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 임명 제청 과정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충돌하며 대법관 공석 사태가 장기화 된 가운데 법학계에서 법정 쟁점과 제도적 개선 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분출됐다.
1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대법관 후보의 임명 제청을 둘러싼 법적 쟁점과 제도적 개선 방안 제언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강문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의 진행으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송기춘 전북대 법전원 교수, 한상훈 연세대 법전원 교수, 최용근 변호사(민변 사법센터 법원개혁소위원회 위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자들은 조 대법원장의 행위가 위법은 아니라면서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나서 입법을 통해 갈등을 중재하고, 향후 개헌을 통해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우선 발제자로 나선 한상훈 교수는 이번 사태를 권력 기관 간 정치적 힘겨루기로 진단했다. 한 교수는 역사적으로 사법 파동을 거치며 역대 대통령들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형식화하려 했던 맥락을 언급하면서 "과거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던 '사전 협의'라는 관행은 행정부 권력이 제청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포장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조문 해석상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하거나 요구서를 국회로 보내지 않는 것은 정치적·윤리적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법적 위헌으로 규정하기엔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당사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반면 한상훈 교수는 현행법 체계 내에서 대통령의 임명권은 소극적 거부권에 그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교수는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명백한 결격 사유나 법률적 하자가 없는 한 제청안을 받아들이는 '소극적 임명권'으로 보는 것이 법치주의와 사법권 독립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비공식적 사전 협의를 합의로 착각해선 안 된다. 장기 공석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등 유권해석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 제청권은 장기적으로 볼 때 폐지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그것의 전제는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제한이 좀 더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 역시 대통령의 과도한 임명권 행사를 비판했다. 송 교수는 과거 특별조사위원회 등 국가 기구 구성 시 행정부가 제청권을 무력화했던 사례들을 언급하며 "대통령실이 마음에 드는 인사를 지명받기 위해 재제청을 요구하며 임명 절차를 방치하는 것은 제청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명확한 법적 사유 없이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하지 않는 대통령의 태도는 양보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대통령 권력의 비대화뿐만 아니라 대법원장 1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된 사법행정권과 대법관 제청권 또한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법원장이 단독으로 제청권을 행사하는 현 구조가 동료 대법관들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사법부 내 권력 세습을 초래한다는 이유다.
최 변호사는 "현행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유일한 견제 기구로 작동하지만, 대법원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지적하며 "대법관 임명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천위원회의 위원 구성 중 법관 비율을 조정하고, 법원행정처장의 당연직 제외 등 추천위 규칙을 개정해 실질적인 검증이 이뤄지도록 공개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개헌 및 법률 개정을 전제로 "대법원장을 대법관들의 호선 방식으로 선출하거나 추천위원회를 통한 대법관 후보자 선출 절차를 법률상으로 엄격히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상훈 교수 역시 "독일 연방법관 선발 방식처럼 사법부와 입법부, 각 주 정부 장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 구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대법원장의 독점적 제청권을 폐지하고, 다양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수권(授權)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갈등을 중재하고 제도적 정비를 이끌어야 할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상희 교수는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강대강 대치 속에서 국회가 법원조직법 개정이나 중재안 마련, 국정감사를 통한 실질적 검증 등 헌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며 적극적인 국회의 역할을 당부했다.
한상훈 교수는 "대법원장은 인사의 고집을 꺾지 않고 대통령실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왜 인사가 막혔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재판 지연이라는 피해만 입고 있다"며 현 상황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대법관 공석 사태를 계기로 19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개헌과 법원조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으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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