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1일부터 미국에 의약품 제조 공장을 건설하지 않은 기업의 의약품에 대해 10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언급하면서 국내 제약업계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 상호 관세 합의가 최종 타결된 국가는 최혜국 대우 원칙에 따라 의약품 수출에 15% 관세가 적용되나 한국은 합의문에 아직 서명하지 않아 100% 관세가 매겨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30일 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날 미국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의약품 수출 기업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5개사는 미국 정부의 품목 관세 부과 시 기업 부담 증가, 수출 경쟁력 약화 등을 우려하며 미국 시장 진출 지원 확대, 수출국 다변화 등 정부에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 내 제약공장을 짓고 있거나 착공 중이지 않은 한 10월 1일부터 의약품에 100% 품목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해 14억9000만달러에 이른다. 전체 대비 상품 수출액(1316억달러)에 비해 비중은 적지만, 관세 적용이 현실화되면 제약업체들로서는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셀트리온의 경우 지난 23일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 릴리와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소재 생산 공장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 5월 간담회에서도 "2년치 재고 확보와 현지 CMO(위탁 생산) 계약 확대 등 대응책을 마련했다"며 중단기 전략을 밝히기도 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미국 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리스크 측면에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2022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며 미국 내 생산 시설을 갖췄다.
SK바이오팜 역시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 생산 시설을 마련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지 공장 식품의약품청(FDA) 승인 등 미국 내 생산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위탁개발생산(CDMO) 위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CDMO는 위탁을 맡긴 쪽에서 관세를 부담하는 구조다. 다만 글로벌 빅파마들의 미국 현지 생산 확대에 따라 수주 구도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유한양행은 이번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 관계자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이 생산·유통 전체 권리를 갖고 있다"며 "원료의약품의 경우 대부분 유럽에 수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보툴리눔 톡신(보톡스)을 수출하는 대웅제약과 휴젤은 관세 적용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두 기업은 국내에서 보톡스 완제품을 제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는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톡신 시장에서 점유율 13%로 2위를 기록 중이며,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 '레티보'는 지난해 3월 미국 식품의약품국(FDA) 승인을 받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가격 경쟁력과 제품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키워오고 있으나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경쟁에서 밀려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