보실장이 급하게 방미길에 올랐다. 과연 미국의 일방적 상호관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유예가 끝난 7월 8일 이후 당초에 제시한 관세율이 적용될 것일까? 또한 관세율 통보 대상 12개국 이외 다른 국가에 대한 상호관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선 상호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유예 종료 직후가 아닌 8월 1일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약 3주일의 추가 유예 기간을 준 것과 다름없다. 이는 지금까지 협상하면서 거의 합의에 도달한 국가를 배려하는 한편 다른 국가에는 협상을 빨리 끝내라는 압박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12개국은 미국과의 상품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보는 주요 국가들일 가능성이 높고, 통보될 관세율도 지난 4월 초 제시한 수준과 같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으로서는 이들 국가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이상 상호관세를 낮춰줄 이유가 없다. 이들 국가와의 빠른 협상 타결을 압박한다는 의미에서도 상호관세 수준 유지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12개국 이외 국가에는 기본관세 10%만이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높지 않아 사실 상호관세 부과의 의미가 적다(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이러한 방향을 암시한 적이 있다). 결국 10% 기본관세는 향후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내년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임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막바지 단계의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관련해 발언한 내용을 되새겨 보고, 그에 대한 미국의 실질 이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협상 대표가 트럼프 대통령에 최종 보고할 협상 결과를 미리 상상해 볼 필요도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관련하여 강조한 발언은 국방비 증액과 무역적자 해소, 환율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국방비 증액은 우리 국방비 지출을 GDP의 5%로 올리라는 것이며(현재는 2.32%), 무역적자 해소는 미국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하란 것이다. 환율 문제는 미국의 수출이 잘되게 원-달러 환율의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용인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최종 협상 결과 보고는 이 중 어느 한 가지가 아닌 세 가지 모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상호관세의 근거법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국가비상경제권한법이다). 특히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한국 관련 글에서 '원스톱 쇼핑'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는 관세를 포함한 무역, 산업 협력 등 경제통상 이슈뿐 아니라 국방비 증액 등 안보 현안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합의를 선호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비 증액을 포함한 경제 안보 차원의 포괄적 합의 없는 순수 통상이슈만의 합의는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국 협상 대표도 포괄적 합의를 위해 통상은 물론 안보 이슈를 함께 논의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막바지 협상이 순수 통상이슈만의 해결로 타결되기 어려운 이유이자 국가적인 경제 안보의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접근해 대응해야 하는 핵심 이유이다.
 
그렇다면 통상 이외 경제 안보 관점에서의 포괄적인 접근이 우리나라에 불리한 것일까? 국방비 증액은 곧 우리 국방력의 제고를 의미하기에 우리에게 부정적일 수 없다. 문제는 증액의 속도이다. 미국도 당장 올해나 내년 목표 관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성의를 보인다면 타협이 어렵지 않다. 원-달러 환율도 단기 급격한 하락이 아니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환율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중립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 못지않게 수입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방비와 환율에서 타협이 이루어진다면 통상이슈에서 우리의 운신 폭은 훨씬 커진다. 자동차와 철강에서 더욱 강력히 관세 철폐를 요구할 수 있으며, 반대로 미국산 상품 수입 요구를 좀 덜 들어줄 수도 있다. 국방비와 산업 협력(미 해군의 군함 건조 포함), 환율 등에서 미국 요구의 수용을 내세워 통상에서 공격과 수비를 적절히 조합할 수 있다.

미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경제 규모가 되지 않는 이상 협상력이 열세인 국가는 선택지와 타협 거리가 많은 것이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진작에 순수 통상협상의 시대는 저물었다. 경제 안보의 관점에서 신통상에 전력해야 한다.
 
 

서진교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농업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자원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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