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 칼럼]청와대-검찰, 건전한 긴장관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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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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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육정수]


청와대-검찰, 건전한 긴장관계를 위하여
육정수(초빙논설위원·전 배재대 초빙교수)

대한민국에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 몇 군데 있지만 검찰 권력만큼 피부로 느껴지는 기관은 없을 것이다. 검사로 일단 임명되고 나면 10년마다 재임명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그러나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 한 대부분은 평생의 권력자로 사실상 보장받는다. 즉, 다른 권력에 비해 가장 길게 권력자 행세를 할 수 있는 확고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수사 권력을 행사하면서 피의자 또는 피해자의 딱한 사정이나 억울한 심정을 잘 경청해주지 않는다는 호소도 적지 않다. ‘냉혈한(冷血漢)’의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죄인으로 얽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정의의 실현이나 인권 보호, 인간적 배려 같은 온기(溫氣)는 좀처럼 느낄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처럼 국민의 눈에 두려움의 대상인 검찰이 거꾸로 정치권을 향해서는 시녀 역할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아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새 정권이 들어서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는 집단이 검찰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숙였다’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다.
오늘날 우리 검찰이 이같이 형편없는 조롱의 대상이 되고 평가절하된 데에는 우선 검찰 조직 전체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치권의 영향도 상당 부분 있다. 그러나 상명하복(上命下服) 조직이라는 검찰의 특성상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의 책임이 특별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순실 사건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 간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른바 ‘돈봉투 만찬’을 벌인 서울중앙지검장(이영렬)과 법무부 검찰국장(안태근)에 대한 감찰조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시하고, 동시에 이들을 지방의 한직으로 사실상 좌천시킨 사건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가슴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오는가보다 싶었다. 두 간부가 엄밀한 의미에서 특수활동비를 잘못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온당했을까. 뭔가 비정상적인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의 행위가 법무부 및 검찰의 오랜 관행에 따른 것이라면 고의성(故意性)을 인정하기 어렵고, 선임자들은 아무런 탈 없이 지나간 것을 이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물리는 것은 공평하다고 볼 수도 없다. 무조건 용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짜고짜 공개적으로 감찰 지시를 하면서 ‘유죄’를 먼저 확정지은 후 거기에 맞춰 조사를 진행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마치 그 옛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식의 규문주의(糾問主義) 곤장이 연상된다. 그동안 떵떵거리며 잘나가던 검사들이라 해서 이런 대접을 받아도 좋다는 법은 없다.
특수활동비는 검찰에만 나오는 돈이 아니다. 웬만한 힘센 부처나 기관에는 특수활동비라는 예산이 있다. 그렇다면 법무부와 검찰뿐만 아니라 특수활동비를 쓰는 모든 부처, 기관을 대상으로 그 운용실태를 먼저 면밀하게 조사한 후 범죄가 구성되는 공무원은 법에 따라 처리하되 제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내막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들 간부는 최순실 사건 검찰수사 지휘를 통해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 탄생을 도왔다면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읽고도 남음이 있다. 전통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의 꽃’으로, 법무부 검찰국장은 ‘황태자’로 불려온 대표적 요직이다. 이런 두 사람을 떠들썩하게 망신 주면서 피의사실부터 공표한 것은 두 가지의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박근혜 전 정권의 검찰에 대한 포괄적인 정치적 심판이자 최순실 사건 수사의지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을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철저한 독립수사기관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함께 윤석열 최순실사건 특검팀장을 무리하게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한 것은 검찰 코드인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로 들린다. 지난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고 나간 뒤 자결을 택한 비극적 사건의 경험도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과의 관계 설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돈봉투 만찬’ 사건이 청와대와 검찰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지만 서로의 ‘손볼 데’를 노리는 불행한 긴장관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문재인은 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운 과거의 문재인 변호사, 민정수석비서관, 비서실장이 아니다. 엄연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실패를 뛰어넘어야 할 사명과 책무가 그에게 부여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선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동안 기성 정권들의 ‘적폐’와 싸우며 머리속에 쌓아놓은 분노와 원한 등 부정적 에너지를 국민 통합과 소통의 균형 잡힌 불꽃으로 승화시키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41%의 유권자도 중요하지만 5년 뒤 대통령직 성공 여부는 오히려 59%의 반대 유권자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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