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법을 누를 때, 평화는 어디에 기댈 수 있는가. 올해 노벨평화상은 한 법률가의 삶으로 그 물음에 답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월 9일 남아공의 나바네텀 ‘나비’ 필레이를 수상자로 발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평화에는 정의가 필요하다.”
85세의 필레이는 인종차별 체제 아래 더반의 인도계 가정에서 자랐다. 비백인 여성에게 법조계의 문이 좁던 시절 반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들을 변호했다.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특정 집단을 파괴할 의도로 저지른 성폭력도 집단학살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결에 기여했다. 이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 유엔 인권최고대표, 팔레스타인 점령지 유엔 조사위원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미얀마의 로힝야 집단학살 사건을 맡은 임시재판관이다. 2015년에는 서울대 인권센터 초청으로 ‘인권과 정의, 그리고 나의 삶’을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필레이에게 인권은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평생의 실천이었다.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왜 지금 필레이인가. 노벨위원회는 국제질서의 민낯을 감추지 않았다. 강대국은 책임을 피해 왔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제법이 다르게 적용됐다고 인정했다. 국제재판관들이 제재받고 사법기관이 공격받는 현실도 지적했다. 법이 힘에 밀릴수록 법을 지키는 사람을 더 굳게 지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5년 ICC 제재를 결정한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발표 직후 위원회가 상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비난했고, 백악관은 같은 날 제재를 재판소 전체로 넓혔다. 노벨평화상을 공공연히 원해 온 대통령과 그가 압박한 재판소에서 일했던 법률가의 대조는 선명하다. 나는 이번 선택을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경고로 읽는다.
노벨위원회에는 군사력도 강제력도 없다. 대신 수상자나 수상 단체의 이름을 앞세워 이들이 대변하는 의제에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국제정치가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1991년 아웅산 수치의 수상은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1993년 만델라와 데클레르크의 수상은 인종차별 체제의 평화적 종식에, 이듬해 아라파트·페레스·라빈의 수상은 막 시작된 중동 평화협상에 힘을 실었다. 1996년 동티모르의 벨로 주교와 하무스 오르타의 수상은 작은 민족의 자결권을 의제로 올렸고, 류샤오보(2010)와 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2024)의 수상은 각각 중국의 인권과 핵무기 없는 세계를 환기했다.
선택에 논란이 따르기도 하지만, 수상자의 이름에는 언제나 그 시대의 물음이 담겼다. 왜 지금 그 사람인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2000년 김대중의 수상도 그렇게 읽어야 한다. 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평가했다.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시상식 연설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없었더라도 인권 활동만으로 수상 자격이 충분했다며, 남북 화해의 노력이 여기에 ‘새롭고 중요한 차원’을 더했다고 말했다.
그 영광에는 대한민국의 성취도 담겨 있었다. 한국 국민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았고, 1997년 선거를 통한 첫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으며, 노사정과 국민이 힘을 모아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 마주 앉았다. 민주주의를 이루고 화해로 나아가는 한국에 국제사회가 보낸 격려였다.
수상 사유의 ‘동아시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위원회는 김대중을 아시아에서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 온 보편적 인권의 대표적 옹호자로 평가했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아시아에 맞지 않는다는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의 ‘아시아적 가치’론에 맞서, 김대중은 1994년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라고 역설했다.
그 보편주의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위원회 발표문이 명시했듯 그는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억압에 맞섰다. 1999년 동티모르 사태 때 나는 하무스 오르타의 호소를 직접 듣고 대통령에게 국제적 대응과 한국의 참여를 건의했다. 김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 속에서도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에 힘을 보태 상록수부대를 파견했다.
2000년의 상은 완성된 평화에 주는 훈장이 아니라, 1994년 중동 평화협상에 준 상처럼 막 시작된 화해에 힘을 실어 주려는 것이었다. 발표문에는 한반도에서도 냉전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겼다. 그러나 북핵 위기가 재연되고 국제정세와 남북관계가 달라지면서 그 희망은 멀어졌다. 노벨평화상은 평화를 보증하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을 비출 뿐이다. 그 길을 걷는 것은 당사자와 국제사회의 몫이다.
올해의 선택은 한국에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국제법의 한계를 경고한다. 강대국은 필요하면 법을 무시하고, 유엔의 대응은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에 막히곤 한다. 투키디데스의 ‘멜로스 대화’에서 아테네 사절은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당해야 할 것을 당한다”고 했다. 그런 세계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강대국 사이에 놓인 나라다. 가쓰라·태프트 회담과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그 위험을 보여준다. 한국은 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규범을 활용할 길을 찾아야 한다.
규범은 국제적 지지와 공동 대응의 근거가 돼 일방적 행동의 비용을 높일 수 있다. 힘의 논리가 거셀수록 규범을 붙드는 것은 중견국에게 이상이 아니라 계산이다. 그 계산은 구체적이다. 우리가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하는 근거는 유엔 안보리 결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중심으로 한 국제 비확산 규범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부당한 관세나 사드 보복 같은 경제적 강압에 맞설 근거도 통상 규범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를 건너뛴 강대국 간 거래로 정해지지 않게 할 명분도 주권 존중이라는 국제법의 기본 원칙에서 나온다. 물론 스스로 지킬 힘이 먼저다. 규범과 국제적 연대는 그 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다만 규범이 무게를 가지려면 우리부터 일관돼야 한다. 우크라이나든 가자든 피해자의 존엄과 생명 앞에서 기준이 같아야, 북핵 문제에서도 우리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한국인은 법이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024년 겨울 비상계엄을 멈춰 세운 것은 헌법을 지키려 행동한 시민과 국회의원들이었다. 국제사회도 다르지 않다. 법을 집행할 세계정부가 없는 곳에서 규범은 그것을 지키려는 나라들이 함께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일에 한국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반도에서는 남북이 합의를 존중하고 군사적 긴장을 낮추며, 대화와 인도주의 협력으로 남북한 주민 모두의 삶을 지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정의와 평화는 결국 사람들의 삶에서 실현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영광인 동시에 무한한 책임의 시작”이라고 했다. 2000년의 영광은 오늘의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힘이 법을 누를 때, 전쟁이 삶을 무너뜨릴 때,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노벨평화상은 묻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한미의회교류재단 이사장(Korea Inter-Parliamentary Exchange Center, Washington DC) △전 국회의원 (재선, 경기 남양주을, 민주당) △2006~2007 코넬대학교 동아시아센터 방문연구원(New York, USA) △전 대통령(김대중)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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