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케이블TV(SO사업자) 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유료방송 시장의 중심은 일찌감치 IPTV로 이동했고,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케이블TV에 대한 관심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기존 사업모델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케이블TV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SO(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운영하는 지역채널은 아직도 지역민들과 밀착해 작은 경조사부터 굵직한 지역 뉴스까지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또 지역 행정과 지역 의회, 지역 선거 등을 다루면서 지방정부를 감시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전국 단위 방송이나 온라인 플랫폼이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지역 정보를 주민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적 가치가 크다.
이렇듯 존재 의미가 분명하지만 수익성 악화로 존폐 위기를 겪고 있는 지역채널들의 생존 전략으로 전문가들은 '하이퍼 로컬리티'를 제시한다. '지역성을 극단으로 밀고나간다'는 뜻의 이 '하이퍼 로컬리티'는 콘텐츠를 해당 지역의 이용자 환경에 꼭 맞게 재설계한다는 측면에서 전국 단위 플랫폼인 IPTV나 OTT사업자들보다 지역SO가 유일하게 우위를 지니는 영역이다.
그 외에도 지역SO가 살아나기 위해선 ▲IPTV의 지역채널 의무방송, ▲지역채널의 해설·논평 제한 규제 폐지 ▲방미통위 등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제작 효율화,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FAST) 등 새로운 유통 경로 모색 등이 논의되고 있다.
지역SO 진흥을 위한 솔루션을 얻기 위해 학계(김연식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업계(박준경 뉴아이디 대표), 정부(방미통위 방송미디어진흥국)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연식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역채널의 핵심 가치를 지역 정보 유통과 지방자치 감시에서 찾는다. 전국 단위 방송과 온라인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오히려 주민들은 자기 지역의 현안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중앙정부와 중앙 정치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지만, 정작 우리 지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라며 "어떤 시의원이 어떤 조례를 발의했는지, 지자체와 시의회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한계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역신문은 지자체 광고와 협찬에 영향을 받아 비판 기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고, 지상파 방송은 권역 통합으로 개별 지역 뉴스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반면 지역채널은 주민들의 작은 경조사 등 여러 소식을 활발히 전할 수 있는 통로이며, 토론 등을 통해 지방정부 비판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는 통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역채널 활성화 방안으로 'IPTV 사업자의 지역채널 의무전송'을 제안했다. 그는 "지역SO는 지역채널을 운영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지만 IPTV에는 지역성과 관련된 의무가 없다"라며 "IPTV가 지역채널을 의무 전송하고 프로그램 공급 비용을 지급하면 지역채널을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채널의 해설·논평 기능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김 교수는 "유튜브에 이미 수많은 정치 논평이 넘치는데 지역채널에만 해설·논평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제도 변화를 촉구했다.
지역채널이 실제 시청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편성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김 교수가 제시한 해법은 '하이퍼 로컬리티'다. 지자체 정책을 전달하는 행정 뉴스에서 더 나아가 주민의 일상에 직접 필요한 정보를 세밀하고 밀착한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제주 KCTV를 사례로 들며 "지역민들의 경조사와 관련된 정보까지 적극적으로 내보내고,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한 소식을 자막방송 등을 통해 전달하면 다른 채널에서 하기 어려운 지역채널만의 개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주 서경방송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서경방송은 군 단위 행정 뉴스를 정례적으로 편성해 저소득층 지원정책과 신청 방법, 지역 문화행사 등을 소개하고 반복 편성으로 주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JCN울산중앙방송도 지난 6.3 지방선거 당시 유일하게 기초·광역자치단체의 모든 후보들을 소개해 지역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김 교수는 "지상파 방송도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시의원·구의원 후보들의 정보를 일부 지역SO가 제공하고 있다"며 지역채널의 민주주의적 기능을 강조했다.
성과 평가 기준도 시청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지역채널 콘텐츠를 시청률로만 평가하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며 "얼마나 지역성을 반영하고, 지역정보와 문화를 얼마나 잘 유통하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채널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콘텐츠 차별화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지역SO가 자체 투자만으로 콘텐츠 품질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까지 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 방송미디어진흥국 관계자는 "지역 SO, 중소 PP를 포함한 국내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AI·디지털 기술 기반의 방송프로그램에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는 제작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 기준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PP와 SO를 대상으로 약 7.7억원이 집행됐다.
제도적 지원 근거도 확대될 전망이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의결된 방송법 개정으로 기존 중소SO 지원 근거에 더해 중소PP에 대한 지원 근거도 마련될 예정"이라며 "향후 시행령을 통해 지원 근거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콘텐츠 제작비 지원뿐 아니라 재직자 교육과 예비 인력 양성 등 전문인력 지원도 이어갈 방침이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대형 제작사에 비해 지역·중소방송사는 AI 등 신기술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AI 솔루션 지원과 AX 실무인력 파견 등 AI 기반 제작 효율화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는 번역과 자막, 더빙, 재편집 등 반복적인 작업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제작비 절감만으로 콘텐츠의 경쟁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과 섭외, 현장 연출, 저작권 확인, 최종 검수 등에는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
지역SO의 새로운 활로로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FAST도 거론된다. 최근 FAST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뉴아이디의 박준경 대표는 지역SO와 이들이 운영하는 지역채널 콘텐츠가 해외 FAST에서 통할 가능성을 분석했다. 특히, 음식·여행·자연 등 언어 장벽이 낮고 지역색이 뚜렷한 콘텐츠가 해외 시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수 있다고 봤다.
박 대표는 "(FAST 관점에서라면) 한국 여행 시 참고할 만한 콘텐츠가 좋을 것"이라며 "지역뉴스 등은 국내 시청자들을 위해 좋겠지만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는 음식, 여행, 자연 등 넌버벌 콘텐츠의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동시에 "플랫폼 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국내 OTT나 유튜브를 통해 시청자 반응을 먼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해외 유통에 앞서 기존 가입자 기반을 활용하는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해외 FAST 플랫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SO가 가진 셋톱박스 가입자 기반 위에 광고 기반 채널 서비스를 추가하는 방식도 기회가 될 수 있다"라고 제언했다.
지역채널이 해외 플랫폼 시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부분도 설명했다. 박 대표는 "지역방송 콘텐츠는 대부분 국내 방송을 전제로 제작되기 때문에 출연자와 배경음악, 자료 화면, 협찬 관련 권리에 제약이 없는지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며 "특히 삽입 음악 등은 국내 방송용 포괄 계약인 경우가 많아 교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라고 덧붙였다.
케이블TV 지역채널의 재도약은 지역이라는 자산을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데 달려 있다. 주민의 일상에 밀착한 콘텐츠를 강화하고, 제작 지원과 AI 활용으로 부담을 낮추며, IPTV와 외부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시청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지역채널의 공적 가치를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까지 마련할 때 지역채널은 불황 속에서도 주민에게 꼭 필요한 방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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