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남 칼럼] 포장만 바꾼 ‘한국판 뉴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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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인공지능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입력 2020-05-1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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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남 교수]


정부가 5월 7일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고,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정부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온 정책인 데다 이름이 좋아서 관심을 갖고 내용을 들여다봤다. 코로나19로 경제와 사회 전반이 크게 변한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의 대책은 코로나 이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수년 전부터 발표했던 내용이 상당 부분 그대로 들어 있고, 몇 달 전에 발표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하려 많이 축소되어 있고, 새로운 내용은 아주 조금 들어 있다.

1930년대 초 대공황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미국은 1933년 3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스벨트가 산업·농업·재정·수력발전·노동·주택 등 경제 전반에 대대적인 개혁을 실시하는 뉴딜(카드 게임에서 카드를 바꾸어 새로 친다는 의미) 정책을 시행, 뚜렷한 경기 회복세로 뉴딜 정책은 점차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성공적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형 뉴딜이 절실하지만 이렇게 엉성한 정책으로는 이름값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전면적인 정책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경제 변화와 대응에 대해 국내외에서 다양하고 잘 만들어진 분석 자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정책을 만들면서 최근에 나온 코로나 대응 전략에 대한 자료들을 거의 보지 않고 반영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표한 정책을 보면 내용이 포괄적이지 않고 과거에 내놓았던 정책들을 조금씩 고쳐서 넣은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후 세계는 이전 세상과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는데, 코로나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알맹이는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 포장지만 바꿔서 신제품이라고 내놓는 일부 기업의 좋지 않은 상술 같은 정책으로 보인다.

한국판 뉴딜은 경제·사회 구조 변화 중 특히 비대면화·디지털화 대응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내용은 편협하고 효과성이 적어서 ‘경제구조 고도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는지 의구심이 크다. 1)디지털 인프라 구축, 2)비대면 산업 육성, 3)SOC(사회간접자본) 디지털화 등 3대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기반 경제혁신을 가속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한국형 뉴딜의 주요 골자이다. 3대 프로젝트 중 첫째,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데이터 수집·활용 기반 구축, 5G 등 네트워크 고도화, AI 인프라 확충 및 융합 확산 등 세 가지로 나눴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는 수년 전부터 DNA(Data, Network, AI)라고 강조했던 것을 표현만 조금 바꾼 것이다. 둘째와 셋째 프로젝트인 ‘비대면 산업 육성’과 ‘SOC 디지털화’를 들여다봐도 제목은 새로운데,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전 부처가 참여해 마련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AI 국가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최대 455조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삶의 질 세계 10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정부는 ‘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는 비전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AI 생태계 구축,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 사람 중심의 AI 구현 등 3대 분야 아래 9개 전략과 100개 실행과제를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AI 국가전략이 발표됐을 때 다소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발표된 한국판 뉴딜 정책과 비교하면 AI 국가전략이 훨씬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판단된다.

이번에 발표한 ‘한국판 뉴딜’은 지난해 12월 17일에 정부가 발표한 ‘AI 국가전략’과 큰 차이가 안 보인다. 오히려 ‘AI 국가전략’이 더 잘 만들어졌고, ‘한국판 뉴딜’은 급조해서 매우 엉성하다. 3개 부처가 각각 3개팀을 맡는 등 범부처로 추진해야 할 일을 축소시켰으며, 정책의 양과 질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판 뉴딜’을 새롭게 발표한다면 기존에 발표한 ‘AI 국가전략’보다 업그레이드된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업그레이드된 내용은 없고 급하게, 엉성하게 만들서 ‘AI 국가전략’보다 축소된 모양이다. ‘비대면 산업 육성’이 들어간 것 외에는 달라지거나 심화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정부는 이달 내 한국판 뉴딜 관련 세부사업을 검토해 6월 초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발표 때 '한국판 뉴딜 세부 추진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미 3대 프로젝트와 10대 중점과제라는 큰 그림을 발표한 상황이라 세부 추진방안도 기대되지가 않는다. 큰 틀이 엉성하고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부 추진방안이 잘 만들어지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발표 시기를 다소 늦추더라도 엉성한 3대 프로젝트와 10대 중점과제를 고집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제대로 된, 실현 가능한 한국판 뉴딜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기를 바란다.

코로나 이전에 발표한 ‘AI 국가전략’을 ‘AI 국가전략 1.0’이라고 하고, 이를 업그레이드해서 ‘AI 국가전략 2.0’ 겸 한국판 뉴딜로 발표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AI 국가전략’과 ‘한국판 뉴딜’이 공존하면 혼란만 초래하니 지금이라도 둘 중 하나는 폐기하고, 두 가지를 잘 통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판 뉴딜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이 정책을 만드는 데 갖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것 같다. 국책 연구기관을 활용하고, 민간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한국형 뉴딜(K-뉴딜)이 잘 만들어져서 뉴딜을 능가하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인공지능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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