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쇼크, 韓 딜레마] 대러제재 유예에도 공급난 장기화…수출·내수 두고 고심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알림판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가격 알림판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과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촉발된 글로벌 경유 공급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주요 경유 수출국인 한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허용하고 추가 대러 제재까지 유예했지만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국내 수급 안정을 위해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하는 정부와 해외 판매 확대를 원하는 정유업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대러 제재 유예에도 경유 공급난…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듯

18일 백악관과 외신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행정명령을 통해 그레이엄법 시행 유예를 결정했다. 그레이엄법은 에너지 등 일부 러시아산 제품에 5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를 새로 구입하는 상위 5개 수입국 등에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수익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솟은 석유제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경유 수출량은 전년 동월보다 하루 70만 배럴 감소했다. 중동과 러시아의 경유 수출 규모만 하루 130만 배럴에 달한다.

중동 전쟁에 따른 석유제품 생산·수출 차질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겹친 영향이다. 중동 지역 원유 수출은 일부 회복됐지만 석유제품 수출은 여전히 전쟁 이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3분기 글로벌 경유 공급 가능 물량은 전년 동기 대비 하루 170만 배럴 감소했다.

IEA는 글로벌 경유 공급 부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 정유시설 가동률이 회복되더라도 올해 소진된 재고를 보충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경유 시장은 내년 1분기 일시적으로 공급 우위로 전환될 수 있지만 수급 압박은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러시아 제재 유예에 앞서 러시아산 경유 공급 확대에도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경유 30만t 이상을 미국과 글로벌 시장에 즉시 공급하고 11월 50만t, 이후 100만t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이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IEA는 러시아의 경유 수출 차질이 단순한 수출 규제보다 정유시설 가동능력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러시아산 경유가 글로벌 시장에 공급되더라도 경유 수급을 크게 개선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유 생산량 60% 수출하는 한국…수출 제한 완화 요구에 고심

한국은 글로벌 경유 공급난에도 국내 물량 부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로 평가된다. 원유 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제시설을 보유해 국내 소비량을 충당하고도 상당한 물량을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경유 생산량은 1억8459만 배럴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수출량은 1억1057만 배럴로 전체 생산량 중 약 60%를 차지했다. 원유 수급 역시 10~11월 도입량을 전년 평균 대비 100% 이상 확보하는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국제 경유가격 상승에 따른 정유업계의 수출 확대 요구가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서 경유 등 석유제품 수출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제 경유가격은 지난 9월 중순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선 이후 하락했지만 이달 15일에도 170달러를 기록하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 경유 소비는 감소하는 추세다.

이에 정유업계는 국내 소비 감소 등을 이유로 정부에 석유제품 수출 제한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국제 경유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해외 판매를 확대할 수 있지만 수출물량 제한으로 추가적인 수익 확보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난이 장기화하면 국내 수급 안정과 국제 에너지안보 사이에서 정책적 딜레마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동과 러시아의 공급 차질로 한국 등 주요 정제국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추가 공급 요구가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은 특별하게 수급에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예외적인 상황에서 기업들이 요청하면 정부가 판단해 지난해 물량 이상으로 수출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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