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증거개시 제도(K-디스커버리) 시행을 앞두고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의 관련 실무 정착과 소송 배후 이해관계자 공개, 조사자료의 목적 외 사용 차단 등이 주요 보완책으로 거론된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상생협력법 개정안은 2028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술탈취 피해 기업의 증거 확보를 지원하는 것이 취지지만 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정보가 해외 경쟁사로 전달되면 사후 제재만으로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관건은 법안의 실효성을 보장하면서 기업 기밀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다. 특히 반도체·통신 등 글로벌 기술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가 광범위할 수 있어 제도 시행 전 보호 체계를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특허소송에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이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드러날 수 있고, 해외 경쟁사나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이를 기술 탈취나 소송 압박 수단으로 악용할 우려가 있다"며 "치열한 글로벌 기술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의 기술 보호와 혁신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내년 2월 시행되는 ACP 제도가 실무 차원에서 정착할 때까지 디스커버리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ACP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의사교환 및 소송 준비자료 등을 보호하는 제도다. 국내에서 보호 범위와 적용 기준에 대한 법원 판단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거수집 절차가 시행되면 기업의 방어권을 둘러싼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 배후의 실질적인 이해관계자를 공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해외 NPE나 소송금융 주체가 디스커버리 절차를 악용해 국내 기업의 핵심 기술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소송자금 제공자와 실질 권리자를 공개하도록 해 소송 배후의 이해관계를 투명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조사자료의 해외 이전과 목적 외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제재 장치도 필요하다. 국내 소송에서 확보한 기술정보가 제3국 소송이나 후속 제품 개발 등에 활용되지 않도록 자료의 제3자 제공과 재사용을 통제하고, 위반 시 실효적인 제재 수단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상생협력법에는 비밀유지 의무와 위반 시 처벌 등 보호 규정이 마련돼 있다. 다만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된 뒤에는 손해배상이나 형사처벌만으로 기업의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어 자료 접근기록 관리와 반환·폐기 등 예방 조치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힘을 얻는다.
곽재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영업비밀 보호 관점에서 기업의 핵심 정보가 유출되거나 오용되지 않도록 절차적 보호조치와 제도 운영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들도 핵심 기술정보의 유출과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 ACP를 활용할 수 있는 문서 관리 체계를 사전에 구축 및 정비하는 등 실무 차원의 보호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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