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를 켜고 끄는 '광유전학(optogenetics)'에 돌아갔다. 실험실 연구 도구로 출발한 이 기술은 이제 실명과 뇌 질환 치료 가능성을 넓히는 단계에 들어섰다.
광유전학은 빛에 반응하는 미생물 단백질을 특정 신경세포에 넣은 뒤 빛을 비춰 그 세포의 활동을 켜거나 끄는 기술이다. 녹조류에서 찾아낸 단백질 '채널로돕신'이 출발점이 됐다. 기존 전기 자극은 주변 세포까지 함께 건드리지만 광유전학은 단백질을 넣은 세포만 골라 조절한다.
김기현 서울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어떤 신경세포를 작동시켰을 때 특정 행동이 나타나는지, 그 활동을 억제하면 행동이 달라지는지를 확인해 신경회로와 기능의 인과관계를 직접 검증할 수 있게 됐다"며 "기억과 감정, 보상, 운동 같은 복잡한 뇌 기능을 연구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질환 연구에도 쓰임새가 넓다. 김준기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파킨슨병, 뇌전증, 수면장애 등 신경계 질환의 발생 기전을 연구하고 새로운 치료 표적과 신약 후보를 검증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며 "개발 중인 신약이 뇌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가설을 시험하는 데도 쓰인다"고 했다. 어떤 세포가 증상을 일으키는지 알아내면 그 세포를 겨냥한 약물이나 치료법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단백질은 조직 깊숙이 닿기 어려운 파란빛에만 반응했다. 최근 붉은빛 계열에 반응하고 감도도 높인 단백질이 나오면서 치료 연구가 본격화했다. 환자 치료에 가장 먼저 다가선 분야는 '눈'이다. 빛이 닿기 쉬운 데다, 시세포가 죽어도 남아 있는 망막 신경세포에 빛 감지 단백질을 넣으면 시각 신호를 다시 만들 수 있다.
김기현 교수는 "망막색소변성 환자의 남은 망막 신경세포에 빛 감지 능력을 부여하는 치료 연구가 진행돼 일부 시각 기능이 회복됐다는 보고가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나노스코프 테라퓨틱스의 광유전 유전자치료제 '모젠리'는 지난달 미 식품의약국(FDA)에 허가 신청이 접수됐다. 심사 목표 시점은 내년 상반기다. 다만 뇌 질환 적용은 아직 임상 이전 단계로, 빛을 뇌 깊숙이 전달하는 방법과 장기 안전성이 과제로 남아 있다.
조절 대상은 신경세포 밖으로도 넓어지고 있다. 형수진 삼성서울병원 교수 연구팀은 2023년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셀룰러 뉴로사이언스'에 실린 종설에서 신경세포의 보조 세포로 여겨지던 신경교세포를 빛으로 자극한 연구들을 정리했다. 정리된 연구에 따르면 빛을 받은 성상교세포는 신호 물질을 내보내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바꿨고, 말초신경의 슈반세포는 빛 자극만으로 신경을 감싸는 수초(髓鞘)를 만들었다. 다발성경화증이나 신경 손상 같은 질환으로 치료 표적이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형 교수는 "빛으로 신경세포를 켜고 끄는 도구가 뇌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표준 방법이 됐다"며 "말기 실명처럼 기존 치료법이 없던 환자에게 기능 회복의 단서를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장기로 넓히는 것은 아직 과제지만 이번 수상으로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기현 교수는 "앞으로는 질환과 관련된 신경회로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광유전학이 자폐증이나 우울증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수상자 발표 직후인 5일(현지 시각)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의사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라며 "자폐증이나 우울증을 앓는 내 환자들을 생각한다. 이 연구가 가져다주는 희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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