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스커버리 역설] 글로벌 '특허 괴물' 안방서 활개칠라...'기획 소송' 우려까지

  •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 특허 피소 558건…특허 표정 무방비

  • 비침해 입증하려다 핵심 영업비밀 탈루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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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생성형 AI 이미지]

특허 침해 피해자의 증거 확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시행을 앞둔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K-디스커버리)가 해외 기업의 국내 기업 공격에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크다. 해외에서 무차별 특허 소송에 시달리는 국내 기업들이 '침해 혐의 없음'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핵심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술기업이 당한 해외 특허 피소 건수는 총 558건에 달했다. 이 중 대기업을 겨냥한 소송이 453건으로 전체 중 81.2%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2024년 미국에서 국내 기업이 피소된 97건 가운데 78건(80.4%)은 '특허 괴물'로 불리는 비제조 특허전문회사(NPE)가 제기한 소송이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NPE의 집중 표적이 돼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까지 도입되면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소송 과정에서 침해 혐의를 벗기 위해 자사의 핵심 공정 기술, 원가 구조, 주요 공급망,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내부 자료를 상대방에게 의무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디스커버리 제도가 활성화된 미국 등 해외 법정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된 특허 소송 4건의 배후에는 중국 기업 '퍼플바인IP'가 소송 자금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미 법원은 기밀 보호 명령이 있었음에도 상대방이 기밀자료를 부당하게 빼내 악용한 사실을 지적하며 원고 측 청구를 기각하는 '부정 항변'을 인정했다.

국내 특허 소송 관련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거 개시 절차 과정에서 수백만 건에 달하는 문서 수집, 디지털 포렌식, 전문 변호인단의 정밀 검토 작업이 필수적이라 소송 비용이 기존 대비 최소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폭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금력과 특허 자산이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 소부장 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다수의 특허권을 보유한 일본이나 미국 선진 기업들이 이 제도를 무기로 소송을 걸어오면 상대적으로 특허 포트폴리오가 취약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패소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벤처기업이 해외 거대 NPE의 자본력과 결합해 대기업을 겨냥한 '기획 소송'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해외 NPE가 자금을 대고 국내 중소기업의 특허나 명의를 앞세워 디스커버리 신청을 감행하면 대기업의 핵심 기술과 공급망 리스트가 무방비로 노출되며 국내 산업 생태계 전체가 교란될 위험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한국지식재산협회(KINPA)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 68%가 'K-디스커버리' 도입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 71%, 중소·중견기업 63%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히 기술 유출 노출도가 높은 전기전자·정보통신 업종에서는 응답 기업 92%가 부정적이었다.

형평성 논란도 있다. 해외 기업이나 NPE는 핵심 자료가 국외에 있어 국내 기업이 맞소송을 제기해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본사와 연구개발(R&D) 인프라가 한국에 집중된 첨단 기술기업들은 국내 법원의 증거개시 절차를 통해 핵심 기술 자료와 영업비밀이 유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지식재산협회 관계자는 "미국 등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특권(ACP)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미흡해 디스커버리가 시행되면 기업의 핵심 영업비밀이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크다"며 "해외 NPE가 국내 증거개시 절차를 통해 확보한 핵심 자료를 해외 소송에서 공격 소재로 재활용하고 소송 비용 부담을 무기로 타결을 강요하면 국내 기술기업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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