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18 당시 상무대에서 구타와 폭언, 성폭력이 발생했다. 사진은 2020년 12월 28일 오전 광주 서구 5·18자유공원 내 옛 상무대 영창에서 인물 모형. [사진=연합뉴스]
1980년 5·18 이후에도 계엄군의 집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이 있었다는 증언이 새로 나왔다. 그동안 쉬쉬하며 소문만 무성하던 군인들의 집단 성폭력이 추가로 나옴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5·18 민주유공자 장해 14급인 A 씨(65)는 지난달 27일 전라남도 순천시 모 카페에서 “5월이 되면, 1980년 5월 18일 조선대학교 운동장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었던 계엄군의 성폭력과 피해자들의 비명이 유독 심해진다”고 토로했다.
A 씨는 “5월 18일 당시에 학원 수업 도중 시위대를 찾으러 온 계엄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며 “도착한 곳은 조선대 운동장이었는데 머리를 조금이라도 들면 금세 곤봉이 날아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연이어 들렸다. 곁눈질로 보니 여러 명의 군인이 누가 봐도 10대인 여성의 가슴과 몸을 만졌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군인은 20대로 보이는 여성을 향해 ‘구덩이를 파서 수류탄을 터트려 모두 묻어 버린다’고 연신 윽박지르며 추행했다”며 “그렇게 조선대 운동장에서 상무대로 다시 끌려갔는데, 남성은 하의만 입은 채로 조사받았다. 여성들 제대로 옷을 못 갖춰 입었다. 남성과 여성 가릴 것 없이 5·18 이후에도 성적 수치심이 느껴지는 조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A 씨 목격담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 이후에도 계엄군에 의해 성폭력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5·18민주화운동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도심 진압작전’(1980년 5월 18일~21일)에서 9건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외곽봉쇄작전’(5월 21일~26일)에서 3건, ‘광주 재진입작전’(5월 27일)과 이후 연행-구금-조사 등의 과정에서 6건의 성폭력이 저질러진 점이 드러났다.
![김선옥 씨 [사진=정현혼 기자]](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5/15/20250515160050218539.jpg)
지난달 28일 김선옥(66) 씨 “5·18 성폭력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 책임이다”며 “현재 관련법에 성폭력 부분은 미흡하다. 우린 관련자가 아니라 엄연한 피해자다"고 강조했다. [사진=정현환 기자]
아주경제는 지난달 28일 5·18 성폭력 피해자인 김선옥 씨(66)를 만났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 음악교육과 4학년이었다. 5월 22일 책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시신을 보고 전남도청 학생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했다. 상황실에서 출입증과 유류보급증, 야간통행증 등의 업무와 안내 방송을 했다.
그는 계엄군이 다시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5월 27일 새벽 3시경에 전남도청을 빠져나왔다. 7월 3일 교생 실습 중이던 학교에서 사복 차림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관 3명에게 갑자기 옛 광주 상무대 영창으로 연행됐다.
상무대에서 약 두 달 넘게 조사 도중 ‘얼굴이 반반하네’ 등의 성적인 모욕을 당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볼 때도 군인이 지켜보고 있었다. 장기간의 구타와 고문으로 몸과 마음이 정상이 아니었다. 담당 수사관이 9월 4일 비빔밥을 사줬다. 이후 인근 여관으로 끌고 갔다. ‘이 사람 손 하나에 내 목숨이 왔다갔다 하겠다’ 생각했다. 저항할 수 없었다.
그는 대낮에 성폭행을 당했다. 같은 날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얼마 있다가 수면제를 다량으로 구매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선옥 씨는 이러한 피해 사실을 인증받아 5·18 민주유공자 장해 12급을 인정받았다.
구타와 고문, 성폭행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던 사이 한 남자를 만났다. 1981년 혼자 딸을 출산했다. 교육청에 진정서를 내 1983년 중학교 음악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부터 오직 하나 남은 딸을 위해 살았다. 2001년 유방암을 발견하기 전까지 5·18을 기억 속에서 지웠다.
그런데 암이 계기가 됐다. 5·18 사망자 소식을 접하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느껴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엄군 성폭력을 알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선옥 씨는 “5·18 성폭력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 책임이다”며 “현재 관련법에 성폭력 부분은 미흡한 실정이다. 관련자로 돼 있는데 우리는 엄연한 피해자다. 국가폭력으로 한 개인의 삶이 무너졌다. 국가가 외면하지 말고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8년 TV로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를 봤다”며 “서 검사의 용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 지금도 5월이 되면 그때 생각나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젠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앞으로도 법에 '성폭력 피해자'가 명시되도록 나설 것이다”고 했다.

김복희 씨(63)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 활동하다가 상무대로 연행돼 성폭력에 노출됐다. [사진=정현환 기자]
선옥 씨만 5·18 이후 수사 과정에서 성폭력에 노출된 게 아니다. 김복희 씨(63)는 1980년 5월 27일 도청 1층 상황실에서 상무대로 연행됐다. 수사관이 다짜고짜 옷을 올리기도 했다. 상의를 올렸더니 안의 속옷까지 모두 들치고 바지까지 내리라고 했다. 성추행을 당했다.
성적 학대가 심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화장실로 향했다. 분명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수사실 밖에서 경비를 서던 군인이 화장실로 따라와 그를 성폭행했다. 복희 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이후 광산 경찰서에서도 인권이 유린됐다. 15일 동안의 불법 구금. 계엄군의 성범죄가 증명돼 5·18 국가유공자 장해 12급(신경정신과 12급 12호)을 받았다.
현재 복희 씨는 선옥 씨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를 이끌고 있다.
그는 “45년 동안 국가가 5·18 민주화운동으로 성폭력을 받은 피해자를 방치해 왔다”며 “지난해 11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계엄과 탄핵, 파면 등으로 잠자고 있다. 국가가 더 늦기 전에 책임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제도 보완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도 5·18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며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5·18 성폭력 피해자들을 이제라도 국가가 보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 학대가 심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화장실로 향했다. 분명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수사실 밖에서 경비를 서던 군인이 화장실로 따라와 그를 성폭행했다. 복희 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 이후 광산 경찰서에서도 인권이 유린됐다. 15일 동안의 불법 구금. 계엄군의 성범죄가 증명돼 5·18 국가유공자 장해 12급(신경정신과 12급 12호)을 받았다.
현재 복희 씨는 선옥 씨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인 ‘열매’를 이끌고 있다.
그는 “45년 동안 국가가 5·18 민주화운동으로 성폭력을 받은 피해자를 방치해 왔다”며 “지난해 11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 계엄과 탄핵, 파면 등으로 잠자고 있다. 국가가 더 늦기 전에 책임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제도 보완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도 5·18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며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5·18 성폭력 피해자들을 이제라도 국가가 보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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