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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칼럼] 한반도운전자론의 잘못된 전제

서성교 초빙논설위원·바른정책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입력 : 2017-09-04 20:00수정 : 2017-09-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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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성교칼럼
 

[사진 =서성교 초빙논설위원·바른정책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



한반도운전자론의 잘못된 전제

모든 명제에는 가정이 있듯이, 모든 정책에도 전제가 있다. 가정이 잘못되면 명제가 무너지듯, 잘못된 전제는 정책 실패로 귀결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그렇다.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지극히 당연한 포지션일 수 있다. 누가 자기 문제의 해결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겠나?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어리석은 자만이 자기의 운명을 남에게 의탁한다. 하지만 외교는 당위(sollen)가 아닌 현실(sein)이다. 개인의 비현실적 신념이 잘못 투영될 때 국가는 위기에 처한다.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 외교는 실패로 끝난다.
북한이 6차 핵 실험 도발을 감행했다. 기존의 핵 실험과는 전혀 상이한 국면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타이밍의 선택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가상한 군·관·민 합동 군사훈련 직후에 이뤄졌다. 훈련 중에 북한이 발사한 두 번의 미사일 실험은 예행 연습에 불과했다. 괌 해역 미사일 공격 발언으로 북·미 간에 험한 막말이 오가던 시기이고, 유엔 제재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제재에 동참했다. 이 시점의 북한 도발은 강 대 강 정면 도전이다.
파괴력에서도 이전 실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번 핵 실험은 수소탄 실험이다. 핵 분열과 융합을 거듭하여 그 파괴력이 원자폭탄의 수십 배에 이른다. 북한은 이번 실험으로 핵무기의 다양화·소량화·경량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하면 일본을 넘어 미국 본토까지 공격 가능하다. 북한은 표현대로 ‘동방의 핵 강국’이 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도록 문재인 정부는 뭐했나? 좌절감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뻔한데도 베를린 선언,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장밋빛 희망만 꿈꾸고 있었다. 핵 실험 이후 문 대통령은 ‘강력한 응징 방안’을 요구했다. 미사일 몇 방 쏘아대며 시위했지만 핵을 보유한 북한에는 빈 주먹질에 불과하다. 전면적인 대북정책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한반도 운전자론’의 잘못된 전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첫째, 북한에 대한 그릇된 낭만적 이해가 문제의 시작이다. 유화정책으로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오류였다. 북한의 핵 개발은 체제의 생존 문제이자 정권의 마지막 보루이다. 핵 포기에 상응하는 확실한 보상(return)이나 손상(loss)이 없는 이상 포기할 이유가 없다. 적당한 당근과 채찍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당근은 크게, 채찍은 강하게 해야 하는 외교 게임을 애써 외면해왔다. 일방적 대화 구애로 북한에 시간만 벌어줬다. 북핵 개발 억지(deterrence)는 실패했다.
둘째, 국제 정세를 잘못 읽었다. 대미, 대중 관계를 잘못 설정했다. 반미(反美)가 친중(親中)으로 자동화된다는 것은 논리 비약이다. 사드 배치를 유예한다고 중국이 우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큰 판의 변화를 제대로 봐야 한다. 지금의 한반도는 19세기 말 열강의 경쟁과 20세기 냉전이 재현되고 있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치열하다. 한·미·일 남방 동맹과 북방의 북·중·러 연합 간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군사·경제·문화 변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3중, 4중의 다층적 이해관계가 작동한다. 객관적이고 엄정한 현실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현실적인 운전자론으로 한·미 동맹에도 금이 가고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 외교적 역량(capabilities)에 대한 오판이다. 역량이란 상대방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힘이다. 북한을 탐지할 첩보력·정보력·판단력의 부재, 대 북한 군사력의 불균형은 이미 드러난 문제이다. 외교 전략 혼선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설상가상이다. 동맹국인 미국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국을 움직일 역량과 레버리지가 있는지? 일방적인 문화적·경제적 보복에 일언반구 대응도 못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은 기약이 없다. 자기 과대적 평가의 결과는 무력감의 고조이다. 외교는 주고 받는 게임(give-and-take game)이다. 복합 다층적인 한반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누구 하나 절대적인 이익(absolute gains)을 얻을 수 없다. 상대적인 이익(relative gains)만 존재한다. 여기에서 국가이익을 위한 외교적인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북한 핵은 현실로 다가왔다. 북한은 핵 보유국 인정 위에 미국과 ‘대등한 대화’를 요구할 것이다. 적대적 관계 청산,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의 철수는 그들이 원하는 수순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협상의 레버리지를 강화하기 위해 핵 역량을 증대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 인질이 될 것이다. 김정은의 마지막 목표는 그들에 의한 통일, 즉 ‘민족해방의 완성’이다. 국가 흥망성쇠의 두 축은 경제와 안보이다. 경제는 서서히 침몰하는 반면 안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한반도 운전자론의 잘못된 자기 충족적 예언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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