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독서를 즐기는 독일인… 독서가 괴로운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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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2-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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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문화가 국격이다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최근 서울 마포구청장이 구립 작은도서관 운영 종료를 발표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지난 20여 년간 마포구가 작은도서관 설치와 운영에서 모범을 보인 지자체였다는 점에서 이 발표는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결과적으로 ‘도서관을 폐관하지 않는다’는 마포구 측 방침이 기사로 확인되었지만 이 소동은 도서관 확산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우리 사회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은도서관 운영 종료를 고려한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 절감이었다. 지난해 작은도서관 운영에 들어간 마포구 예산은 7억2000만원, 이용자 수는 15만~20만명으로 1인당 3600~4800원 정도 쓰였다. 예산 소요액과 시민 편익을 고려할 때 예산 절감은 타당한 이유로 보이지 않는다.

이어진 마포구청장의 해명은 다른 이유를 짐작케 한다. “(부모들이) 마포를 떠나는 이유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못 가기 때문에 그렇다. ··· (고교생들에게) 돈도 안 들어가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주자, 이게 제 목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은도서관에 스터디 카페 기능을 추가·대체하면 자율학습 환경이 보강되어 주요 대학 진학률이 오를 것이라고 호도했다. 게다가 구청장은 “(관내 대학) 총장들한테 동냥하러 갔다. 마포구 아이들이 다 지방으로 대학교 간다고 한다.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 문턱을 좀 낮춰주는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 일부 주민 의견을 들어 지역 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발언으로 미루어 구청장이 평소에 책 혹은 독서문화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 짐작이 갔다. 독서를 사치로 인식하니 일부 주민 의견에 부화뇌동하여 작은도서관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은 혹시 아닐까?

마포구 작은도서관의 소동은 사실 독서에 관한 한국인의 낮은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지표가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독서문화는 선진국과 거리가 멀다. 한국인이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은 (2015년 기준) 하루 평균 6분에 불과하다. 독서 시간이 짧은데 독서량이 많을 리 없다.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2020년 9월~2021년 8월)에 따르면 1년간 한국 성인의 평균 종합 독서량은 4.5권이다. 2019년 7.5권에 비해서 3권 줄었고, 2015년 유엔 연간 평균 독서량 조사 당시 9.6권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5년 기준으로 선진국 국민과 비교하면 국제적인 망신에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은 79.2권, 프랑스는 70.8권, 일본은 73.2권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독서량과 독서 횟수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연간 종합 독서율, 즉 1년에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 비율이 2020년 47.5%로, 한국 성인 중 절반 이상이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이는 2019년(55.7%)보다 8%포인트가량 떨어진 수치다. 2013년 71.4%를 기록한 이래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2015년 65.3%, 2017년 55.9%)라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요컨대 한국인은 책을 ‘매우 적게’ 읽고,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량이 더 줄어든다. 낮은 독서량과 독서율은 출판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문학지 가운데 다수가 사라졌고 사회과학 출판시장은 오래전에 고사한 가운데 유명 시집 시리즈는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독자를 잃은 작가들이 부업을 겸하지 않고 생계를 잇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위대한 작가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 문학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다룬 칼럼에서 “한국인은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상만 바란다”는 2020년 미국 시사교양지 <뉴요커>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리오의 지적은 통렬하면서도 한편 적확해 얄미운 감정마저 솟는다.

적은 독서량과 짧은 독서 시간은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문해력’ 저하로 이어진다. 최근 들어 언론 매체들은 한국인이 디지털 정보 홍수에 빠져서 단편적인 정보 흡수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독서 능력과 문해력이 더욱 떨어지고 상하 간 수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연구’ 보고서(2021년 12월)를 보면 문해력 저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상위 5개국(한국, 일본, 싱가포르, 핀란드, 에스토니아) 학생의 평가 결과를 2009년 성취도와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읽기, 수학, 과학 등 세 가지 영역에서 한국 학생의 평균 점수가 2009년에 비해 모두 내려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읽기 능력의 성취도가 낮고 복합적 텍스트 읽기 능력은 심각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문장의 의미를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인 ‘축자적 의미 표상' 정답률(46.5%)은 9년간 15%p 낮아져 5개국 가운데 가장 크게 떨어졌다. 또한 서로 다른 저자가 쓴 복합적 유형의 자료를 읽고 평가해 의견을 적는 문항이나 여러 자료를 검토해 실생활의 문제에 적용하는 문항의 정답률은 현저히 낮았다.

한국인이 평생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시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그때는 부모 권유(강요)로 책을 읽는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는 고학년에 이르면 독서를 권하지 않거나 심하면 독서를 못하게 막는다고 한다.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책과 관련된 긍정적인 경험 없이 독서량이 꾸준히 줄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거의 읽지 않게 된다. 독서는 즐거운 기억보다 고통스러운 숙제의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책을 잡는 게 쉽지 않으리라 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문해력 하락에 대하여 “읽기 목적이 분명한 상황에서 과제 중심 독서와 문제 해결적 독서가 취약하고 이 점을 보완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평가원의 제언은 공허하게 들린다. 평가원은 수능을 주관하는 기관이다. 수능이 어떤 시험인가? 수능 국어 문제는 지문 읽기와 정답 고르기를 통해 학생의 우열을 가리는 게 목표다. 학생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주장하고 토론하는 과정보다 오로지 문제를 풀기 위해 ’지문‘을 읽는다. 그러니 독서는 늘 성적과 연계되고, 독서는 어린 시절의 악몽과도 같다.

문해력을 증진하는 교육의 모범적인 해외 사례들은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다만 입시 교육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 구현하지 못할 뿐이다. 캐나다는 쓰기 교육을 중시한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주장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면 선생님은 글의 짜임과 맥락을 중심으로 지도한다. 네덜란드는 선생님이 문제를 제시하고 학생이 독서와 조사, 정리를 통해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방식을 선호한다. 또한 핀란드는 가정 내 독서와 토론을 통하여 독서의 동기를 부여하는 독특한 독서교육을 권장하고, 미국은 책을 읽고 토론을 통해 내용을 숙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요컨대 문해력 교육의 핵심은 학습자 스스로 읽고 쓰는 능력의 향상이다.

결국 한국인이 책을 적게 읽고 또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읽고 쓰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참된 국어교육이 없는 한 한국인의 독서문화는 영원히 정착되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한 독서의 참맛을 알게 하려면 반드시 수능을 대비한 문제풀이식 국어교육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필자가 1999년 4월에 마인츠시를 찾았을 때 거리에는 '지난 천년 간 가장 위대한 인물 구텐베르크'라는 매우 흥미로운 현수막이 나붙었다. 유럽인이 근대문명을 개척하고 오늘날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는 데 가장 큰 공헌이 인쇄술, 즉 책의 보급이라는 의미였다. 마인츠시의 브랜드 가치는 구텐베르크와 분리될 수 없다.(동아일보, 1999. 1. 7 참조)

인쇄술의 발달과 보급은 수천 년간 지속된 특정 계층의 문자 독점을 깨는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15세기 중엽부터 유럽 사람은 쓰고 베끼는(write, transcribe) 대신 활자를 사용하여 종이책을 찍어냈다(press).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성경과 과학서적을 읽으면서 우리가 ‘근대’라 부르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성직자의 성경해석 독점이 끝나자 곧이어 종교개혁(1517년)이 일어나고, 혁명적인 주장이 담긴 전단지(Flugblätter)가 날아다니면서 독일 농민전쟁(1524년) 같은 민중의 저항이 전국적인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생각하는 개인’의 탄생을 알리는 데카르트 명제('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나 근대적 지식권력의 중요성을 표현한 베이컨의 명제('아는 것이 힘이다')가 출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 유럽 전역에는 책 읽는 문화가 보급되었다. 국가와 군주는 앞다투어 도서관을 지었고 시민들은 카페에 모여 책을 읽었다. 이들은 낡은 질서를 부정하며 계몽을 외쳤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식민지를 개척하고 재화를 축적했다. 구질서를 파괴하는 정치혁명(프랑스혁명)과 새로운 사회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책 읽는 시민’이었다. 그들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민주주의를 구현했고 자본주의적 생산 질서를 창안한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독일 대학의 역량은 도서관 투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과마다 전문 사서가 배치된 별도의 도서관이 있고, 학과 규모에 따라 도서관 규모가 결정되지만 장서가 20만권에 이르는 단일 학과 도서관이 있을 정도로 독일 대학의 도서관 투자는 인상적이었다. 독일 대학의 학과 도서관은 학생의 학습활동이 이루어지는 중심 공간으로, 학생들은 수업에 필요한 도서를 일차적으로 학과 도서관에서 찾고 교수들은 해당 학기 수업에 사용할 교재를 정해진 서가에 비치함으로써 수강생이 공평하게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학의 위기를 거론하며 고등교육 재정 확충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재원을 두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으르렁거리고, 정치권은 어찌 되었든 이번에는 재정 확충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결의를 다진다. 그 와중에 대학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도서관 예산이 대폭 늘어나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아무리 이미지 중심 시대가 도래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읽고 쓰고 상상하는 교육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자리 잡지 않으면 그 사회는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독서를 부디 숙제 혹은 입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책임지는 어른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도서관이 늘어나고 부모와 함께 자연스레 책을 읽는 아이들로 가득 차는 올바른 독서문화가 우리에게도 정착되길 바라본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학과 졸업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2021년 5월부터 한국 대학체제의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의 책임편집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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